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8일]양영호전도사님 말씀

2008-05-20 アップロード · 215 視聴

반석위의 집 모래위의 집

마7:24-27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나의 집은 어디입니까?
곧 나는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들판에서 살고 있는가? 아님 깊은 산골짝에서 혼자 살고 있는가? 편안하고 아늑한 집에서 살고 있는가? 또는 도시의 아파트인가? 시골의 한적한 집에서 살고 있는가?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신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의 영도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어떤 형제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유학을 갔습니다.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는 데, 교수가 이 형제를 대개 어려워하고 힘들어했습니다. 교수가 내 주고, 교수가 연구를 줄 때마다, 기일을 어기기 일수이고, 때로는 내준 과제를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주제를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교수는 형제를 불러서 다른 과로 옮길 것을 부탁했습니다. 나를 미워하고, 나를 싫어하는데 왜 나한테서 계속 배우려느냐? 다른 공부를 하거나 다른 교수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최후 통첩을 했습니다.
이 형제는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교수님을 싫어하기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교수님이 무서워서 그랬습니다.
교수님은 어이 없어 했습니다. 무서운 분이 아닌데 왜 무서워할까? 형제의 성장 과정 속에서 아버지는 매우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조금만 어긋나도 바로 호통과 회초리로 그리고 벌로서 너무 엄격한 분이셨습니다.
형제는 교수 앞에서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곰곰이 살펴 보았습니다. 알고보니 교수만 무서워 한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 교회에서는 장로님들을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주장을 해 본적 없이 무서워서 시킨대로 다 한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한 교회의 담임으로 드디어 부임하여 목회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이 목사님을 아끼는 선배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 선배 목사님은 자신이 목회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알려주며, 이렇게 하는 것이 좋더라, 저렇게 하는 것이 좋더라 하면서 자상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후배목사님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폭발하여 울면서 소리치며 나가버렸습니다.
선배 목사님은 기가 막혔지만, 후배 목사님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진정된 후에 선배 목사님은 아까의 일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후배 목사님은 자기가 드디어 담임 목사가 되어 자기 맘대로 할 수가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선배 목사님이 마치 자기 말대로 하라고 한 것처럼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배 목사님은 후배 목사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후배 목사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자기가 결정해서 해 본 일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무엇인가 할려고 하면, 그 어머니가 간섭하며 바지는 멀 입어라, 넥타이는 멀 매어라, 이 색깔이 지금 좋다, 저 색깔이 좋다. 이 아가씨는 안된다. 저 아가씨도 안된다. 저 친구도 안된다. 이 친구는 이래서 안 된다. 이 학교는 안된다. 저 학교의 학과는 안된다. 결혼식은 이렇게 해야 한다. 등등 한번도 자기의 결정으로 해 본적이 없는 목사님이었습니다.
드디어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할려고 했는데, 선배 목사님의 조언이 조언으로 들리지 않고, 어머니의 목소리로 들린 것입니다.

자. 첫 번째 형제 안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바로 아버지입니다. 두 번째로 후배 목사님에게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어머니입니다.
이 두 사람의 집에는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희’라는 자매는 돈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열심히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감도 돈이 많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자매는 교회에서 돈많은 집의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자는 지금도 돈 많이 벌어다 줍니다. 그러나 집에는 한달에 두세번 정도 들어오기만 합니다.

‘효석’이라는 형제는 지금 자기 아내와 부부싸움중입니다. 그 싸움의 내용인 즉, 너는 왜 우리 엄마처럼 못하니? 이게 반찬이니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맛없게 하지 않는다. 넌 왜 다리미질도 못하니 우리 엄마는 잘하는데...

‘미리’라는 자매는 남편과 싸움중입니다. 왜 우리 아빠처럼 청바지를 다려주지 않아? 우리 아빠는 이런 것 정도야 그냥 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알고 보니 이 자매의 아버지는 자기 딸의 속옷까지도 다려주는 아빠였습니다.

어떤 사장님은 일만 열심히 합니다. 알고보니 아버지가 이 멍청한 녀석아. 넌 그정도 밖에 못하냐?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서 아버지께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일만 하고 있습니다. 인정받을려고.

어떤 자매는 열심히 다이어트 합니다. 이 자매가 지나갈 때 남자들이 너무 예뻐서 쳐다보는데도 자기 자신에게 불만스러워서 너무 심하게 다이어트 합니다. 그러다 거식증이 와서 괴로운데도 다이어트 합니다.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이 자매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소리가 여전히 토하는 중에도 메아리칩니다. 돼지 엉덩이야, 뚱뚱보야....

반석위의 집, 모래뒤의 집
자기 안에 어떤 집이 있습니까? 그 집에서 안식을 얻고 있습니까?
성도여러분, 성도 여러분 안에 있는 집은 어느 집입니까? 어떤 집입니까?

다양하게 소개 했어도 결국 우리는 두 종류의 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반석위에 집입니다. 이 반석위의 집은 풍랑이 일어도 안전합니다. 이 반석위의 집은 어떤 위험이 와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면에 모래 위의 집은 어떤 위험이 조금만 와도 언젠가 무너지는 집입니다. 조금만 인생의 어려움이 오면, 도망갑니다. 조금만 인생의 어려움이 오면 나는 죽을거야 하고 입에 달고 삽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거봐 난 이것을 할 수가 없어. 라고 포기합니다.
조금만 인생의 어려움이 오면, 부모님에게 쪼르르 달려가 울고 불고 난리를 쳐서 부모에게 도움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집에 살고 싶으십니까?
우리가 반석위의 집에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반석위의 집은 바로 내 마음 속의 그리스도의 집입니다.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은 원래 음란하게 살지 말 것을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한번 더 적용하고 싶습니다. 몸이 성령의 전이라면, 몸 안에 있는 마음 또한 성령의 전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집으로 바꾸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움직여야 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행하여여야 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신비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책의 제목처럼 내 마음 속의 그리스도의 집으로 사는 성도님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움직이는 귀한 축복이 있길 원합니다.

옆에 계신 성도님들에게 물어보세요.
집이 어디십니까?
세상나라 내 마음시 그리스도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집으로 이사하실 것입니까?
천국나라 천국시 아버지 집에 살 것입니다.

tag·하나님,예수님,믿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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