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훌륭한 연주자중의 한명 허비 행콕의 라이브 뮤비

2006-04-13 アップロード · 11,345 視聴

Herbie Hancock의 Chameleon(live Montreux)

일렉트릭, 어쿠스틱 피아니스트인 허비 행콕은 재즈계의 가장 훌륭한 연주자 중의 한 명으로 록, 펑크, 재즈 등의 많은 음악을 훌륭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는 동안 그는 전자악기 분야의 최고 연주자이자 작곡가의 명예를 얻었는데, 이는 과학에 대한 이해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릴 적부터 비행기를 축소한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시계를 만들어보는 등의 호기심이 발전해 그의 음악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는 그린넬 대학에 다닐 때 전기공학을 배웠는데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전공이었다.

그가 스무살 때 도날드 버드(Donald Byrd)라는 사람이 허비 행콕의 얘기를 듣고 뉴욕으로 초대해 전자 음악에 대한 소개를 한 후 에드가 바레즈(Edgar Varese), 존 케이지(John Cage)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스톡 하우젠의 'Song Of Youth'에 푹 빠져 있던 시기에 그는 드러머 토니 윌리암스(Tony Williams)를 만나게 되며 후에 마일즈 데이비스의 그룹에 같이 가입하게 된다.(이때 허비 행콕의 나이가 23세였고 토니 윌리암스의 나이는 17세였다.)

허비 행콕은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곧 흥미를 느끼게 돈다. 이 당시를 그의 말을 빌어 알아보자. "내 친구 중에 피아노를 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모차르트 협주곡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곤 했다. 나도 열심히 연습해 그와 같은 수준으로 올랐지만 무언가 그와 다른 점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즉흥연주(Improvising)였다. 나는 즉흥연주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것을 깨우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사실 그는 1956년 아이오와주의 그린넬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음악에 전력투구하지 않았다. 그는 전공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하였으며 이것이 나중에 음악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 이후 그는 작곡과 편곡을 배우기 위해 밴드를 결성했고 전공을 작곡으로 바꾸게 된다.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 시카고로 돌아와 많은 재즈 연주자들과 연주를 하였으며 1960년에는 트럼펫 연주자인 도널드 버드와 함께 그룹을 결성하면서 음악인생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1963년에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에 토니 윌리암스와 함께 가입하면서 5년 반 동안 메인 연주자로 활동을 하게 되며, 1968년 마일즈 데이비스 그룹에서 나온 후 도널드 버드와 함께 앨범 [Takin' Off]를 만들어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후에 많은 연주자들이 커버한 'Watermelon Man'이 담겨 있다.

이 때부터 허비 행콕은 일렉트릭 피아노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는데 당시의 상황을 그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알아보자. " 일렉트릭 피아노를 이전에는 장난감으로 여겨서 한번도 연주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앨범 [Miles In The Sky]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가니 일렉트릭 피아노 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연주하게 되었다. 나는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어떻게 연주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마일즈는 나한테 "허비, 당신이 그 피아노로 어떻게 연주하는지 보고 싶으니 마음대로 연주해 봐."라고 얘기했다. 난 곧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으며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나의 마음을 빼앗기게 됐다. 일렉트릭 피아노는 음량이 풍부하고 빈틈없는 소리를 내주는 좋은 악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라이브에서는 계속 어쿠스틱 피아노로 연주를 하였고 일렉트릭 피아노는 스튜디오 작업을 할 때 많이 이요하였다." 그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앨범 [Miles In The Sky], [Filles De Kilimanjaro], [In A Silent Way]에서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한다.

1960년 말경에는 TV 드라마의 음악을 맡기도 했으며 1968년 11월에는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에서 나온 후 그는 애틀랜틱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데뷔앨범 [Fat Albert Rotunda]를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빌 코스비가 주연한 TV 드라마에 삽입되었던 곡 중 몇 곡을 재구성해 담고 있다. 첫 앨범에서는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작업을 하였는데 두 번째 앨범부터는 에디 핸더슨(Eddie Henderson-트럼펫), 베니 모핀(Bennie Maupin-테너 색소폰, 알토 플룻, 베이스 클라리넷), 줄리안 프리스터(Julian Priester-트럼본), 찰스 윌리암스(Charles Williams-베이스), 빌리 하트(Billy Hart-드럼)의 라인업으로 앨범 [Mwandishi]를 발표하여 타임지가 뽑은 그해 최고의 재즈 앨범 10선에 선정되기도 한다.(이 당시 허비 행콕은 다운 비트란 잡지에서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선정되기도 한다.) 이 앨범에서는 'Ostinato'란 곡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는데 이 곡에서 그는 작곡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워너 레코드에서 [Crossing]을 발표한 후 컬럼비아 레코드로 소속을 옮겨 앨범 [Headhunters]를 발표한다. [Headhunters]는 1974년까지 차트에 머물면서 다음 앨범 [Trust], [Treasure Chest], [Death Wish]와 함께 동시에 네 장의 앨범이 차트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70년대 중반에 나온 [Manchild], [Sunlight](1977), [Feet Don't Fail Me Now](1979)와 같이 신디사이저가 사용된 작품에서 1980년대에 그가 추구하는 음악적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기간 동안 허비는 여러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했는데 1976년 뉴 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는 마일즈 데이비스 없이 60년대식의 5인조 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멤버로는 론 카터(Ron Carter), 토니 윌리암스(Tony Williams), 웨인 숄터(Wayne Shorter), 프레디 휴버드(Freddie Hubbard)들의 훌륭한 연주자들이 마일즈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주고 있다. 그는 이 그룹(V.S.O.P)을 이끌고 칙 코리아의 밴드와 1978년에 어쿠스틱 재즈 공연을 벌인다.

허비는 80년대에 들어와서도 콘서트, 레코딩, 작곡 등에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앨범 [Magic Window], [Lite Me Up]을 발표하였는데 그 앨범들에서는 펑크와 록이 혼합된 전자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그는 V.S.O.P를 이끌고 칙 코리아와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과 함께 연주활동을 펼쳤으며, 자신의 쿼텟(멤버로 윈튼 마샬리스, 론 카터, 토니 윌리암스)과 함께 연주를 펼치기도 한다.

1983년에는 일렉트릭 베이시스트 빌 라스웰(Bill Laswell)과 신디사이저 연주자 마이클 베인혼(Michael Beinhorn)과 함께 일렉트로닉한 그룹을 만들게 되며 곧 앨범 [Future Shock]을 내놓게 된다. 이 앨범에는 어쿠스틱 피아노에서 일렉트릭 피아노, 그리고 신디사이저까지 다양하게 사용하였으며 'Earth Beat'란 곡에서 일본 현악기인 코토(Koto)란 악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1984년까지 팝 차트에서 활약하며 커다란 히트를 기록하게된다. 특히 믹싱 연주자 디 세인트(D St.)가 참여한 싱글 'Rockit'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리듬 앤 블루스 연주 부문을 수상하게 된다. 1984년에는 또 다른 빅 히트작 [Sound System]을 발표하여 다시 그래미 어워드에서 리듬 앤 블루스 연주 부문을 수상하게 된다.

두 장의 팝성격이 강한 앨범을 발표한 허비는 1984년에 영화 [Soldier Story]와 [Round Midnight]에 자신의 곡을 삽입하기도 한다. 이 중 [Round Midnight]에서는 색소폰 연주자 덱스터 고든(Dexter Gordon)이 참여해 화려함을 더해 주었으며 이 음악은 후에 리차드 프라이어(Richard Pryor's)의 영화 [Jo Jo Dancer, Life Is Calling]에 삽입되기도 한다.

LA 타임즈의 레오나드 페더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당시 그가 팝과 재즈를 병행하게 된 이유를 알아보자. "나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집착하는 타입이 아니다. 나는 단지 재즈를 바탕으로 한 팝을 연주하고 싶었다. 이런 방식은 다른 연주자들과는 조금 다른데, 나는 어떤 한 가지 음악을 추구하다가 스스로 납득할만한 음악적 결론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일에 매달리곤 하는 스타일이다. 이 과정이 나에게 어떤 혼란도 야기 시키지 않았으며 그것들에 대해서 걱정해본 적도 없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Round Midnight]으로 오리지널 스코어 부문에서 상을 탔는데 그래미에서 받지 못한 재즈 부문을 영화상에서 받는 아이러니컬한 경험을 하게된다.

1987년 한 해 동안 그는 재즈 쿼텟(마이클 브렉커(Michael Brecker-색소폰), 론 카터(Ron Carter-베이스), 토니 윌리암스(Tony Williams-드럼))을 이끌고 일본과 미국으로 투어를 벌이기도 했으며 영국 투어에서 트리오(버스터 윌리암스(Buster Williams-베이스), 알 포스터(Al Foster-드럼))형태로 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그는 또한 새로운 형태의 뉴 팝 & 리듬 앤 블루스 앨범을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발표하여 최우수 인스트루멘틀 부문에서 세 번째로 그래미상을 수상하게 된다.


http://cafe.daum.net/hmrs
하멜과 리사(광주 기타 &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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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밀-B
2007.05.14 01:25共感(0)  |  お届け
ㅜㅜ 왜 않나오는고얌~삭제
gl0404
2007.04.21 04:26共感(0)  |  お届け
퍼가요~감사삭제
쵸코레이또
2006.12.09 03:56共感(0)  |  お届け
퍼갑니다 감사삭제
추풍12
2006.11.19 01:24共感(0)  |  お届け
^^좋다^^^^ ||[:추천:]||삭제
likki
2006.08.25 04:30共感(0)  |  お届け
또또또 퍼가요~!!!!!!!!삭제
drjoosung
2006.06.16 11:48共感(0)  |  お届け
드럼소리좋다삭제
wutang007
2006.05.14 10:44共感(0)  |  お届け
PeAcE^^삭제

재즈 블루스 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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