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창세기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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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번주도 설교 시간을 조정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주는 원고 내용과 많이 다릅니다.

오늘은 창세기21장 1절에서 7절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설교 시간이 매우 길었습니다. 그래서 60분 테이프가 다 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매우 짧게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본문으로 바로 들어갑시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들려 드릴 핵심 말씀은 4절입니다.
4절을 다시 읽어 봅시다.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이 4절은 21장 1절 ‘그 말씀대로 권고하셨다’‘그 말씀대로 행하셨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주체이기 때문에, 하나님 당신이 명을 받지는 않죠. 그런데 하나님도 그 말씀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것이나,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으로 명을 받은 자가 명대로 하는 것, 다르지 않죠. 왜 우리가 하나님의 명대로 행해야 하는가? 그 분이 말씀대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가끔 공수표를 날리죠. 누구에게요. 얘들한테요. 그러니까? 얘들도, 우리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가 내 말대로 하지 않는데, 얘들이 내 말대로 한다는 건, 기적이죠.

창세기17장10절부터 있는 할례 규정, 하나님이 지정하신 할례의 법,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남자가 할례를 받습니다. 왜 남자냐? 그건 여러분이 직접 하나님께 가서 여줘보세요. 할례라는 것이, 단지 남자의 양피를 베는 그 의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첫 번째는 남자는 할례를 받으라는 겁니다. 여기서 남자는 아브라함의 집에 속한 모든 남자를 의미합니다. 아브라함만이 아닌, 서자인 이스마엘도, 그리고 종들도, 용병들도, 전부 남자면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예외인 남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둘째는 양피를 베라는 겁니다. 셋째 할례의 시기는 태어난지 8일만에 하는 겁니다. 예외없이, 남자아이는 반드시 8일만에 할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 아브라함의 집에 속한 사람의 자손들은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네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아브라함은 창세기17장에서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하실 때만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하고는 그렇게 밀접한 관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겐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이게 눈앞에 닥쳤습니다.
여러분, 혹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 명령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삭이 죽을까요? 거부할 수도 있죠.
그런데 성경은, 21장 4절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대로 했다’라구요.
여러분, 이겁니다.
여기서 명대로 했다는 것은, 단 하나도 거르지 않고, 그대로 했다는 의미죠.
남자는 한다. 양피를 벤다. 대대로 한다. 그런데, 하나님, 이 아이가 좀 커서 하면 안되겠습니까? 이거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는데, 좀 너무 한거 아닙니까?
돌은 지난 다음에 합시다. 이렇게 타협하자고 했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거부하셨을까요?4가지 중에서 3가지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제가 4가지로 분류했지만, 그게 열 가지라면 열을 다 해야 합니다. 그것도, 하라는대로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두 가지를 주십니다. 하나는 돌판에 새긴 십계명이구요. 이건 하나님께서 직접 돌에 새겨 주신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십계명을 지키면 됩니다. 그런데 또 하나를 주셨는데, 그건 다름아닌 성막입니다.
출애굽기가 총 40장인데, 24장15절부터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성막 설계도입니다. 물론 성막 설계도 뿐만 아니라, 성막과 관계되는 것들을 포함하죠. 이게 31장까지입니다. 35장부터 40장까지는,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완성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중간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성막 설계도를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죠. 그게 32장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는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불행한 거죠. 정말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구원의 은혜를 값없이 받았는데, 절대 그러지 마세요.
하나님은 정말 쪼잔하게, 성막 설계도를 그려 주셨습니다. 재료서부터 치수, 위치까지, 정말 쪼잔하시죠.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요구하십니다. 이렇게 해라, 내가 준 설계도대로, 너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성막을 만들어라.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명대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믿음입니다.
하나님, 제가 그래도, 애굽에서 왕자로 자랐습니다. 피라미드를 지을 때 보니까? 이렇게 하던대요. 제 나이가 인생 80이 넘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편히 계시죠.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건 믿음이 아닙니다.
여러분, 믿음은 순종입니다. 믿음이 뭐라구요.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 하나님 말씀은 아 좋은 거구나, 그래 좋은 말이지, 그게 아니구요. 내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명대로 한다는 거, 이게 자신과 관계되는 거라면, 쉽습니다. 할례, 수 십번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막 태어난 새끼라는 거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그 놈에게 해야 한다는 것이, 망설이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선택합니다. 그래 하나님 말씀대로 하자. 여러분, 아브라함이 이런 갈등 없이, 이삭에게 하나님 명대로 할례를 행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는 정말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도 더 하자 말자, 하자 말자, 갈등하다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겁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스런 외침을 외칩니다. ‘아버지, 이 잔을 거둬주소서’라고 외치시죠.
여러분, 예수는 이 땅에 오실 때,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 죽기위해 왔다는 거죠. 처음부터 그랬어요. 그런분이, 죽음을 코 앞에 두고, 아버지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내게서 이 잔을 거둬주소서’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해주소서’ 그리고 예수님은 선택하십니다. 그러나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예수의 최종 선택은 하나님 말씀, 아버지 의도에 대한 철저한 순종입니다. 갈등은 여러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선택했다면, 선택했다면, 그 조건대로 해야만 하는 겁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아브라함의 창세기 12장에서의 모습과 비교해 보세요. 12장에서 그는 기근을 맞았을 때,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 대는대로 선택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건 핑계죠. 아브라함의 믿음은, 12장과 21장 전혀 다름니다. 갈등의 구조는 같은데, 선택은 다릅니다. 여러분, 정말 갈등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선택하세요. 손해나지 않습니다. 만약 여기서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의도하는 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대로 하지 않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그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하는 겁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경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겁니다. 이것 빼고, 저거 빼고, 넘어가고, 남는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대로 했다는 건, 자신의 복잡한 생각을 다 포기했다는 겁니다.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결국 순종이란,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의 생각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 이런 성경 구절을 적용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은 격이 다릅니다. 내 생각과 5살짜리 생각이 같을 수 없겠죠. 이 정도면 약괍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는 마치, 인간과 원숭이와 같습니다.


내가 내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 명대로 할 수 있는 건, 그래 내가 하나님 명대로 한다고 해도, 잃을 건 아무것도 없다. 내 생각을 관철해도, 어떤 경우엔, 잃을게 있는데, 그래, 까짓것, 여러분, 이건 자포자기가 아닙니다.
욥기에 보면, 욥이 이런 고백을 하죠. 주신 자도 하나님, 취하신 자도 하나님, 오직 나는 하나님을 찬송한다. 욥기1장21절의 말씀입니다.
욥기 1장6절부터 2장10절까지 중에서 많은 부분은, 사실 뒷부분으로 편집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읽어야만, 욥기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게 앞부분에 있다보니까? 약간은 혼돈스럽죠.
욥처럼 생각하면, 참으로 편할 겁니다. 내게 있는 모든 걸 하나님이 주셨다. 내 것은 없다. 있어도 없는 것이고, 없어도, 있을 수 있다. 지금 내게 있는 건, 내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내 손에 있을 뿐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할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겁니다.
그래, 만에 하나, 이삭이 잘못 되었다치자. 여기서 멈췄다면, 그는 하나님 명대로 할례를 이삭에게 행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닌, 하나의 생각을 더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무능한 나에게, 100백에 가능하게 하셨는데, 101에는 안되겠냐? 110세에는 안되겠냐?
여러분, 아시죠. 처음이 힘들지, 그 다음부터는 술술이라는 거,
아브라함의 생각이 이렇게 유연하게 바뀌면서부터, 그는 갈등하지 않습니다. 갈등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전혀 다른 세계가 반드시 열립니다.
한국 제일의 기업, 모그룹의 오너는 오래 전에 그랬죠. ‘마누라외는 다 바꾸자’ 그리고 그 기업은 다 바꿨습니다. 앞선 기업일 수 밖에 없는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한번 바뀌 보시죠.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그 틀에서 벗어나 보세요. 한번쯤, 왜 나는 늘 이 구조 속에서 생각해야만 했을까? 라고 자문해 보세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그의 믿음이 12장보다 좀 더 성숙해 졌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이 바뀌지 않는 한,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바꾸세요.
믿음을 바꾸면, 모든게 바뀝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는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 주어집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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