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8일]창세기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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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2장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 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늘은 22장 1절만을 강해하는 걸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짧게 할 거 같죠. 잘 들어보세요.
1절을 다시 편집하면 이렇게 되겠죠.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내가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 이 구조에서 뭐 기억나는 거 없습니까?
하나님 왈 ‘아브라함아’ 아브라함 왈 ‘내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요. 하나님께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을 그 동산에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다르죠. 아담은 그랬습니다. ‘내가 하나님 음성을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전혀 다르죠. 아담은 어떻게 하든 숨의려고, 숨는다고 숨어지는 것도 아님에도, 숨어 볼려고 아둥하는 모습이구요. 아브라함의 응답엔 힘이 있습니다. 이게 신앙의 힘입니다. 믿음의 힘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말씀드리려는 건 아니구요. 다음에 비교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되죠. ‘이 일 후에’
우린 정확이 ‘이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사실 ‘이 일’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이걸 알며, 아브라함이 22장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독자를 번제물로 드리게 된 배경을 알게되고, 나 또한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침묵하고 있는데, 침묵하고 있는 부분을 픽션을 넣어가며, 설교할 수는 없구요.
그래서,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일’은 반드시 창세기 22장 1절 이전에 있었다는 거죠.
어떤 일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급격히 상승하게 되는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실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죠.
그것이, 혹 창세기12장은 아닐까? 혹 21장 이삭을 낳고는 아닐까? 또는 이스마엘 모자를 내쫓은 다음은 아닐까? 아니면 마지막으로 22장 바로 전에 있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내용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리고, 어떻게 보면 문맥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창세기 21장 21절과 22장 1절 사이에 있음으로, 그의 믿음이, 적어도 이스마엘을 내쫓은 실수는 있지만, 이 내용으로 그가 변화되었다는 생각을 한번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있어, 평화의 중요성을 알게 된 거죠. 평화는 결코 무력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 오직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화를 경험하고 있나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평화를 선포하고 있나요?
우리는 정확히 그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 일이 있었다는 건 우리가 믿어야 한다는 거죠.
왜 그 일이 중요하냐?
1절의 문장 속에 있는 거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일이 있은 다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왜 부르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를 시험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그 일’은 매우 중요한 겁니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정말 아브라함은 평범한 신앙인이 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일을 겪은 다음, 하나님의 시험을 받게 되고, 그 시험을 당당히 통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축복해 주셨습니다. 애굽왕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 아비멜렉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닌, 어떤 경우에도 썩지 않고, 동록이 들지 않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겸하여 받게 되었던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화롭지 못한 삶에서 평화를 경험하세요. 하늘로부터 오는 평화를 누리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나누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그런 여러분을 축복하시게 될 겁니다.
오늘은 대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몇 번 말씀하셨는지, 오늘 본문도 ‘하나님이 부르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1절에 한번, 2절에 한번, 두 번 나오죠.
지금까지 대체 몇 번이며, 창세기 22장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지난주에 보여 드렸던, 언약의 내용들 기억하세요. 기억하지 못하실거 같아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고, 수정하고 하는 횟수만큼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횟수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21장까지, 전 과정이 저 도표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말씀하시고, 언제 침묵하시는지.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고, 침묵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창세기12장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죠. 지금이야, 언약의 효력이 문서보다 떨어지는 시대지만, 한국에서도 100년 전만 하더라도, 정식 계약서는 없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이제 내 거요. 하고 땅 값을 지불하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13, 15장에서 언약이 수정되는 내용에서, 또한 17장 할례를 받으라는 요구에서, 또한 18장 언약이 추가되는 뭐가 추가 되었다구요. ‘너와 네 후손은 내 의와 공도를 행하라’ 믿음 안에서의 행함을 강조하고 있죠. 창세기 21장 이스마엘을 내쫓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창세기 22장 이전에 6번에 걸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도 말씀이며, 하나님의 메신저, 그 메신저가 어떤 존재냐?라는 건 중요하지 않죠. 나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면, 메신저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창세기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창세기 12장부터 24장까지, 우린 지금 22장을 하고 있는데요.
12장부터 22장까지, 하나님은 계속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거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가 또 있습니다. 장수로 본다면, 14장, 16장, 19, 20장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14장은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러, 사병을 일으킨 내용이 있죠. 무모함입니다. 16장, 이스마엘이 출생하는 장면에서도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 아브라함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여하셔서, 이런 일, 정말 해서는 안되는 일이죠. 이런 일을 결정할때마다. 안돼. 그러면 넌 죽어.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하신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는 많은 일들은 하나님과 무관한 일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가 밖에서 놀 때, 그러다가 다칠 때,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을 하고 있죠. 그 아이가 위험한 일 할때, 그럴때마다, 엄마가 아니면 아빠가 어딘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러면서 나타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이 과연하시는 일이 있고,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고, 하나님과 전혀 무관이 일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이걸 잘 분별하는 것도, 여러분의 믿음의 상태,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하는 내용이 있는 19장과, 아비멜렉에게 다시 거짓말을 하는 내용이 있는 20장에선 하나님은 철저히 침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고, 믿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하나니의 사실은, 하나님의 침묵도 응답일 수 있다는 거죠.
부정적 의미든, 긍정적 의미든, 하나님의 침묵은 또다른 응답임을 우린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말씀을 하십니다. 창세기 22장 이전과 창세기 22장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은, 같을 수 있지만,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목적이 다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이 창세기 17장, 할례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달라지듯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불만에 대하여 시내산 이전과 이후에 하나님의 대응이 확연히 달라지듯이, 창세기 아브라함의 이야기 구조 속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의 목적과 의미는 22장, 물론 22장이 거의 마지막이라고 봐야죠.
이 후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 창세기 22장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거로, 더 이상 아브라함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시지 않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든 이제는 믿고 계시다고 봐야 하죠.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가요?
어떤 계기가 되어, 어떤 사람을 절대적으로 믿을때가 있고, 또는 반대가 되는 경우가 있죠.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그게, 창세기 22장입니다. 이건 침묵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침묵은 부정적 응답이라면, 22장 이후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인생, 신앙인생에 개입하지 않는 건, 그가 어떻게 하든, 무얼 하든 믿을 수 있다는 의미죠.
창세기 21장 이전과 22장을 굳이 비교한다면, 표에서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22장 이전이 오직 아브라함을 위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아브라함을 위로하고, 아브라함에게 예언을 하고, 그를 축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거셨다면, 22장은 180도 다르게, 오직 하나님께서 그를 왜 부르셨는가? 하는 목적을 위해, 다시 말해, 이건 아브라함에게 손해죠. 그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걸 위해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21장까지 하나님이 끊임없이 말씀을 거시는 건, 이런 의미입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 따라서 이럴 때 우리의 기도는 당연히 부르짖는 기도여야 합니다. 부르짖는데, 장사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신앙의 상태가, 창세기 21장 이전이라면, 당연히 부르짖는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22장은 응답받은, 축복받은, 위로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기도, 이건 굳이 부르짖을 필요는 없습니다. 골방에서 기도해도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부르짖어야 할 사람이 골방에서 하거나, 골방에서 해야 할 사람이 부르짖으면 안됩니다.
부르짖어야 할 사람은 반드시 부르짖어야 하고, 골방에서 해야 할 사람은 반드시 골방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만이 살길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부르짖는 기도만 한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건 과정입니다. 부르짖는 기도 다음은, 반드시 골방입니다. 골방 다음이 부르짖는게 아니예요. 부르짖어, 응답받고 그리고 골방에서 하나님의 뜻을 땅에 펼치고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분별함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건 순서라구요. 반드시 부르짖음 다음이, 골방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린 그럼, 이 목양 교회는 어떨까요? 우린 지금,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컨셉은 그렇습니다.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기도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부르짖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건 또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1장까지가 신앙의 청년기 이전이라면, 22장은 청년기 이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청년기 이전은 부모로부터 수혜 받는 시기죠. 청년기 이후엔, 반드시, 부모의 슬하에서 떠나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영적으로도 독립해야 하는 시기가 청년기 이후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청년기 이전에도 독립하는 사람이 있죠. 그러나 그런 사람은 매우 소수입니다. 소수 이야기는 우리가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소수만을 위한 피 흘리심이 아닌, 절대 다수, 모든 인간을 위해 그가 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를 분명히 아시고, 여러분 본인의 믿음의 상태가 어떤 단계에 있는지, 잘 분별하는 건, ‘믿음이 우리의 경쟁력이다’라고 할 때 매우 중요한, 여러분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그리고 심화시켜야 할 일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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