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고 윤효택 집사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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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천 : 2006. 9. 1(금)오후10경
2)장소 : 시립서북병원
3)발인 : 2006. 9. 3(주일) 15시30분

*우리 신앙공동체는 갑작스런 비보앞에 전 공동체가 마음을 같이 하여, 2006. 9.3일을 추모의 날로, 그리고 오후예배는 추모예배로 장례식장에서 드리기로 긴급히 결정하였습니다.

본문 : 요10: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 도적이 온(오는) 목적
①도적질한다
⇒ 구원받은 사람의 것을 도적질한다
②죽인다
⇒ 구원받은 영혼을 죽인다
③멸망시키려는 것

도적을 누구라고 ‘규정’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적어도 우리 편은 아니라는 거죠.
욥기의 이야기 구조 속에서 이 말씀을 풀어봅시다.
도적질 이라는 것은, 도적질 하는 놈이, 도적질을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서 도적질 하지는 않겠죠. 적어도 도적질 할 만한게 있으니까? 하겠죠.
무일푼인 사람을 상대로 도적질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도적이 욥에게서 도적질합니다. 욥은 성실하게 평생을 모았습니다. 한푼 두푼, 여기엔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도 있죠. 개미처럼 모아서는 욥과 같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땀의 수고를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차고 넘치도록, 흔들어 넘치도록,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땀의 수고, 노동의 수고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뭐가 썩는 다구요. 썩어서는 안되는, 믿음이 썩습니다. 썩을 것과 썩지 않을 것을 구분하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재산을 앗아갔습니다. 도적이 욥에게서 재산을 앗아간 적은 결국 욥을 멸망시키기 위합니다.
두 번째 도적은 죽입니다. 욥의 아들들을 죽였습니다. 욥의 아내는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과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욥의 곁을 떠났습니다. 욥의 곁을 떠났다는 말은, 결국 믿음의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죽인다는 건, 도적질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도적질이 도적질 할 것이 있을 때 유효하듯이, 죽인다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죽은 자를 다시 죽이지는 않죠. 이 말을 죽인다고 하지 않죠.
죽인다는 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인다는 겁니다.
여러분, 살아 있습니까? 그럼 여러분들도 도적의 살해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죽었다면, 결코 도적은 여러분을 죽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죽었니? 살았니?
도적하는 자의 최종 목적은 도적질이든 살인이든, 결국 멸망입니다. 도적은 결국 있는 것에서 없게 하는 것, 그게 그 놈의 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 있는 것을 없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본인 뿐만 아닌, 타인에 대해서도,
우리는 도적질 하고, 죽이는 이런 풍토 속에 삽니다. 마귀의 권세 하에서는 이걸 결코 면할 수 없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합니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아야 합니다. 내가 좀 더 먹기 위해,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가?
그리고 그 예수를 믿는 우리는 어떤가?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는 겁니다. ‘나는 양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왔다’ 그것도 풍성히 주기 위해 왔다.
도적과 예수님의 역할을 확연히 다릅니다. 도적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난리 법석이죠. 예수님은 오직 ‘생명’ 생명입니다.
우린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명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풀면 쉽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11장25, 26절 말씀입니다.
도적은 있는 걸 빼앗죠. 오직 있는 자에게서만 빼앗습니다. 도적의 대상은 없는 자가 아니에요. 여러분입니다. 믿는 자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모든 사람을 포함합니다. 생명이 없는 자에게 생명을 주고, 생명이 꺼져가는 자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생명을 없는 자란,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구요. 생명이 꺼져가는 자란, 예수는 믿지만, 개갈 나지 않는 사람, 거듭나지 못한 사람, 변화되지 못한 사람. 이런 유형의 사람이죠.

이 예배는 ‘고 윤효택 집사님을 추모하며 날이며, 오늘 오후예배는 장레식자에서 추모예배로 드립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사실 교회에서는, 또 유가족들은 살려보려고 무지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집사님 가시는 그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고 윤효택 집사님을 우린 다시 볼 수 없습니다. 분명, 예수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했는데, 그는 죽었습니다. 우리 곁에 없습니다.
‘나를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즉 나를 살아서 믿는 자에는, 믿는 즉시 생명이 주어졌다는 예수님의 보증이죠. 그러니, 난 확신합니다.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 강림하실 때 부활하신 것이고, 그는 영원히 죽지 않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는 우리 곁에 없습니다. 그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면, 우리 곁에 있어야 하는데, 그는 없습니다. 그가 없음으로, 여러분 우리에게 또 다른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난 오늘 여러분들에게 그걸 말씀드리기 위해, 창세기 강해가 아닌, 요한복음 10장10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은 겁니다.
난 죽어야 할 목숨이, 예수의 보혈로 살게 되었습니다. 난 영원히 죽지 않음을 믿습니다. 나에게 어떤 경우에도 죽음은 없습니다. 내게 아무 공로 없이 생명을 얻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생명을 얻었다면, 난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난 윤효택 집사님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내게 그런 능력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난 이 무능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고,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 그걸 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 일은 나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교회가 생명을 살릴 수 없다면, 그건 교회가 아닙니다.
어제, 고 윤효택 집사님께 문상을 오신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문상을 온 사람들에게 제가, 부조를 하지 말라고 강요했습니다. 참 이상했죠. 그리고, 교회에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부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건 무기명입니다. 그리고 부조의 한도는 제한됩니다. 최고 2만원입니다. 그 이하로 여러분 감동되는 대로, 하십시오.
오늘 헌금중에서, 만원짜리는 여러분의 부조로 알겠습니다.
오늘 십일조를 하려고 했던 분들중, 봉투에 하지 않고, 그냥 헌금하시면, 그걸 부조로 알겠습니다.
평소처럼 하시는대, 오늘 헌금 집계할 때, 만원짜리는 다, 고 윤집사님께 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오늘 만하겠습니다. 모르고 안 갖고 왔는데요. 그래도 오늘만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헌금하신 만원짜리를 집계하고, 또 교회에서 보충해서, 그 부조는 지은이 장학금으로 적립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겠습니다.
난 이게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생명을 살리는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혹시 많이 하고 싶은데, 2만원으로 제한되었다 싶으면, 다른 이름으로 하세요. 또 하겠다는데, 내가 막을 수 있나요? 그러나 이름은 적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의 손을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이건, 분명히 약속드리는데, 그래서는 안돼지만, 여러분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시작입니다.
오늘 만원짜리로 헌금된 금액은 윤지은 장학금의 종자돈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믿음안에서 꿈을 펼칠때, 반드시 유용하게 사용되게 될 겁니다.
난 오병이어의 기적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신 정성어린 오병이어는 5천명 이상을 먹이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게 될 겁니다.
만약 우리가 개별적으로, 부조를 한다면, 음식값으로, 장제비로 이렇게 사용될 것 같아서, 제가 일부러 막았습니다.
장례비용은 죽은 자들의 부조로 해결하도록 하고, 우린 생명을 살리는데, 우리의 정성을 모읍시다.
분명히 약속하는데, 이건 부좁니다.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교회가 보응할 것이고, 난 하나님께 여러분들을 보응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혹 동참하시지 못하시는 분들은, 따뜻한 위로의 말로, 유족들에게 힘을 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토요일 장례식장을 하루 종일 지켰습니다. 조문객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유족들의 말때문에 그날 자정까지, 내가 별로 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설교를 하기 싫었는데, 내가 꼭 설교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급히 설교를 급조했습니다. 아마 오늘 설교는 죽을 쑥것 같은데,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윤지은을 위한 장학금은 총 일백만원이 적립되었습니다. 교인들과 외부지원금이 700,000원정도, 교회 부담금 300,000원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의 재정 규모로 보면, 매우 큰 금액입니다. 교인들이 제 뜻을 잘 따라 주셨습니다.
정말 잘 키울 겁니다. 믿음으로, 꿈을 이루는 아이로 키울 겁니다. 교회와 사회의 일꾼이 되도록 가르칠 겁니다.

tag·9월,3일고,윤효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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