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티 보이스 라이브 영상

2005-11-03 アップロード · 3,997 視聴

Beastie Boys의 Super Disco Breakin' (live)

비스티 보이스는 80년대 초반 뉴욕에서 태어난 밴드로 당시 뉴욕은 캘리포니아의 블랙 플레그(Black Flag), 워싱톤 D.C의 배드 브레인스(Bad Braims) 등 각 하드코어 번성지에서 들어온 밴드들의 영향아래 있으면서 언더그라운드 클럽 등지에서 하드코어 밴드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었다. 비스티 보이스는 그 가운데 생겨난 밴드들 중 하나에서 태어났다.

애덤 요크(Adom Youch: MCA로 불림), 마이크 다이아몬드(Mike Diamond: 마이크 D), 케이트 셸렌바크(Kate Schellenbach), 존 베리(John Berry) 등 4인조로 구성되어 있었던 비스티 보이스의 초기 멤버들은 82년 인디앨범 [Polly Wog Stew]를 발표하고 주목을 끌었다. 그 당시 이 밴드의 오프닝을 서주던 하드코어 그룹 ‘The Young And The Useless'가 있었는데 그 중심인물이 바로 애덤 호로비츠(Adom Horowitz: Ad-Rock)였다. 그후 케이트 셸렌바크와 존 베리가 팀을 탈퇴하고 애덤 호로비츠가 밴드의 정식멤버로 가입하면서 지금의 비스티 보이스 3인방이 완성된 것이다. 새 진용으로 바뀐 비스티 보이스는 그 뒤 이들이 시도한 첫 랩 앨범 [Cookie Puss](83)를 발표, 뉴욕의 언더그라운드에서 굉장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84년, 당시 뉴욕대를 다니던 릭 루빈(Rick Rubin: 그는 그의 동창생 러셀 시몬스와 함께 데프 잼 레이블을 창설하였다)을 만나게 된 비스티 보이스는, 85년에 정식으로 ‘데프 잼'과 계약을 체결하고 싱글 'She's On it'를 발표, AC/DC의 고전인 [Back In Black]으로부터 리프를 샘플링해서 사용한 획기적 아이디어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돈나(Madonna)의 ‘Like A Virgin' 투어와 런 D.M.C.의 투어오프닝을 맡게 되며 자신을 차차 알려나갔다.

그리고 86년 발매한 그들의 공식 첫 데뷔앨범 [Lisenced to Ill]은 메틀리프, 힙합리듬, 거침없는 랩핑을 내세우며 4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그후 그들이 나오는 공연이 계속 매진이 되었으며 악명높은 무대매너로 환영과 질탄을 동시에 받아내야 했다. 애덤 호로비츠는 폭동을 조장한 혐의로 체포까지 되기도 한다.

소속사와의 마찰로 법정 분쟁에 시달린 끝에 이들은 LA로 근거지를 옮기고 캐피톨(Capitol)에서 두 번째 앨범 [Paul's Boutique]를 발표했다. 전작에서의 헤비한 기타 사운드를 없애고 혁신적인 샘플과 리듬을 시도한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The End', 'When I'm 64' 등 비틀즈(Beatles)의 곡들을 샘플링한 'Sound of Science'를 비롯하여 커티스 블로우, 쿨 앤 더 갱(Kool & The Gang),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마운틴(Mountain) 등 거장들의 곡들을 샘플링하여 주목을 끌었다. 이를 통해 비스티 보이스는 자신들의 음악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음악적으로도 성숙의 단계로 들어섰다. 그후 이들은 자신들의 스튜디오(G-Sun 농구 코트에 만든 스튜디오) 와 그랜드 로열(Grand Royal)이라는 레코드 레이블을 설립하고 자유롭게 다양한 실험정신을 펼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 공식앨범인 [Check Your Head]를 발표했다.

[Check Your Head]에서는 자신들의 본래의 모습인 밴드 진용(베이스에 MCA, 드럼에 마이크 D, 기타에 애드락)을 갖추고 여기에 머니 마크(Money Mark: 비스티 보이스의 네 번째로 받아들여진 인물)가 키보드로 가세하며 보다 새롭고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다. 밴드진용으로 돌아와 다시 악기를 들고 만든 이 앨범은 랩과 하드코어를 이상적으로 섞어내었다는 평가를 얻기에 충분했다. 'Jimy James', 'Pass The Mic', 'So Whatcha Want'와 같은 곡들은 랩 라디오보다는 얼터너티브락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여 이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여기에 밥 딜런(Bob Dylan), 테드 뉴전트(Ted Nugent) 등의 고전을 적절히 샘플링하는 재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앨범은 올드 스쿨의 향취가 묻어나는 'Pass The Mic'과 같은 곡을 비롯해 펑크 락 기타, 퍼즈 베이스, 아프리칸 비트 등 사운드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보였다.

94년, 존 스파이크 감독의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Sabotage'가 수록된 [Ill Communication]은 전작에 이어 올드스쿨 랩, 하드코어, 인스트루먼틀 펑크(funk) 잼들이 더욱 심화된 음악적 수준을 유지하였다. 하드코어와 랩이 공존하는 전작과 같은 노선을 타고있는 이 앨범으로 비스티 보이스는 자신들의 입지를 확실히 하였고 94년 롤라팔루자에서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와 헤드라인을 나누게 되었다. 같은 해 그들의 그랜드 로열 레이블에서 루셔스 잭슨(Luscious Jackson)의 데뷔앨범이 나오면서 그랜드 로열은 입지를 다졌고 그랜드 로열 잡지도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이들은 ‘밀레파 펀드'를 설립, 티벳의 독립을 위한 기금마련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고 ‘티베탄 프리덤 콘서트' 등을 기획하였다. 각자의 부업에도 힘써 마이크 D는 자신의 의류라인인 'X-Large'를 설립하여 수익금의 일부를 애덤 요크가 중심이 된 '밀레파 펀드'에 기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98년, 이들은 오랜 LA 생활을 접고 그들의 홈 그라운드인 뉴욕으로 컴백, [Hello Nasty]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서는 로봇으로 괴물을 물리친다는 황당한 내용의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Intergalatic'이 보코더를 사용한 새로운 보컬 사운드를 내세우며 인기를 얻었다. 이전의 두 작품이 좀더 펑크에 가까운 두 성향을 보였던 것에 비해 힙합에 더 치중한 사운드를 보이고 있으며 돌진하는 듯한 하드코어 펑크 곡은 찾아볼 수 없다. 후에 팻보이 슬림(Fatboy Slim)의 리믹스 곡으로도 나왔던 'body movin''을 비롯하여 디제이 믹스 마스터 마이크와 함께한 '3 MC And 1 DJ'등이 곡 외에 라틴리듬의 'Song For Junior'와 브라질의 보사노바에 영향을 받은 'I Don't Know' 등 그들의 음악에의 끊임없는 새 영역의 추구는 멈추지 않았다.

[Hello Nasty]는 아직도 그들의 끼와 발랄함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Intergalatic'에서 펼친 유쾌한 발상과 팔팔한 젊음(물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나이는 이제 30대이다), 타 아티스트들의 능력도 앨범에 적극 끌어들일 줄 아는 열린 마음과 끊임없는 탐구정신으로 그들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제 비스티보이스는 [SOUNDS OF SCIENCE]로 그 동안의 비스티 보이즈의 음악적 변천과 발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그랜드 로열 잡지, 티벳 독립을 위한 기금모금, 티벳탄 프리덤 콘서트 기획, X-Large 의류사업, 이들은 음악 외에 언론, 사회, 경제 영역까지 비스티 보이스는 지금도 다양한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활동 영역을 계속 넓히고 있다.

tag·비스티,보이스,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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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chase
2005.12.12 09:27共感(0)  |  お届け
소중한 영상 담아가겠습니다. ^^삭제
postchase
2005.12.12 09:26共感(0)  |  お届け
감사합니다" 스크래해갑니다"""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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