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일]양영호 전도사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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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령의 권세
[누가복음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성령의 사역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는 일,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임한 성령 세례부터 시작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지상 선교 명령을 할 때까지 모두 성령을 기본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의 사역을 이렇게 두 가지로 다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우리 인간의 구원자이시다. 바로 이것이 복음 전파의 핵심이며, 이것을 성령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둘째, 죽음과 사망의 권세의 종에서 진리의 자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서 해방, 죽음과 사망에서의 해방, 병든 몸에서 해방입니다.

- 성령의 권세는 나에게 있다.
성령의 사역이 바로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의 사역의 권세가 곧 자녀의 권세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영이라 칭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영이라 하시는 성령이 예수를 믿는 자에게 임하시고,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들과 능력을 그대로 행하게 하시도록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이 계신 때의 성령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은 변치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원히 죽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오늘도 중보하시는 살아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권세는 곧 성령의 권세입니다.

1) 구원의 확신의 권세
[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고 되어 있습니까?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증거하십니다. 가장 먼저는 나의 행동으로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동 이전에 먼저 증거합니다.

구원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마치 아들인 나는 누구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야 풀리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이유는 바로 나의 행동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나의 행동의 여부에 따라 구원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구원의 대상이 되는가 아닌가입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서, 나의 행동을 보고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것은 마치 내가 아버지를 보고 저분이 내 아버지인지 아닌지가 헷갈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생각의 여부가 아닌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권세는 바로 구원 받은 백성이 믿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때로는 능력으로 보여주시고, 때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쩜 그렇게 적합한 사람이 나타나 어려운 일을 순적하게 하는지, 도저히 내 생각과 내 계산으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대답을 해야 할 때, 도저히 내 생각이라고 믿기지 않는 지혜로운 말이 나갈 때, 우리는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시며, 내가 구원 받은 백성이라고 확신하게 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확신의 권세입니다.

- 성령의 권세를 부인하는 자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성령의 이와 같은 권세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과 그 믿음에서 떨어져, 영원한 지옥불로 가는 저주의 종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누가복음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성령의 구원의 확신을 믿기 보다는, 다시 말해 성령이 날마다 나에게 주시는 증거를 믿기 보다는 나의 행동으로 인한 구원의 확신을 얻을려는 모든 행동이 성령과 충돌을 일으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잃어버리게 하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이처럼 성령을 모독하여 구원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저주의 종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아나니아와 시몬이라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도행전 8: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더욱 성령 안에서 거하시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구원의 확신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성령을 떠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디모데전서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육신의 소욕을 이기는 권세를 따르는 자는 반드시 성령과 구원에서 떠나게 됩니다. 앞에서 보았던 사도행전에 등장한 시몬이라는 남자 무당은 결국 그 사건을 계기로 믿음에서 떠나 예수님의 복음과 정 반대되는 최초의 이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3) 성령의 소욕을 따를 수 있는 권세
첫째, 예수를 따를 수 있는 능력, 또는 예수를 증거하는 능력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보혜사 성령은 예수를 기본적으로 증거하는 증거의 영입니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요 이 땅의 인간을 죄에서 해방하는 유일한 이름이라고 증거하는 영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를 따를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보혜사 성령이 예수를 증거하지 않고, 예수는 실패했다고 하거나, 능력 부족으로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것은 매우 큰 이단인 것입니다.
성령은 기본적으로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며,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이름인 것을 증거하는 영입니다.

둘째, 자기의 성품을 고칠 수 있는 능력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욕심과 성령의 좇는 행위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갈라디아서 5장에는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의 열매가 나와 있습니다. 또한 구체적으로 성령으로 행하지 않는 사람의 열매가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은 단지 구원을 위한 것, 축복을 받기 위한 것으로 한정하시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게 여기심을 받게 하고, 또한 이제 죄를 짓는 죄의 종노릇의 앞잡이가 아니라 의의 자녀가 되어 의롭게 하는 일에 앞장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곧 우리의 모든 행동이 빛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의 성품에 빛보다 어둠이 있다면, 성령을 통해서 어둠을 몰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곧잘 말하기를 성격은 천성이야. 그러므로 고치기 어려워.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지 머.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이 불같은 성격을 고치라고 하면, 차라리 천국 가라고 하는 것이 쉽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치길 원하십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성령을 붙들고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격을 고치길 원하십니다. 이유는 그 불같은 성격이나, 조급증, 의심증 같은 성격들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 불같은 성격, 예수님을 잡아가는 종인 말고의 귀를 잘라버린 그 성격이 결국 변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어떻습니까? 하도 성격이 급하고 불같으니, 우레의 아들이라 할 정도로 과격한 성격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나중에 사랑의 사도라 할 정도로 그의 서신서에 보면 온통 사랑하는 자들아 할 정도로 이 사람의 성격도 역시 변했습니다.
한번에 변한 것이 아닌 성령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들은 그들의 성격을 변하기로 결심했고, 성령님이 다루시는 성격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성령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아무것도 변할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구원도 없고, 오직 어둠만 있고, 팔자려니 하면서 마귀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인도해야 하는 빛을 비추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후나 안 믿은 후나 성격의 변화가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바로 옆에서 보니 예수를 믿은 후도 똑같은데, 어디 하나님이 있고, 너희들이 말하는 성령이 있는가?라고 물어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격도 성품도,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으로는 변할 수 없지만, 우리가 자꾸 성령으로 인침을 받고, 성령으로 노출이 되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천성이니 어쩔 수 없어 라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것도 성령은 하나님이시니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충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고, 힘들지만, 어렵지만, 당장은 성격대로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능력을 계속 의지하게 될 때, 우리는 변하고, 우리의 변한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는 달라지는 것도 무엇인가 다르구나 하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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