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배 처소 공사 장면

2006-12-12 アップロード · 23,418 視聴

주소 : 녹번동 98-47 (지하)
평수 : 약42평 정도, 그리고 여유공간

공사기간 :
- 1차 2006.11.20-25
- 2차 2006.11.29, 12.1-2

디자이너 : 전명심 사모
작업반장 : 조성택 집사
시 다 : 김대균 목사
양영호 전도사
박영근 집사 등등
영양보충 : 지영희 집사님외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예배 처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임대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기존의 시설을 철거하고, 설교단을 만들고, 도색작업을 하고, 정면에 인조대리석을 붙이고, 바닥에 타일을 붙이는 것 등등을 하루 작업으로 마쳤습니다.
월요일 오후부터 시작했는데, 화요일 일어나가 어려울 정도 였고, 수요일은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힘이 들지 않았던 건, 죽어라 작업을 하면, 가시적인 뭔가가 보인다는 겁니다.
그리고 토요일 장의자를 나르고, 스피커를 설치하고, 난방기 설치하고, 첫 예배를 그곳에서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공간이 생기게 될 줄,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42평, 지하
수백억원짜리 '민족 성전' '000성전'은 아니지만, 우리는 감격했습니다.

조장이신 집사님께서 생업을 중단하시면서 작업을 진두지휘하셨는데, 그분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그랬죠. '조 집사님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겁니다' 그때 '제 일인 걸요'
그 소리를 듣고 저는 울컥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목사로써......

공사를 위해 수고하신 집사님들, 그리고 성도님들 수고하셨습니다.
이도훈-고현숙 집사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제 아내가 모교인 모 신학교 게세판에 올린 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난 2주간은 교회 공사관계로 무척이나 힘들고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아니 교회 김장한 것까지 따지면 보름 이상을 바쁘고, 힘들게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육관을 새로 얻었고 그 내부 공사를 외주 줄 수 없는 형편이어서 목사님과 전도사님과 저와 교인 몇몇이 정말 속된 말로 ‘노가다’라는 것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아직도 손이 부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많은 지장이 있습니다. 평소에 건강을 자랑하던 남편도 파김치가 될 정도로 무척이나 힘든 노동이었습니다. 미술학원이었던 지하의 벽들을 헐어내고 새로 장식해야 하는 전면적인 공사였기 때문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노동에 지친 교인들은 오후에나 왔고, 오전부터 남편은 혼자서 하루는 강단을 만들기 위하여 모래와 벽돌을 실어 나르고, 또 하루는 강대상 벽면을 장식할 40㎏가 넘는 대리석 박스 수십 개를 1층에서 지하로 혼자 날랐고, 또 하루는 바닥에 붙일 텍스 박스 수십 개를 혼자서 옮기면서도 즐거워했습니다.
밤 늦도록 손수 대리석을 벽에 붙이면서, 강단을 만들어가면서, 바닥을 붙이고, 페인트를 칠하면서 눈에 보이게 바뀌어가는 교회의 모습에 즐거워했고,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고통의 산고를 겪으면서도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보면 그 고통을 잊어버리듯이 목사님과 우리 교인들은 바뀌어가는 교회의 모습에 손에 물집이 잡히고, 손바닥이 붓도록 일하는 노동의 고통은 잊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인테리어까지 거의 마치었고 잡다한 물건들을 채우기만 하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2주간의 고된 노동이 이제 서서히 긴장이 풀리면서 몸에서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온 몸이 돌덩이처럼 무겁고, 누적된 피로로 온 몸 여기저기가 쑤시는 증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몇 일간 몸져누울 것 같습니다.

마음은 기쁘고, 행복하지만 몸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아마도 징계를 당한 학생들의 영은 기쁘고, 행복하지만 육적인 마음 한 구석은 힘들고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나 우리 교인들에게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와 정욕적인 기도의 차이점을 기도의 내용에 두지 않고, 그 결과에 따라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았을 때 감사할 수 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한 기도이고, 가인과 같이 분노가 나거나 시험에 들거나 한다면 정욕적인 기도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학내 사태가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감사하며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었고, 나름대로 차분히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감사하지 못하고 분노하고 있는 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한 기도가 아니라 정욕적인 기도를 한 것인가요? 학내 사태가 벌어지는 초기부터 수없이 기도원에서 기도하시고, 연일 기도한다고 공공연히 말 했었는데 왜 지금의 그 결과에 대하여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토록 분노하면서 자신의 날카로운 칼로 학생들을 끝까지 몰아치는 것인가요? 너무나 안타깝고, 차마 보기 민망한 상황이네요.

그동안 입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것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며 따르는 몇몇의 학생들에게만 해당되고, 자신의 뜻대로 고분고분 따라오지 않은 600 여명의 학생이나 25명의 학생들은 결코 아니었나보네요. 예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도 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리더쉽을 따라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작은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도 자신이 혼자 묵묵히 등짐을 져 나르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인들을 몸으로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하게 목회를 할 수 있는데, 학교의 총장으로 큰 건물 외주주고 뒷짐 지면서 감독해도 모든 학생들을 몸과 마음으로 사랑할 수도 없으며, 만족하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못한 당신은 진정한 목회자도 될 수 없고, 진정한 리더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 성령의 뜻인지 아닌지는 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고 했듯이 지금 이 시점에서 분명히 할 것은 누가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행동했는가? 입니다.
지혜로운 자라면 어떤 부당함이나 수치를 감내하면서도 분노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에 감사하며 당당히 직권휴학 당한 학생들과 징계를 당하면서도 영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징계당한 25명의 학생들인가? 아니면 그 결과에 대하여 가인과 같이 분노하면 남은 권력을 남용하면서까지 끝까지 자신의 생각이나 욕심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사람인가? 를 보고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지도자라면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가말리엘과 같은 생각을 가졌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 교법사 가말리엘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오니 이 사람들을 상관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tag·예배,처소,공사

非会員の場合は、名前/パスワードを入力してください。

書き込む

[이런일 저런일]

リスト形式で表示 碁盤形式で表示

05:00

공유하기
양수연돌행사
7年前 · 38 視聴

07:24

공유하기
어버이 은혜
10年前 · 1,519 視聴

07:32

공유하기
어린이 날
10年前 · 76 視聴

02:44

공유하기
교단가
10年前 · 161 視聴

10:39

공유하기
성결교단 100주년
10年前 · 295 視聴

03:11

공유하기
교육관 확장 감사예배
10年前 · 724 視聴

03:08

공유하기
교육관 확장 감사예배
10年前 · 363 視聴

10:19

공유하기
교육관 확장 감사예배
10年前 · 609 視聴

11:05

공유하기
교육관 확장 감사예배
10年前 · 104 視聴

07:56

공유하기
성탄행사
10年前 · 495 視聴

01:51

공유하기
임찬미 발표회 날
10年前 · 306 視聴

37:52

공유하기
전교인 야유회
10年前 · 48 視聴

02:16

공유하기
주완이를 위한 찬송
11年前 · 34 視聴

01:20

공유하기
명주-목양교회 정식입교
11年前 · 150 視聴

00:24

공유하기
양승혁 유아세례
11年前 · 119 視聴

04:04

공유하기
세례식 끝난후....^^
11年前 · 93 視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