[2월3일]양영호전도사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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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된 권세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는 거듭나게 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을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녀의 신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이름들은 절대 구원을 얻을 이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4:5] (마가복음13: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예수님은 이미 예언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다시 환생한 예수다. 예수가 나를 나를 통해서 나타난다. 라고 합니다. 이단들이 그러할 것이고, 이단이라고 정식으로 하지 않지만, 옛적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여러 가지 말로 미혹하겠지만, 다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가짜 예수 행세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성경에 못을 박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 외에는 다른 구원이 없습니다. 이 예수는 2천년 전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 분이십니다. 만약에 현재 또 다른 예수가 있다고 한다면, 2천년 전에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예수 이름을 믿는 나는 아직 구원을 못받은 사람이요,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별로 신통치 않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한번에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번에 그냥 구원해도 될 능력을 충분히 가지신 분이지만, 그분의 큰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2천년전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사 우리 대신에 죽게 하셨습니다.
만약 이 예수를 믿지 않고 딴 생각하거나, 딴 이름을 가진 사람을 예수처럼 믿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요, 그러므로 전혀 구원과는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천년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천년전것은 너무 오래되어서 새로운 피로된 구원을 믿어야 한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불신앙에 속한 것임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어떤 이단은 피로 정결해진다는 것을 놓고 마치 그 교주의 신체에서 나오는 것을 먹거나 마셔야만 피가 깨끗해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고,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이 우리 가슴과 머리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적인 자녀입니다. 즉, 양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나뿐인 친자입니다.
그렇지만, 양자든 친자든 법이 정하는 대로 그 자녀의 권세를 그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삼아 주셨고, 우리는 자녀로 인정하며, 자녀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권세를 못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녀의 권세가 어떤 권세인지 모를 뿐더라, 하나님의 권세가 어떤 권세인지 우리가 민감하게 알지 못하고, 피부로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권세를 별로 알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왠지 하나님의 권세를 알면 피곤해 질거 같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권세를 알면 시도때도 없이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면서 부려먹을 거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녀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종의 신분을 가진 사람입니다. 종이 주인을 무서워하고 시키는 것을 그냥 시키는 대로 하듯 종의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은 조건을 찾습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것만 해야 나를 안 내쫓고 쓸 수 있다는 제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의 신분, 자녀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자녀는요,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빠, 엄마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자유로운 신분을 가졌습니다. 종은 행동과 움직일 수 있는 지역이 정해져 있지만, 자녀는 아버지가 소유한 땅에 모두 걸어갈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종은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지만, 자녀는 창조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가 어떤 권세인지를 알고 그대로 믿어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권세는 자기 위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사람은 대통령의 권세를 가지고 나갑니다. 장군의 명령을 가진 사람은 장군의 권세를 가지고 나갑니다. 심지어 사람이 아니더라도 종이에 적힌 것이 대통령의 이름이면, 대통령의 권세가 있는 종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의 명령을 받고, 누구의 이름으로 나가느냐가 권세의 세력, 힘을 결정하듯이, 바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의 보혈의 능력으로 나가는 자녀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 권세들이 어떤 권세들이 있는지 좀더 살펴볼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권세
1) 아버지의 권세
[고린도후서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첫째로 아버지의 권세입니다. 아버지의 권세는 어떤 권세일까요? 성도여러분은 아버지의 권세하면 어떤 것이 떠오릅니까?
여기서는 인간 아버지의 권세, 혹은 아버지라는 권위로 누르는 협박 비슷한 압박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장의 아들과 과장의 아들이 서로 옆집에 살다가 과장의 아들이 사장의 아들의 말을 안들으니 하는 말, 나 너네 아빠 사장 아들인데.... 안들어주면 불이익이 있을텐데, 내가 아빠한테 이를텐데, 이런식으로 협박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사장의 아들이 과장의 아들한테 이깁니다. 이유가요? 아버지의 권세 때문입니다. 비록 이런 세상에 살긴 하지만, 우리는 사장의 아들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늘 아버지의 권세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권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자녀의 권세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인 것입니다. 귀신이 와서 날 괴롭혀도, 인생의 파도와 고난과 고통, 두려움, 외로움 등이 와서 날 괴롭혀도 아버지의 권세로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2) 창조주의 권세
[이사야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군대에서 저는 주로 하는 일이 노동이었습니다. 탱크 궤도를 준다는 거나, 자동차 타이어에 탱크 포신에 여러 가지 각 기계에 관련된 부품을 주는 군인이었으니 참 힘든 노동이었습니다. 저는 군대 가기전에 어떤 자매랑 한글타자 순위에 누가 1등으로 등록되는가에 열중한 나머지 저는 670타였고, 저가 그렇게 노력하는 걸 우습게 보던 자매가 저에게 자극되어 1위 쟁탈전을 버리던 수준으로 1000타가 넘었습니다. 이정도면 정말 빠른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별로 빠른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매가 저보다 매우 잘했기 때문이죠. 잘한다는 기준이, 능력 있다는 기준이 그 자매를 이기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저는 그렇게 내세울 만한 실력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군대에 있던 어느 날, 행정반에 들어갔다가 행정병이며 저의 고참이 갑자기 너 타자칠 줄 알아 그러더군요. 그래서 조금 칩니다. 고참은 너가 얼마나 치겠냐 하면서 저에게 쳐봐 했는데, 엄청 빠른가 갑자기 야. 너 이렇게 잘쳐. 저녀석보다 잘치네. 너 행정병 해라. 하면서 이리 저리 손썼지만,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저녀석보다의 저녀석이 전공이 컴퓨터 관련된 디자인과 출신 행정병입니다. 한글 타수는 독수리 타법으로 100타가 넘을까 말까 한 실력입니다. 저는 컴퓨터 관련과이기 때문에 그 자매도 컴퓨터 관련 과이기 때문에 저보다 무지 잘 칠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보다도 못했습니다.
또, 제가 액츠 신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저보다 한참 나이 어리고 컴퓨터를 잘 아는 듯 말하는 녀석이랑 한 조가 되어서 내가 편하겠구나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 그 동생이 다가와 하는 말, 형 이 시디의 프로그램을 어떻게 설치하는지 몰라요. 저는 놀랬습니다. 머야. 그럼 넌 게임만 잘하는 거야?
아무리 많이 알아도 인간은 어느 특정 분야만 압니다. 아무리 많이 알고 공부를 잘 아는 박사라 하더라도 그 분야에서만 잘 알지 실제로 다른 분야는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박사로서 외국의 유명한 대학을 나와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는데는 매우 어려워 합니다. 자연을 연구하고 연구하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몇 년을 고심하다 결국 하나님을 찾게 되고, 거기서 자신이 고민하던 것이 말씀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는 우리처럼 박사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주 이심을 쉽게 믿는 것보다 매우 어려워 한다는 것은 매우 큰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지식을 아는 것이 이 세상의 학문의 한 분야를 매우 잘 아는 것보다 더 크고 신비롭다는 것이 이것이 믿어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머리 아프게 몇 십년씩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심을 믿고, 창조주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신 것을 쉽게 믿는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이며, 그런 권세를 누리는 귀한 시간이 아름답고, 은혜의 시간인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창조의 권세가 자녀된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권세가 내 권세라면 내 아버지의 신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내 권세는 창조의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이 창조의 권세는 물질을 새롭게 만드는 창조의 권세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창조의 권세는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발 아래 두사 복종케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 그 권세입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 대신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종케 하는 권세가 나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창조의 권세를 오해하셔서, 괜히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땅에 없는 코끼리야 만들어질지어다 하시면, 큰일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만드신 이 세상에 하나님의 권세를 내가 가진 권세처럼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해와 달을 멈추게 한 권세, 홍해가 갈라지게 한 권세, 해가 십오도 뒤로 물러가게 한 권세,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권세, 귀신이 쫓겨나가는 권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변화하는 권세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권세가 바로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창조주의 권세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창조의 권세 또는 창조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강목사님이 기도 사역하실 때 항상 이런 기도를 하십니다. 하나님, 창조의 능력으로 고쳐주세요.
바로 이런 기도가 창조의 권세를 자녀의 권세로 누리는 기도입니다. 아플 때 뿐만이 아닙니다. 인생에서 어려움이 오고, 파도가 오고, 혼자라서 외로움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창조의 권세를 사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듯이, 내 인생의 길이 없습니다. 이제 내 인생에서 보이는 길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당신은 길을 내시고, 길을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내게 주사 길을 내시옵소서, 길을 만드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선포하셔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길이 만들어질지어다 하고 우리는 믿고 선포해야 하는 것이 창조의 권세입니다.

2. 예수님의 권세 - 보혈의 권세
자녀의 권세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 보게 된다면, 우리가 얻는, 그리고 얻을 자녀의 권세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게 될 수 있고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녀의 권세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예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의 친자로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권세를 가진 자는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자녀로서 살 수 있습니다.
첫째, 죄사함의 능력이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우리가 예수에게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죄사함에는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둘째, 거듭남의 능력
[베드로전서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거듭나다’라는 말은 다시 태어나다 라는 뜻입니다. 좀더 정확히 성경을 직접적인 해석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나다 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3장과 4장에는 두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사람을 비교하여 우리는 거듭남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 복음 3장에는 모든 학식을 가진 사람이요, 권력을 가진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입니다. 그리고 관원입니다. 이 두 직분을 나중에 시간이 나면 설명드리겠습니다.
당시 니고데모는 이스라엘 중에서 존경받는 것이고, 바리새인 중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는 권력가라는 사람이라는 것만 지금은 기억하시면 됩니다. 니고데모가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거듭남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듣고 니고데모는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 태어나야 하냐고 묻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나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이 생각할 때, 구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이방민족으로 취급합니다. 개만도 못하게 취급합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니고데모는 거듭남에 대해서 해결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그 당시에 없는 것 같은 분위기를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여인은 오히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거듭남을 해결하고 돌아갔습니다.
거듭남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내가 인간의 것으로 땅의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하늘에 속해 있는 것 즉, 인간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의해서 되는 것이지 결코 인간이 자기의 노력과 자기의 힘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자신이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다고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교회에 봉사를 많이 했다고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기도를 많이 했다고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를 적게 하라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많이 한 것이 거듭남의 증거라고는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누리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과 사귀면서 살고 있으십니까?
믿는 우리들 안에는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권세가 있습니다. 창조주의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의 보혈의 권세가 있습니다. 죄사함의 권세가 있습니다. 거듭남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 안에 있는 능력 중 하나입니다. 이 복음 안에 있는 능력의 씨앗이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여러 성도님들에게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좋은 밭이라면 이미 뿌려진 복음의 씨앗, 자녀의 권세의 씨앗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고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돌짝 밭이나, 길가라면, 하나님이 자녀의 권세를 주셨어도 여러분의 삶 또한 돌이 많은 밭이요, 길 가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권세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자녀의 권세를 더욱 귀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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