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8일]창세기22:1-2

2007-02-25 アップロード · 587 視聴

마13:4절부터 9절, 그리고 그 해석인 18절부터 23절까지와 또 다른 비유인 24절부터 30절, 그리고 그 해석인 37절부터 43절까지를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비유는 비유와 예수님의 해석을 같이 읽어겠습니다. 프로젝터를 보시죠.
(마13: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마13: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마13: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13: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마13: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마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마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두 번째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도 프로젝터를 보시고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마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마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마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마13: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마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 하노라 (마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그리고 그 해석입니다.
(마13: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마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마13: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마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마13:42)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 두 비유를 다 할 수는 없구요. 첫 번째 비유에 두 번째 비유를 조합하는 걸로, 첫 번째 비유의 말씀을 중점적으로 드리겠습니다. 표를 보실까요?
이 비유의 말씀을 하기 전, 이 비유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비유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해 보았습니다.
그 전에, 비유 속에 등장하는 몇 가지 단어에 대한 보충 설명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구요. 씨 뿌리는 자는 선지자, 설교가, 전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밭입니다. 밭은 사람 또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새, 해, 가시는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또 현실, 마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잘 기억하고 계시고, 오늘 설교를 들으셔야 합니다.
첫 번째 비유인 길가형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부리는데, 더러는 어디에도 떨어지나요? 길가에도 떨어집니다. 씨가 길가에 떨어졌더니, 어떻게 되었나요.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이 비유의 해석은 ‘누구든지 천국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악한자가 빼앗아 버린다’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의 비유에는 ‘새’가 등장하죠. 여기서 새는 악한 자입니다. 먹었다는 빼앗는다는 의미이구요.
두 번째 돌밭형입니다.
이 비유는 좀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문장을 조금 바꾸어 보겠습니다.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이 본문을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곧 싹이 나오나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이렇게 하면 좀더 이해가 쉽죠. 두 번째 돌 밭형은 씨가 뿌리를 내리지만, 곧 타진다는 거죠. 첫 번째와 두 번째 비유의 차이는 씨를 뿌리는 내리는냐? 내리지 못하는냐? 하는 겁니다. 이건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를 구분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싹이 나온다’는 건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는다’는 것이구요. ‘해’는 핍박, 또는 환난입니다. ‘말랐다’는 것은 ‘넘어진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머릿속에 상상이 됩니까?
세 번째 가라지형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집니다. 세 번째는 씨가 뿌리를 내리고 어느 정도 자라죠. 그런데 자라는데 ‘가시가 그 기운을 막는다’는 겁니다. 그 해석입니다. 가시떨기형은 ‘말씀을 듣고 기쁨도 넘치고, 깨닫는 단계도 높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힌다’는 거죠.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무엇이 막힌다구요. 말씀이 막힌다는 거죠.
풍랑을 만나 위기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 오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간청하죠. 나보고 걸으라고 하시면, 나는 걸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라’ 그랬더니, 정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게 된 겁니다. 이게 말씀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물 위를 얼마든지 걸을 수 있지만, 인간이 물 위를 걷는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건, 말씀입니다. 누가복음1:37절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창세기18장14절입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 이름이 능력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상당한 거리를 걸어 갔습니다. 그렇게 걷던 베드로의 눈에 풍랑을 일게 하는 바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해됩니까? 바람이 보입니까? 일렁이는 물결이 보인거죠.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풍랑과 예수님이 함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어떨 땐 예수님이 보이고, 어떨 땐 풍랑이 보이고, 이게 인생입니다. 항상 예수님만 바라보고 갔으면 좋겠는데, 미안하지만 밑바닥 인생들에겐 그럴 수 없습니다.
베드로의 눈에 예수님이 보일땐 그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그의 눈에 바람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는 이내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오라는 말씀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는 건, 여러분, 물 위를 걸어서,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걸어서 예수님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다는 거 아닌가요. 거기까지 반드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그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믿음이 적은 자여’ 내게 하시는 말씀 같지 않은가요? 우리의 경쟁력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이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요? 정말 어떤 사람들은, 말씀의 은혜에 빠지지만, 얼마 못가서,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그 은혜를 스스로 버립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머물러 있는 거 같아요.
마지막 옥토형입니다. 옥토형에서는 예수님께서 결론만 말씀하시죠. 비유도 해석도,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는데, 떨어지면, 그 씨는 적게는 30배, 많게는 100배의 결실을 얻는다. 그래서 비유의 해석도 그렇게 됩니다. 단지 옥토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하는 자다라는게 다르죠. 잘 들으세요. 이 옥토형의 해석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됩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깨닫고, 그리고 결실한다.’ 이걸 표로 종합하면 이렇게 되죠. 첫 번째 표는 도표로만 만들어 봤습니다. ‘씨’ 다 뿌려집니다.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에도, 옥토에도, 그런데 문제는 뿌리입니다. 길가는 뿌리는 내리지 못합니다. 돌밭은 뿌리가 내리는데, 이내 타집니다. 가시떨기 뿌리가 내려 어느 정도 성장하는데,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결실을 하지 못합니다.
이 도표를 다시 정리하면 이 표가 됩니다.
자, 여러분은 어느 형인지, 아브라함은 어떤거 같아요. 여러분중 혹시 길가형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있나요?
적어도 여러분은 길가형은 아닙니다. 따라서 돌밭부터, 가시떨기 옥토 이 세부분만 비교해서 내가 어느 형인가? 스스로 판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떻게 하면, 옥토가 될 수 있는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진단이 되야 처방이 나오고, 그리고 그 진단과 처방에 맞춰 시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시면서, 너희는 돌밭형이 되라, 너희는 가시떨기 형이 되라, 그런 의도로 말씀하셨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려주신 목적은 옥토가 되라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이거 아세요. 누구도 처음부터 옥토였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죠.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니엘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옥토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옥토가 된 겁니다. 여러분, 이 네 비유에서 가장 쓸모없는 땅은 어떤 땅인가요? 당연히 길가입니다. 그리고 돌밭이죠. 세 번째는 가시떨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길가에 사람의 손이 가면, 돌밭이 되고, 가시떨기가 되고, 나중에는 옥토가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땅은 옥토였던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가 단지 땅이 아닌, 사람, 또는 사람의 마음이라면, 철저히 이 과정을 거친다는 거죠. 우린 다 길가였습니다. 그러다가 말씀을 듣고, 듣다보니까? 깨달아지고, 도 교회를 자주 출입하다보니까? 믿어지고, 또는 다른 요인에 의해, 원하지 않은 고통이나 고난, 그런 거 때문에 옥토로 변해가는 겁니다. 저도 처음엔 길가였습니다. 그러다가 돌밭이 되고, 그리고 옥토가 된 겁니다. 이 순서가 정상적인 겁니다. 길가에서 돌밭으로, 돌밭에서 가시떨기로, 가시떨기에서 옥토로, 단계적으로 바뀌는 겁니다. 물론 예외없는 법칙은 없습니다. 길가에서 옥토로, 또는 돌밭에서 옥토로, 바뀌는 경우는 있습니다. 길가가 옥토가 되는 과정이라는 거죠.
문제는 정상적인 단계를 거쳐 옥토로 바뀌면 좋겠는데, 옥토로 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겁니다.
또 아예 옥토가 거꾸로 가시떨기로, 돌밭으로, 되어서는 안되는 길가까지 된다는 거죠.
분명 예수님은 옥토가 되어라는 의도로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라, 이게 예수님의 의도인데, 믿음의 사람들중에 예수님의 의도와는 달리 백슬라이드 한다는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버리고, 예수를 버리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의도는 누구든지, 그래서 ‘더러는’ ‘더러는’ ‘더러는’ 이런 표현을 하신 겁니다.
말씀은 옥토형인 사람에게만 뿌려지는게 아니라는 거죠.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에도, 그리고 옥토에도 떨어집니다. 씨뿌리는 자의 손에 있는 또는 그의 씨 바구니에 있는 모든 씨는 어디든지 다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씨는, 즉 길가에 뿌려진 씨는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썩어지고, 어떤 씨는 뿌리가 내리다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씨가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합니다. 겨우 가시떨기 형에서 결실까지 가죠. 그러나 가시떨기도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결실치 못한다는 거죠. 자, 그럼, 여기서 우린 네 가지 유형중 오직 한 가지 유형만 결실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죠. 비율이 얼마입니까? 25%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25%가 결실하면, 적게는 30배 많게는 100배, 이렇게 되어야, 4분의 3이 하지 못한, 것을 하고도 남게 하는 거죠.
자, 여기서, 우리는 옥토형에, 예수님께서 하신 또 다른 비유, 가라지 비유를 겹쳐 보겠습니다.
옥토가 과연 3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그렇게 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이 둘의 겹침은 우리에게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라지 비유에, 주인의, 즉 농부가 의도하지 않는 가라지가 심어지죠. 그런데 여러분이 잘 알다싶이, 나락보다 가라지는 훨씬 잘 자랍니다.
그래서 농부는 정기적으로 가라지를 뽑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락이 잘 자라고, 풍성한 결실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또 가라지만 있나요. 병충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씨가 밭에, 또는 논에 뿌려져 결실하려면, 많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옥토라고 할 때, 여러분 옥토가 거저 30배의 결실을 거두는게 아닙니다. 가라지의 방해를 이기고, 열악할 환경을 이겨내고, 30배의 결실을 거둡니다.
옥토가 거져, 결실하는게 아닙니다. 가라지의 환경, 병충해의 환경을 이기고, 30배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옥토가 되면, 가라지는 그 환경에 나락보다 훨씬 잘 자랍니다. 그런데도 우린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가라지 무섭다고 옥토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옥토가 되어, 씨의 능력을 확인해야죠. 옥토가 되면, 씨는 반드시 적게는 30배, 많게는 100배의 결실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라지의 요소가 많다고 하더라도, 옥토가 되면, 씨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결실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럼 아브라함은 과연 어떤 단계일까? 당연히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은 옥토입니다. 그럼 그가 처음부터 옥토였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12장이 옥토라면, 같은 창세기12장에 있는 애굽으로 내려간 이야기는 돌밭에 가깝죠. 이스마엘을 낳고자 할때는 길가에 가깝구요.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옥토가 되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앞두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느 단계인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린 적어도 길가는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길가는 아니지만, 어찌보면 옥토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러나 또한 역으로 길가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 또한 함께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옥토입니다. 옥토가 되면, 가라지도 들끓겠지만, 씨는 자체 능력에 의해 30배의 결실, 100배의 결실을 얻게 될 겁니다.
여러분에게서요. 난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주엔, 아브라함의 믿음의 상태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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