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창세기 21:1-7

2006-08-19 アップロード · 713 視聴

요 몇 주 시를 낭독하고, 예배를 드렸더니, 여러분들은 모르겠는데요. 저는 참으로 좋았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낭송해 드리는 시는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시입니다.
가급적이면 여러분들에게 매주 시 한편 정도를 읋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목소리가 시를 낭송하기엔 택도 없이 부족하지만, 제 목소리를 듣지 마시고, 시의 내용에 집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시 한편만이 아닌, 여러 편의 시를 낭송하게 될 겁니다.
세 편의 시는 당연히 성경에 있는 거구요. 시라고할 수도 있고, 찬양이라고 할 수도 있고, 기도라고도 할 수 있고, 그 세편을 낭송할 겁니다. 이 세편은 지난 몇 주 동안 설교했던, 중심인물들이 하나님께 드린 심경이죠. 그 심경도, 은혜 받은 다음 드리는 기쁨의 찬양, 기쁨의 기도, 기쁨의 시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제가 지난 몇 주 동안 이야기했던 인물들, 먼저는 한나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다음은, 마리아입니다.
표들 기억나시죠. 다시 보여드릴까요. 그러니까? 총 4명을 이야기했죠. 사라를 포함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사라를 빼고는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해, 찬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사라는 단지 웃고만 있습니다. 미친 듯이 웃습니다. 함박웃음은 저리가라입니다. 수십 년 억압받았던, 그동안 사라의 얼굴에선 웃음이 없었죠. 물론 한나도 웃음은 없었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매일의 삶 자체가 고통이었죠. 아이가 태어날 때, 그리고 가난하지만 잔치를 열 때 이외엔 삶의 활력소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좀 다르죠. 경우가요. 그러나 그녀가 하나님의 받을 수없는 은혜, 전무후무한 거죠. 사라는 지금도 재현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누군가가 사라와 같은 기적을 경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리아와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있다는 건, 큰일 나죠.
마리아 이외의 사람들, 사라는 웃는 것으로 자신의 기쁨을 대신합니다. 한나와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기쁨을 찬양의 시로 대신합니다. 사라의 시대엔, 찬양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단지 자신의 기쁨을 웃음으로, 끊임없이 표현하는 거죠. 어찌보면, 이것도 찬양의 한 형태이라고 할 수 있겠죠. 표정이 언어의 하나인 것처럼요.
난 여러분들도 한나처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기쁨의 찬양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은 그것 때문에, 창세기17장 이후의 이야기를 좀 더 길게하는것이구요.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먹이는 것이구요. 가끔은 예화로서, 축복 받은 기업인, 축복받은 개인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 확신은 이겁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다. 그렇다면, 수천 년 전 사건은 반드시 내게서 재현될 수 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반드시 내게도 이루어진다. 이게 내 믿음입니다. 그럼 이것만 믿으면 되는가? 그렇지 않죠. 그들처럼 해야죠. 사라처럼, 한나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박성수 회장처럼, 김명숙 집사처럼, 해야죠. 그걸 하지 않고, 재현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죠.
창세기21장 1절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읽어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21장 1절에 보면,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시 읽어 볼까요?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1장 1절에서 반복되는 말씀은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먼저는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권고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행하셨다‘입니다.
먼저 권고 하셨고, 행하셨습니다. 이 관계는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권고는 약속으로, 행하셨다는 건, 말 그대로 약속을 이행하셨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단지 약속만을 하시는 분이 아닌, 그 약속을 당신 스스로가 이행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즉 약속만 남발하는 분이 아닌, 그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거죠.
두 번째는 그 말씀대로 권고하시는대, 대상이 분명히 적시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문장에서는 ‘사라를 권고하셨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사라에게 행하셨다’
여러분, 이 사라라는 이름에 여러분의 이름을 목적어로 대신해 보세요.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다’라는 문장을, 이렇게 바꿔보자구요.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를 권고하셨다’‘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에게 행하셨다’ 이 땡땡에 여러분의 이름을 집어 넣으시라구요. 한번 해 볼까요?
시작,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대균이를 권고하셨다’ 이행하셨다. 시작,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대균이에게 행하셨다’
자,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21장 1절에서 반복되는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권고하시대,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행하시대 말씀대로 행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이 중요한 겁니다. 사실 전, 사라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 몇 주 동안 여러분들에게 열심히 기도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사라처럼 기도해라, 한나도 기도하고 은혜받지 않냐? 이스라엘 백성은, 죽음을 담보로 하고 기도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한번 해 봐라. 강조했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강조하지 않은 건, 말씀의 비중이 기도에 비해 적기 때문이 아닌.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 구조 속에서 20장, 21장은 기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구요.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끊임없이 말씀을 걸어오십니다. 잊을 만 하면, 약속의 말씀을 주시죠. 잊을 만 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메신저를 보내십니다. 말씀은 끊임없이 들려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이 들려진다는 건, 아브라함의 시대엔, 당연히 기록된 말씀은 없었죠. 그러니 읽을 순 없는거구요.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음성으로 주로 들려주시는 거죠. 그런데 우린, 음성으로 듣기보다는 기록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 속에서 풀어야 하고, 그 이외의 부분은 특별히 계시하실 수 있죠. 말씀의 중요성은 제가 굳이 더 강조하지 않아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씀이 중요하다. 말씀을 많이 읽어라. 그 말보다는, 저는 창세기21장 1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하나님이 아무런 것에도 제한 받지 않으시는데, 당신이 하신 말씀에는 제한을 받으시는 구나. 즉 당신의 말씀에 발목 잡히시는구나. 그럼, 우리의 돌파구는 그 말씀이구나. 이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같은 의미죠.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해 놓고, ‘우리의 돌파구는 당신 스스로가 제한되는 말씀이다’라는 건, 결국 강조하고 있는거죠.
지금 여러분들중, 혹시, 목사님께서 서두에서 시 얘기를 하더만, 그 말이 귀전에서 맴돌고 있는 분 있습니까? 시 낭독합니다. 한나의 찬양시, 마리아의 찬양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찬양시 다 낭독합니다. 걱정마세요.

이게 하나님의 약점이세요. 약점은 우리의 절호의 기회입니다. 잘 활용해 보세요. 난 여러분들에게 성경 66권 전부를 가르칠 생각은 없습니다. 66권중, 단 한권만이도 제대로 이해하면, 나머지 65권은 절로 풀어집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독보다는 정독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약점 가장 잘 이용한 사람이 있죠.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을 때 그는 살기 위해, 하나님의 약점을 이용합니다. 정확히 하나님은 당신의 약점 때문에, 그를 살려주죠. 그 약점은 눈물입니다. 기도를 하면 흘리는 눈물에는 더 약하시죠. 왕하20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주시면서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하나님의 약점을 잘 이용하세요. 그러나 히스기야 처럼은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도 둘중 하나를 활용하세요. 눈물로 기도하시든가? 말씀과 씨름해 보세요. 반드시 효과가 있을 겁니다.

한 말씀 더 드리고, 시를 낭독하겠습니다.
21장 2절을 보겠습니다. ‘사라가 잉태하고’라고 되어 있죠. 즉 21장1절의 결과, 사라는 잉태했습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늙은 아브라함에게’라는 말씀이 있죠.
21장 1절의 결과가 사라가 잉태하게 되었고, 그리고 늙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아들을 낳아 주었습니다.
여기서, 사라가 잉태했다.는 말, ‘늙은 아브라함’이라는 말, 이 둘 말의 공통점은, 이들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잉태가 되었다. 아들을 얻게 되었다.라는 무능력을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권고는 무능력을 밀어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무능력을 뒤집습니다. 그럼 어떤 권고며, 어떤 행하심이냐? 당연히 그 말씀대로 권고요, 그 말씀대로 행하심이죠.
우리의 무능력을 가능하게 하는건, 권고, 행사심 이전의 그 말씀입니다.
사라가 잉태한 것은 그가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은 건, 그가 이스마엘 때처럼,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에겐, 사라는 경수가 끊긴지 오래구요. 사라는 경수가 끊기기 이전에도, 그는 임신 불가능의 상태였습니다. 사라는 아들을 낳게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능력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의지는 강합니다. 그런데 능력은 없습니다. 성공하겠다는 의지는 있죠. 이것도 없으면, 곤란합니다. 얘들을 잘 키우겠다는, 얘들은 성공시키겠다는 의지야? 한국의 어머니를 누가 따라가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현실적으로 능력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과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능력 없음을 해결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다음 주부터 우리가 차량 운행을 해야 합니다. 의지가 있으신 분이 있더라구요. 물론 관심도 없는 분들도 있구요. 의지만 있으면 되는가? 아니죠.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나는 대형입니다. 교회 차량은 보통 1종은 되야죠. 또 의지도 있고 능력만 있으면 다냐? 아니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강조하는건, 믿음입니다. 지난주 유년부 관계자들에게, 오늘까지 말미를 주었습니다. 그때 제가 말한데, 다른 게 아닌, 천재지변이 있지 않는한, 아이들보다 먼저 교회에 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아이들보다 먼저 와 있어야 합니다. 왔다 안 왔다 하면, 아이들이 교회학교 선생님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럼 교육 효과는 없구요. 제가 선생님들에게 분반공부를 하라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만한 여건도 안되기 때문에요. 그러나 하나, 아이들보다 먼저 와서, 아이들을 맞아라. 그리고 쓰다듬고, 안아줘라.
이게 제가 교회학교 선생님들에게 요구하는 믿음입니다.

사라가 잉태한 것은 그가 가능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은 것은 그가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사라는 후사의 문제에 대해서만 무능력한 것이었지, 나머지 삶의 문제, 경제적 문제, 군사적 문제는 무능력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특정 부분에 대해서만 그런거지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여러분의 무능력을 해결하는 건, 여러분의 인간관계가 아닙니다. 그건 일순간적인 겁니다. 미봉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한다면, 영원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련해서, 늘 눈에 보이는 인간관계에 집착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합니다.
난 여러분들에게도, 21장 2절의 말씀처럼, ‘사라가 잉태했다’는 말처럼, ‘늙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었다’는 말처럼 반드시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21장 1절이 선행되어야 하구요. 또 21장1절이 되기 위해선, 창세기 아브라함의 이야기 구조속에서 20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 보세요.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때 했던대로, 우리들에게도 해 주십니다.

시로 가죠. 먼저 소천의 시입니다.
아름답죠. 예수님은 여러분 바로 곁에 계십니다. 여러분, 무지개가 비가 개면 뜰까요? 비가 개면 보이는 거겠죠. 무지개는 비가 억수로 내리는 그때, 그곳에 있었습니다. 우리 눈에 비만 보였을 뿐이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시입니다.
이렇게 감격어린 찬양을 하나님을 우리도 드릴 수 있을까요? 난 여러분들이 이런 감격을 맛볼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마리아의 기도를 먼저 읽겠습니다.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개역 개청판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입니다.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에서 그 자손은 단지 육적인 혈육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앙공동체 내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 모두죠. 여러분들에게도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한나의 찬양은 여러분들이 읽어 보시구요. 프로젝터를 보시겠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릴 마지막 말씀은 이 부분입니다.
한나의 기도문과 마리아의 기도문은 형식적으로 매우 유사합니다. 구조가 거의 같습니다.
한나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대비가 되는 거죠. 유족하던 자가 품을 팔게도 하신다. 많은 자녀를 둔 자가 쇠약하게도 하신다. 또한 주리던 자를 다시는 주리지 않게도 하신다. 잉태치 못한 자를 잉태케 하신다.
그런데 나는 바로 잉태하지 못하던 자였다. 나는 주리던 자였다. 나는 가난한 자였다. 나는 핍박을 받는 자였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가난한 자였다. 나는 주리던 자였다. 나는 비천한 자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요. 잉태하게 하셨다. 나는 주리지 않게 하셨다. 나를 비천한 자가 아닌 영광된 자되게 하셨다. 이거 아닌가요.
그럼 우린 어떤가요? 여러분 개인을 대입해 보세요. 그리고, 아 나도 비천한 자다, 아 나도 가난한 자다. 아 나도 주리는 자다 하는 결론이 나오면, 답은 하납니다. 미친듯이 전능하신 하나님게 매달리세요.
여러분이 지금 하는 방법은 잘못된 겁니다. 잘못된 거라면, 이제 한번쯤은 바꿔 볼 필요도 있습니다. 사라가 그랫듯이, 한나가 그랬듯이, 바꾸면 길이 보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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