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1일]창세기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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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믿음에 대하여, 믿음의 사람에 대하여, 더욱이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게 과연 믿음으로 되는 것이냐? 또는 행위로 되는 것이냐? 또는 이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냐?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지난 2년여 이상을 해 왔는데, 그 이야기가 과연 현대를 살아가는 나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우린, 정말 평범한, 아니 신앙은 평범할 수 있지만, 신앙 외적인 것은 평범하지도 못한, 우린, 과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그런 믿음을 갖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우리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인정하실 수 있을지, 혹 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대로 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인지, 전 성경을 믿습니다. 내가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하고를 떠난, 난 이 고백 위에 신앙생활을 합니다. 예수는 믿어도, 성경은 못 믿는다는 건, 모순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반드시 성경이 그의 이야기, 또 하나님의 말씀임을 고백해야만 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사람처럼 한다면, 우리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난 하나님도 우리를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하셨듯이, 우리를 그 반열에 충분히 올려 주실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이 되면, 축복받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 나라, 공의와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그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거꾸로 되면, 조금은 불안하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믿음을 가지라는, 믿음을 키우라는, 믿음이 무엇보다 먼저여야 함을 강조하는 겁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믿는 거’ 히브리서 11장1절의 말씀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믿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만, 또한 우린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걸 우리의 뇌리 속에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을 열심히 찾고 있나요? 그럼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으려고 할 때, 그리고 그때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가 찾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해 주신다는 거, 단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보이는 거처럼 나는 믿어, 이게 좋은 믿음은 아닙니다. 그렇게 믿는다면, 반드시 그 연장선상에서 히브리서11장6절의 말씀을 또한 믿으셔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좋아졌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보상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있었던 언약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몇 번이나 있었으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아브라함과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처음으로 언약관계를 맺은 다음, 창세기13장에서 두 번째, 창세기 15장에서 또한번, 창세기 17장에서 또한번, 물론 창세기 12장 이외에는 언약관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12장의 언약의 내용을 재확인시켜주시는 거죠. 왜 그럴까요? 언약을 했으면, 적어도 언약이란 쌍방간이라는 의미죠. 일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쌍방적이라는 말은, 반드시 둘이 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체결했다면, 하나님이 하셔야 할 부분이 있고, 아브라함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다고해서, 그가 할 일을 다 했다고,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만 남았다고,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가나안 땅에는 누구나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서 그 땅을 변화시키고자 할 수 있는 사람, 그 땅과 씨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잘 보세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 하나님이 지정하신 그 땅에 있게 하셨고, 그를 언제나 그곳으로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17장에서 한번 더 있죠. 그런데 창세기 17장은 이전의 내용과는 좀 다릅니다. 창세기13장, 15장이 언약의 재확인이라면, 창세기 17장은 언약 내용이 확장됩니다. ‘나는 너의 후손의 하나님이 이다’‘너와 네 후손은 반드시 내 언약을 지켜라’ 이 내용은 창세기15장까지는 전혀 없던 내용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확장이라고 보는 겁니다. 언약의 내용이 확장되었다고 해서, 원언약과 전혀 달리 확장되는게 아닌, 그 원언약의 연장선상에서 확장되었다는 거죠.
또한 마지막으로 창세기18장에 한번더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18장은 또 창세기17장과 다릅니다. 창세기 17장이 확장이라면, 창세기18장은 변경 또는 추가입니다. 변경 또는 추가라고 해서, 원언약의 중요 내용을 바꿀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원언약은 중요한 핵심입니다. 이건 바뀌지 않습니다. 이걸 기본으로 해서, 연장되고, 추가되는 거죠.
저, 표를 잘 보세요. 창세기12장 원언약으로부터 창세기13장, 15장 17장, 그리고 18장, 다섯 번이죠.
창세기17장까지와 창세기18장은 구분됩니다. 이 구분선이 무엇이냐면, 혹 아시는 분 있나요? 창세기 17장과 창세기18장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시는 분 있나요?
창세기17장에서 하나님은 언약의 내용을 확장시키시면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도록 요구하십니다.
즉 창세기 17장까지와 18장 사이를 구분하는 건, 할례라는 겁니다. 즉 할례받기 이전의 언약의 내용과 할례받은 다음의 언약의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할례받은 다음의 언약 내용은, 17장까지 하나님께서 언급하시지 않았던, 내용을 추가하십니다. ‘너와 네 후손은 내 공의와 의를 행하라’ 이건, 내 언약을 지키라는 말씀과 그 의미가 다릅니다.
물론 언약을 지키는 거, 그 자체에도 언약을 행하라는 의미가 있지만, 창세기18장에서 하나님은 좀더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요구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게 아닌, 반드시 해야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하나님께서 ‘너는, 그리고 네 후손은 내 공의와 의를 행하라’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그 신앙공동체에서 쫓아 냈다는 거죠.
이런 사람은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럼 우리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믿음을 키우세요.
이 창세기의 구조는 출애굽기의 어떤 내용의 구조와 동일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다음, 끊임없이 불평하는 불만을 토로하는 원망하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이런 구조로 보면, 너무 재미있습니다. 즉, 시내산을 중심으로, 시내산 이전의 불평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입장을 표명하셨는지, 그리고 시내산 이후에는 어떤 입장으로 돌변하셨는지, 재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 하나님을 향해, 모세와 아론을 향해 불평할 때, 하나님은 군소리 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물이 없다 불평하면 물을 주셨습니다. 떡이 없다 불평하면 만나를 주셨습니다. 물이 쓰다 불평하면, 물이 그들의 입에 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시내산 이전의 불평을 책망하시지도, 그들의 불평을 묵살하시지도 않으시고, 묵묵히 그들의 불평을 들으시고, 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내산에 도착하면서 하나님의 입장은 돌변합니다. 시내산에 도착한 다음에도, 그리고 시내산을 떠난 다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불평했는데, 그때는 하나님께서 적절한 징계를 가하셨습니다.
그래서 시내산은 상징적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내가 시내산 이전의 믿음, 신앙인지, 시내산 이후의 믿음이어야 하는지, 시내산 이전의 믿음은 불평해도 됩니다. 싫으면 싫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되죠. 그런데 시내산 이후의 신앙, 믿음은 다릅니다. 불평도 불평다운 거, 불평도 할때가 있고, 해서는 안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때는 불평하면 곤란합니다.
우리 중에서, 적어도 우린 목양교인들 중에서, 시내산 이전의 믿음은 별로 없습니다. 여기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 정도, 그런분들뿐입니다.
나머지 분들은 다 시내산 이후여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아무 때나 불평하지 마세요.
이 출애굽기의 구조가, 창세기 아브라함의 구조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구조만 그런 겁니다.
그래서 할례 받기 이전의 언약의 내용과 할례받은 이후의 언약의 내용이 다릅니다. 할례받기 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건 없습니다. 없다고 봐도 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할례받은 다음엔, 하나님께서 ‘너는 그리고 네 후손은 내 공의와 의를 행하라’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할례는 중요한 겁니다.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 없겠죠. 그래,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요구사항이 있어. 그럼 난 안 할래. 요런, 약삽빠름을 선택하시고자 하는 분 혹시 있습니까?
그러지 마세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는건, 지난주 말씀드렸죠.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아지려 할때, 어떤 요인에 의해 그의 믿음은 곤두박질 친다는 거, 그리고 그럴때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떻게 하신다구요. 강제적으로라도 그의 믿음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셨다구요. 할례가 그런 겁니다. 그리고 그가 할례를 받고, 이삭을,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얻었던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이 내용을 좀더 확장하면, 축복받기를 원하다면, 할례를 받으라는 거죠.
물론 창세기 17장의 할례는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아브라함의 이야기 구조속에선, 그의 믿음이 획기적으로 반전되는 그런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할례를 받으세요. 할례는 초신자들만 받는게 아닙니다. 신앙생활 오래 했지만, 신앙을 다 까먹은, 신앙의 열정이 식은 분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 요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나에게 있어 유일한 경쟁력은 믿음입니다. 평범한 믿음이 아닌, 남들과는 다른 그런 믿음이어야 합니다. 시내산 이전의 믿음이 아닌, 할례받기 이전의 믿음이 아닌, 시내산 이후의 믿음, 할례이후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은혜의 수단에 적극 참여하는 거, 말씀을 읽고, 예배를 잘, 자주 드리고, 기도생활을 하고, 찬양을 일상화하며,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사랑의 교제를 행하면, 우리의 믿은은 할례전 상태에서 할례이후의 상태로, 시내산 이전의 믿음에서 시내산 이후의 믿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믿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경쟁력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쟁력을 가지면, 하나님은 적절한 보상을 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믿음의 경쟁력을 갖게 되면, 우리의 믿음의 후손들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설교 내용과 원고 많이 다름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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