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의 종족분쟁 - 계속 되는 피의 복수 ◀

2006-07-12 アップロード · 4,906 視聴

르완다 사태의 저변에는 해묵은 종족 갈등이 있다. 르완다는 14세기 이 지역에 진출한 소수 투치족(14%)이 왕국을 세워 토착부족인 후투족(85%)을 지배했다. 그러다가 1916년부터 벨기에의 식민통치가 시작된 뒤 투치족에 대한 벨기에의 철저한 종족 차별 정책으로 두 종족간 갈등이 시작되었다.

1959년 투치족 왕이 죽자 투치족의 한 부족이 정권을 잡고 후투족 지도자들을 살해했다. 후투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살아남은 투치족 어린이들이 이웃 우간다로 도망갔다. 1990년 우간다로 망명한 5,000여 명은 르완다애국전선(RPF)을 결성하여 돌아와 르완다를 침공했다. 이후 오랜 내전이 시작되었다.

1994년에 후투족 출신의 대통령 주베날 하비야리마나의 암살 사건으로 50여만 명의 투치족이 살해되었다. 이에 투치족이 반격하여 7월 4일 수도인 키갈리를 함락시켰다. 투치족 반군 조직인 르완다애국전선은 키갈리에서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를 차단했다. 이때 수도에 갇힌 6만여 명의 후투족 민간인들은 반군의 보복이 두려워 필사적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반군이 르완다 제2의 도시인 부타레와 후투족의 최후 거점인 기세니까지 진격하자 후투족들이 피난을 떠났다. 그들은 주로 키갈리에서 서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임시정부의 잠정 수도 기타라마시로 가거나 서북부 국경을 넘어 인근 자이르 등지로 피난했다. 피난중 총 300여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극심한 식량 부족과 콜레라 등 전염병으로 많은 난민이 죽었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문제는 서로 입장이 바뀔때 마다 벌어지는 증오의 문제로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단 화해를 갈수있는 촉매가 시급하다.

tag·르완다의,종족분쟁,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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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오3
2008.08.31 20:57共感(0)  |  お届け
인간이란게 정말 참.. 무섭군요. 어떻게 같은 인간을 저토록 뿅뿅뿅수있을까요? 정말.. 저건 목숨이 돼지보다 못하게 취급하는거아닙니까..삭제
_
2008.06.14 16:00共感(0)  |  お届け
살기위해서 , 욕심내고 , 약탈하고 빼앗으면서 , 단지 욕심만 조금 버리고 아량을 베푼다면 좋을텐데... 동물, 식물, 이 모든것에는 자신을 위함과, 살아남기위함의 욕심을 왜... 주체하지 못할까요 ...... 왜 ,,, 사치를 하고 ,,, 왜 이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 누가 죽던간에.. 누군가가 슬퍼할텐데 말이죠 ,,,,,, 아주 나쁜사람이 죽더라도,, 부모님은 슬퍼할겁니다 .... 우리와 같이요 ,,, 삭제
똑이 주인
2007.09.19 01:13共感(0)  |  お届け
아 정말 같은 하늘 아래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다니요.삭제
경훈♡지원
2007.02.07 03:31共感(0)  |  お届け
주여..저들을구해주소서..삭제
tkfkdsl
2006.10.18 08:03共感(0)  |  お届け
맘이아프네요삭제
gustn4511
2006.10.16 06:04共感(0)  |  お届け
저런 오라질놈들 ㅜㅜ 시체바다 ㅜㅜ삭제
건즈최강
2006.10.10 12:51共感(0)  |  お届け
에라 ...삭제
pkcje
2006.09.28 03:28共感(0)  |  お届け
어린아이들까지...연장든 모습 ㅠㅠ삭제
ehrwodlwkd
2006.09.18 07:10共感(0)  |  お届け
이 영상을 보고 있는 우리는 참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삭제
갑돌이빠숑
2006.09.08 05:00共感(0)  |  お届け
우리도 저런 시절이 ㅜㅜ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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