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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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20:1-18

1장 : 천지창조, 컨셉은 빛, 창조질서가 있다. 창조질서에서 벗어난 것은 죄이며, 죄의 결과이다. - 이혼, 동성애, 불순종
최근 대법원에서 트렌스젠더, 성전환자에 대한 호적 정정을 허용했죠.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창조질서 밖에 있는 사람들, 그럴 수 있죠. 창조질서라고 하는 틀에서 보면, 잘못된 결정입니다. 창조질서를 믿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가능한 사건이죠.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신앙, 믿는다면, 우린 반드시 창조질서를 보전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2장은 인간창조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입니다. 인간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니 좀 더 자세히 기록할 필요가 있는거죠. 여러분, 여러분은 위대한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조건, 환경은 그리 중요하지 않구요. 우리 각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최고의 작품입니다. 나란 작품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어요. 여러분 잘 아시죠. 소량 주문생산은 가격이 비싸다는 것, 그런데 우린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걸 여러분 스스로만 인정하지 않을 뿐이죠.
2장엔 또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이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했죠. 잘했는냐? 좋으냐?는 나중문제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한테 그러죠. 낙서하지 마라. 어지르지 마라. 이 정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죽는다’ 죽일 부모는 없습니다. 혼낼 뿐이죠.
3장입니다. 3장엔, 갑작기 마귀가 등장하죠. 마귀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또한 성경은 창조의 이야기보다, 죄인들의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마귀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 그것도 죄를 범한 인간의 이야기, 그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죠. 그래서 마귀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마귀가 아담을 미혹합니다. 아담은 마귀의 미혹에 넘어갑니다. 여러분 마귀는 인간이 자신을 경배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그의 미혹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분리, 교제 단절입니다. 아담은 드디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합니다. ‘아담아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소원한 관계를 다시 끈끈한 관계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진 아담은 그것이, 자신을 죽이려고하는 목소리로 들린 겁니다.
범죄한 인간은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과 살 수 없어,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철저히 차단되었습니다. 그 길을 하나님 스스로가 계시하지 않은 한 어떤 인간도 그 길로 갈 수 없습니다. 아니 갈 수는 있죠, 그러나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에 하나님이 메신저를 두고 지키시는 건, 생명 나무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 죄인인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선풍기의 보호막은 선풍기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 어린 아이들의 손가락을 보호하기 위함이죠.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제사에 대한 이야기 뿐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둘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던가? 받지 않던가? 내 기준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예배를 드렸다. 그게 다가 아니구요?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인가? 아닌가? 이게 기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거부한다면, 가인처럼 됩니다. 큰일이죠. 저도 지금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설교를 하는게 아닌, 그래서 조심스럽습니다.
우린 지금 너무 많은 예배와 설교에 치이죠. 그래서, 너무 많아서 질적으로 떨어집니다.
6장엔 인류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이야기가 있습니다. 믿음의 계보와 불신의 계보는 철저히 단절된 삶을 살다가, 교류가 시작되고, 교환이 시작되면서, 결혼을 같이 하고, 그러다 보니까? 믿음의 계보의 사람들에 죄를 접하게 됩니다. 그게 6장의 모습이예요. 여러분, 우리가 세상이 타락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가시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죠. 세상이 덜 타락하면, 우리 또한 덜 타락합니다.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면, 우리에게도 그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역전되어, 세상이 교회를 감시합니다.
이런 타락 속에서 빛나는 한 사람, 노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세상이 타락해도, 그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7, 8장은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에 의한 세상 심판은 곧 종말을 의미합니다. 자세히 기록되어 있죠.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세상의 심판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영원한 세계, 하나님 나라로의 입성을 의미하기에 죽음이 아닌 생명입니다. 우린 심판받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재판대 앞에 설 뿐입니다. 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세상 종말은 있을 것을 믿습니다.
9장에서 우린 노아의 타락을 보게 됩니다. 그는 분명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불신의 계보에 속한 사람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술에 취하게 되고, 결국은 함의 실수로 어이집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 알아야 할 것은 함의 실수를 말하기전, 반드시 노아의 타락, 글쎄 술 취한 것을 타락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됩니다만, 어쨌든, 그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함도 그런 험할 꼴을 보지 않았을 겁니다.
10장은 노아의 아들들로 시작된 계보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어떤 민족을, 피부색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셈의 계열이 믿음의 계보 뿌리인 거죠. 그러나 셈의 계열에서도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11장에서 바벨탑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바벨탑 사건 이후,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언어를 상실하고, 단지 인간과의 교류를 위한 언어만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창조세계의 변화를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아름다웠습니다. 매우, 그러나 우린 그 상태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창조세계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죠. 즉 몇 번의 변화가 있었다는 거죠.
창세기 3장에서 한번 있었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은 땅을 저주했습니다. 그래서 3장부터 인간이 살아야 하는 곳, 땅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땅은 더 나뻐집니다. 그러나 우린 그때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린 노아 홍수 이후의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 홍수는 전 지구적인 겁니다. 이건 지엽적인 홍수가 아닙니다. 전 지구가 물에 잠기고, 지구는 물의 영항 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 창세기 3장, 창세기1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적어도 두 번 변화과정을 거친 다음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 가을 하늘 아름답죠. 봄의 신록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죠. 그런데 여러분, 이게 창조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태, 흐틀어진 상태가 이 정도라면, 창조세계는 어땠을까요? 상상할 수 없죠. 사라 나이 65세에 젊은 남자의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면, 그의 청춘 때는 어땠을까요? 어르신들, 특히 어머니들 그러죠, 나도 젊었을 땐 한 미모 했어. 여러분, 모두 지금도 아름다우십니다. 여러분, 그 세계가 보고 싶지 않으세요.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위해, 그 세계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난 그 세계가 너무 보고 싶어요.
12장부터 50장까지는 믿음의 사람들, 적어도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이란 무엇인가?하는 걸 이론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 믿음의 사람을 통해, 실제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12장에서25장까지는 아브라함의 이야기, 26,27장은 이삭의 이야기, 28장부터 36장은 야곱의 이야기, 37장부터 50장까지는 요셉이야기, 물론 요셉 이야기에는 야곱과 그의 나머지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죠.
그래서 이제 두 번째 OHP로 넘어가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복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2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이 부름은 구원을 위한 부름이 아닌, 저의 표현대로 한다면, 사역을 위한 부름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믿음의 계보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의 계보의 시작은 셈이라는 겁니다.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정통 믿음의 계보에 속한 사람, 그가 아브라함이었고, 그를 어떤 목적 때문에 부르신 겁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음성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복종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나안 땅을 향해 그는 그의 본터를 떠난 겁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에, 그는 믿음으로 도전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로운 세계를 향해 짐보따리를 쌉니다. 그가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으로 떠났다는 건,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는 적어도 탁월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타이틀을 받을 만하지는 않죠. 그는 곧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그런데 12장엔 그의 탁월한 믿음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가 어떤 시험을 이기지 못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고 굳게 믿었던 가나안에 기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내 가나안을 떠나 결국 가서는 안되는 곳, 애굽까지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거짓말을 하고, 아내를 팔아 기근으로 날린 재산을 벌충합니다. 이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했다고 나도 해도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하나님께서 묵인하셨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성경의 기록 목적은 그러지 말라는 거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교훈을 주기 위함입니다.
13장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이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려합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변수가 발생합니다. 자신의 종과 롯의 종이 다투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합의하에, 헤어질 것을 결의합니다. 아브라함은 삼촌으로써, 조카인 롯에게 많은 양보를 합니다. 아름답죠. 삼촌으로서 조카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선택이 한 영혼을 구원받지 못하게 한 결정적인 것임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롯에게 좋은 땅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게하는 것, 그게 더 좋은 겁니다. 롯은 좋은 땅을 양보받고, 믿음의 계보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이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한 영혼을 포기하는 선택은 하지 마십시오. 그 영혼보다 값진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14장에는 아브라함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한 사건이 있습니다. 롯이 살고 있는 소돔 성이 전쟁에 패하여 롯이 연합군에게 잡혀갔습니다. 그때 분연히 아브라함은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건 객기라는 거죠. 아브라함은 기꺼해야 족장이구요. 연합군은 나랍니다. 그것도 연합국이라는 거죠.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객기를 보호하십니다. 먼저 승리케 하고, 뒤탈이 전혀 없도록 영적으로 조정하십니다. 이 모습이 멜리세덱의 등장으로 확인됩니다. 15장에는 아브라함의 갈등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기다리기 지치죠, 대체 하나님은 언제 내게 후사를 주시겠다는거야. 지금도 충분히 늙었는데, 그래서 선택한 것이 후사를 자신의 충복 엘리에셀로 일방적으로 정합니다. 이 문제를 하나님과 상의 했다면, 아브라함은 이런 일방적인 결정을 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하나님의 계획과 정확히 상충되는 결정이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곌획을 무력화시키는 결정입니다. 혹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이런 아브라함의 모습을 갖고 있는건 아닙니까? 기도도 해보지 않고, 누군가와 상의해 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해 놓고, 하나님 뜻이라고, 하나님 들어 주셔야겠는데요. 협박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참으시고, 다시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400여년 뒤의 일을 아브라함에게 예고해 주십니다. 출애굽의 사건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정확히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16장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결정적 실수, 합법적 간음을 행하는 보습입니다. 앞에서 창조질서를 말씀드렸는데요, 일부일처는 창조질서입니다. 첩은 창조질서의 파괴입니다. 그의 후사는 결코 하나님의 약속의 씨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공모했다는 거죠. 아브라함은 거절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하나님의 변함없는 약속을 확인시켜 준게 바로 15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애굽에서 한 거짓된 모습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누구에게도 물론 우린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약점 잡히지 마세요, 더욱이 마귀에게 꼬트리 잡히지 마세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충만해야 하는 겁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17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할례를 행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것은, 그 할례를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하나님은 더 이상 16장 이전의 실수, 그것이 사소한 것이든 죄에 이르는 실수든 상관없이 묻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 표명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반드시 할례를 수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수십년의 시간은 공염불이 됩니다. 창세기 17장은 믿음을 좇아 가나안으로 왔지만, 이런 저런 굴곡으로 그때 믿음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아브라함이 믿음을 회복하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이 고개를 아브라함이 넘지 못하면, 그는 그저 평범한 믿음의 계보에 속한 사람이되는 거구요. 이 고개를 잘 넘어가면, 아브라함에게 다시 믿음의 조상이 되는 길이 열리는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게 그의 믿음이죠. 비로 갈등의 모습은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요구, 적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한다면, 그는 따르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신앙한다는건,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도, 인 겁니다.
18장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이야기, 그 나그네와의 대화속에 있는 하나님의 두 가지 계획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후사에 대한 이야기, 또 하나는 롯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 이야기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한 심판 계획을 전해 들었을때 취해야 할 행동은 어거지 떼를 쓰는 것이 아닌, 그 도시로 달려가 외쳐야 하는 겁니다. 요나와 같이 외쳐야 하고, 롯으로 하여금 회개케 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19장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심판 이야기와 롯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야기죠.
그런데 여러분, 창세기18장과 19장은 사실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와는 그리 연관성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린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관심이 있는데,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좀더 리얼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롯의 이야기가 18, 19장에 있다는 거죠. 따라서 18, 19장은 건너 뛰어도 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창세기 17장에서 바로 21장, 또는 20장으로 넘어와야 합니다. 그래도 문맥적으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 여러분들중,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좀더 깊게 이해하길 원한다면, 17장에서 바로 21장으로 넘어가도 됩니다. 우린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알고 싶은거지, 그가 어떻게 100세에 아들을 얻을 수 있었는지, 그의 무능력을 하나님은 어떻게 가능하게 했는지, 그게 알고 싶은거죠. 18, 19장은 건너뛰어도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면, 그래서 누구보다도 아브라함에 대한 전문가라면, 18, 19장을 읽어도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도 해석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17장에서 할례를 받으므로, 그의 신앙은 점점 향상되고 있습니다. 창세기12장의 믿음이라고는 할순 없지만, 또한 12장의 믿음을 온전히 회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갈등하고 있는 아브라함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은 그만의 탁월함입니다. 그런데 20장의 실수를 한다는 거죠. 결국 여러분, 우리가 이 구조에서 알 수 있는건, 우리의 신앙이 거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믿음의 여정엔 많은 장애물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많은 사람이 그 장애와 함정에 빠진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믿음이 식는다는 거죠. 20장은 창세기 12장에 있는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라함이 모습의 재연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주에 좀더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린 지금 믿음이 여정 중에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완성된 것도, 결정된 것도 아닙니다. 우린 단지 천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달려가는 길에 마귀는 곳곳에 함정을 파 놓았고, 장애물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마귀가 그리한 것은, 우릴 천국에 이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전략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정체되거나, 뒤로 후퇴하거나 하지 마세요. 마귀만 좋아합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연약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순종이 있다면, 우리 또한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오르면, 하나님은 우릴 반드시,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을 반드시 기름진 복으로 축복하실 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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