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부활절 예배

2006-04-20 アップロード · 577 視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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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지상사역과 동일한 기적을 경험하게 하신 것일까?


Ⅰ. 다른 것
1)만남의 시점이 다르죠.
첫 번째 만남은 지상사역이요, 두 번째 만남은 부활사역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예수님과의 만남은 시간과 상관없습니다. 지상 사역에서 만나도 기적을 경험하고, 부활사역에서 만나도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2)만남의 장소가 다르죠.
첫 번째 만남은 게넷사레 바닷가, 두 번째 만남은 디베랴 바닷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예수님과의 만남은 장소에 구애되지 않습니다. 가나안에서의 만남도, 한반도에서의 만남도, 미국에서의 만남도, 만남 자체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두 번, 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기적을 경험합니다.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Ⅱ. 같은 것
1)대상이 같습니다. 즉 예수님은 베드로와 만났다는거죠. 물론 지상사역에서는 베드로와 단독으로 만나는 장면이구요, 부활사역에서는 여러 제자들과 만납니다. 그런데 그 만남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부활사역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목적으로 가셨던 겁니다.
2)명령의 내용이 같죠.
‘그물을 던지라’는 겁니다. 지상 사역에서는 ‘그물을 던지라’는 명령 앞에, ‘깊은데로 가라’는 명령이 있지만, 이건 배가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추가된 명령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명령은 오직 하나 ‘그물을 던지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물을 어디다 던질까요? 그렇습니다. 바다죠. 여러분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 땅에 그물을 던져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3)결과가 같죠.
예수님께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을 때, 금을 캐기 위함이 아니죠. 당연히 물고기를 얻기 위함입니다.
지상 사역에서 고기를 얼마나 잡았는지,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사역에서도 그물을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잡은 고기를 세어보니까? 153마리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단지 약속만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은 말씀으로 명령하시면, 반드시 당신이 그것을 성취하신다는 겁니다. 책임지신다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들도 도전해보세요. 믿음은 도전이지 않습니까? 말씀에 의지해서 도전해 보세요. 제가 늘 말씀 드렸죠. 특히, 2006년 들어 자주 말씀드렸죠. 성경에 있는 많은 기적과 동일한 내용을 경험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한다구요. 그렇게 하라구요. 베드로는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던져 보겠습니다’ 이것이 기적을 경험하는 유일한 기준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도전하려면, 말씀에 의지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100세에, 즉 100세라는 건 무능을 의미하는 거죠.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게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100세라는 겁니다.
여호수아와 출애굽 2세대들처럼 가나안 정벌을 원한다면, 여호수아 1장에서 5장까지에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요구한 것을 반드시 실천하십시오. 그렇게 할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여호수아처럼, 베드로처럼, 그리고 기타 성경에 있는 많은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들을 여러분들도 경험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즉 지상사역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즉시, 배를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수제자로 따라 다녔습니다. 3년간, 3년이면 풍월을 읖는다고 하는데, 그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의 모든 모습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내가 죽기까지 주를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뒤집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사형을 언도받는 그 자리에서 닭이 울기 전 3번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예수의 제자들이 12명인데, 베드로처럼 이렇게 극적으로 제자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기적을 경험하고, 사람을 낚겠다고 예수를 따라 나섰는데, 결국 심한 자책감으로 빠져 들고 말았죠.
즉 베드로의 전반전은 철저히 완패한 겁니다. 예수님은 그가 어떤 열정을 갖고, 전반전을 힘껏, 그리고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기적을 경험케 한 겁니다.
그런데, 그는 누구보다, 더 짜릿한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더 빨리 예수를 등졌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제자들은 어떨까요?
이런 상태에 빠져 있는, 즉 실패로 인한 좌괴감에 빠져 있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평범한 만남갖고는 그를 사람이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그에게 다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하신 겁니다. 첫 번째 게넷사레 바닷가에서의 기적을 기억나게 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전반전은 실패 했을수도 있지만, 후반전까지 실패한다면, 그의 사역이 후반적인 멋진, 그리고 극적인 반전을 이루게 하기 위해, 지상사역에서와 동일한 기적의 내용을 경험하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인생의 후반전을 극적으로 반전시킵니다.
그 힘은 바로, 이 두 번의 기적에 있습니다. 아니 두 번째 기적에 있습니다. 그가 이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는 결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세계의 권력 핵심부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차마 예수처럼 십자가에 달릴 수 없다고, 그 고통스런 역십자가 처형을 달게 받지 않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부활사역중, 그를 다시 찾아 오신 거구요. 첫 번째 기억, 실패한 기억을 빨리 되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충격요법으로, 첫 번째 만남을 기억나게 하신 겁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우린 여호수아서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서에서 여호수아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는 요단을 건널 때 언약궤를 앞세우라는 거구요. 요단강을 건넌 다음, 돌을 취하여 세우라는 겁니다. 이 돌은 두 군데 세워졌는데, 하나는 요단강에, 하나는 길갈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후세대들이 조상들에게, 이 돌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요단강 나레이션이죠.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유월절 나래이션을, 유월절 절기중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굽니다. 또한 부림절 이야기도 그들은 동일하게 들려줍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 나래이션을, 부림절 이야기를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세대간에 연결 고리로써 이야기할까요? 아니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 나래이션을 후세대들에게 들려주게 하실까요?
여러분, 그건 단지 후세대들에게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일까요? 그들이 후세대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선, 그걸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겁니다. 또 출애굽 2세대부터는 홍해의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유월절 나래이션을 마치 자신들이 경험한 것처럼, 후세대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경험하지 않는 사건을 마치 사실처럼, 말해야 한다는 거.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기 위해선, 자신이 그걸 사실처럼 느끼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서, 사실처럼 말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니 그렇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그렇게 듣지 않죠. 결국, 이 나래이션은 본인들에게 기억하고 있으라는 겁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합니다. 우리가 유월절 사건을 경험했다면, 그보다 더 한 일도 우린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 요단강을 언약궤를 앞세우고, 우리가 맨발로 건넜다면, 가나안 정벌도 언약궤를 앞세우면,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갖고, 최강의 민족들이 차지하고 있던 가나안을 그들은 정벌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 가지를 요구한 거예요. 하나는 언약궤 중심의 가나안 정벌, 또 다른 하나는 기적을 기억하라는 거, 그리고 어렵고 힘들 때마다, 그 기적을 기억하고, 반드시 하나님은 너를 지키신다. 우리 민족을 살리신다.
여러분, 왜 성경에 그런 내용들이 많을까요? 성경을 그런 측면에서만 본다면, 성경은 기적을 경험한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 베드로에게로 돌아갑시다. 그래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지상사역에서 철처히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걸로 끝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인생을 허용하시지 않습니다. 전반전은 실패했을 수도 있지만, 후반전은 역전시켜봐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직접적으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굳이 베드로에게만, 이렇게 두 번씩이나 동일한 기적을 경험하게 하신 것은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정말 멋지게, 그의 후반전을 역전시켰습니다. 우리가 오늘 오후 예배시간에 ‘퀘바디스 도미네’라는 성화를 보게 될 텐데요. 그 영화를 보면, 베드로사도가 그의 후반전을 어떻게 얼마나 멋지게 끝나는가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전반전은 어땠나요? 예수님을 만나고, 기적을 경험한 기억은 없습니까? 아마 대부분 직분자들의 경우,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갖고 있을 겁니다. 그 경험이 기적을 통한 것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만남, 그 자체가 더 의미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만남 이후 여러분의 전반전은 어땠습니까?
보세요. 베드로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이후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은 결국 베드로의 책임에 의해 깨졌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 다음 그는 첫 만남의 결과를 극적으로 반전시킵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과의 첫 만남을 그렇게 실패로 끝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였기 때문에요. 왜 제가 여러분들에게, 가급적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을 경험하라고 하느냐하면, 그 경험이, 그 값진 경험이, 내 과거의 실패를 지워버릴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린 대부분이 인생의 전반전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청년들 몇을 빼고는요. 그리고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휴식시간, 아니 어떤 분들은 벌써 인생의 후반전을 뛰고 있는 분들도 있죠. 휴식 시간이라면, 전반전을 면밀히 분석하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후반전에 대한 전술과 전략을 지시받으세요. 하니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전략을 주시면서, 반드시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 후반전을 극적으로 역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없습니까? 물론 어떤 분은, 전반을 멋지게 끝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럼, 하나님의 전술과 전략이 무궁무진하게 담겨 있는 말씀 속으로 들어가세요. 여러분의 후반전은 정말 극적으로 역전될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후반 체력이 부족해서 역전을 시키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연장전을 허용하실 겁니다. 여러분 모두, 멋진 인생의 후반전을, 후반전 휘슬이 끝났을 때, 어떤 축구선수처럼, 그라운드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설교 시간에 좇겨, 요한복음21장1절에서 7절이 왜 '믿음은 도전이다'라는 말씀의 주제어가 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드리지 못했씁니다. 다음에 한번도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tag·4월,16일,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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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kij
2006.06.17 12:43共感(0)  |  お届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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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_2006~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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