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정 5기 열린캠프 등산학교

2006-12-28 アップロード · 1,671 視聴

오후 5시에 잠실 역 출발지에 도착하려면 오후 4시에는 사무실을 나서야 한다. 컴퓨터 연수 교육 중이라 일찍 사무실을 빠져 나오려고 치러야 하는 번거러움(?)을 교육 담당 강사와 절충하는 것으로 끝냈다. 교육 시간을 줄이려고 머리에 펌핑 나도록 강의 받고 평가서 내고 수료증까지 챙겼다. 아침에 메고 나와 강의실 한편에 모셔둔 배낭을 둘러메고 교육센터를 나선 것이 오후 4시! 아, 이제 ‘설악’이다!

우리들의 ‘오진관광’에 (언제나 변함없이 오진관광을 타다 보니 학교 자가용이 된지 오래다) 배낭들을 싣고도 자리가 헐렁하다. 1년차 3개조, 2년차 2개조 그리고 본부조! 나는 1년차 1조로 강대호, 김재호, 최성필, 김동원님과 같은 팀이다. 기수가 높고(5기?) 많은 (8,10기) 나를 포함하여 2년차 강대호님에 복학생 김재호님이 가세한 우리 조는 오리지날 ‘노땅 조'이다. 어둠 속에 뻥 뚫린 길을 달려 설악동에 도착한 시각이 9시40분,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충주에서 개인출발한 동기생 한국희님이 설악동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점검을 한 후 조별로 비선대를 향해, 긴 열을 만들며 출발했다. 비선대까지 가는 길은 잘 다져진 눈길이다.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설렘과 긴장감이 나를 팽팽하게 한다. 이번 산행에서는 ‘너무 뒤 처지지 않게,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40여 분만에 비선대 산장에 도착했다. 늦은 저녁시간이라 다른 팀들이 벌써 산장 침상의 하단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비워진 이층에 나란히 조별로 자리를 폈다. 한국희님이 설악동에서 떠 온 청어회에, 옆 조 한태석님이 보급해준 스튜로 밤참을 나눴다. 배낭을 세우고 자리를 펴고 눕기에는 모자란 넓이다. 침상 한쪽으로 배낭을 모으고 길게 발 펴고 자기로 했다. 잠자리에 누운 시간이 24시. 새벽 5시에 출발이니 4시간은 잘 수 있다.

한 밤 중 발소리와 이야기소리에 잠이 깼다. 김영호님과 윤강명님이 각각 비선대 산장에 도착했다. 새벽에 가까운 시각에 설악동에서 비선대까지 혼자 걸어 찾아 든 그들을 보면서 껌껌한 하루재길을 두려워하던 나를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저들처럼 어둠 속 산길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새벽 5시, 4발 크램폰으로 무장하고 일렬로 양폭산장을 향해 출발한다. 어두운 계곡길, 반짝이는 우리들의 랜턴 빛이 언젠가 본 반딧불 행렬처럼 반갑다. 우리들의 발소리와 철계단 지나는 소리, 어둠 속에 빛나는 랜턴 빛으로 앞 조와 뒤 조의 거리를 갈음하면서 긴 행렬을 이뤄갔다. 설악골을 지나 귀면암에 이르자 어렴풋이 날이 밝아 온다.

귀면암에서 만난 한 청년, (뒤에 들으니 ‘악’자 들어가는 산들을 혼자 오르기로 했다던 데) 평상복차림에 혼자인 것이 영 불안스럽게 보인다. 이야기 끝에 이 친구 ‘해병대’ 출신이란다. “해병대는 용감하다!?” 대청봉으로 가는 길이니 우리와 양폭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등산학교 해병대 선배들 이 청년에게 한마디씩 충고한다. 양폭에 이르러 학교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주는 것을 보니, 11기 후배지망생 하나 우리와 이렇게 ‘연’을 만드나 보다. 그것도 한겨울 설악 천불동 계곡에서..

양폭에서 모두 12발 크램폰으로 갈아 신고 스팻츠와 덧바지를 착용했다. 양폭을 조금 지나 왼쪽 죽음의계곡으로 접어든다. 이제부터는 러셀이다. 맨 앞 조가 만들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무릎을 넘는 눈을 헤치며 오른다. 올 해는 유달리 눈이 많은 해, 깊이 쌓인 눈들이 훈련하기에 좋은 여건을 만들고 있다며 좋아하는 분들은 선생님들이다. 뒤 따라 오르는 데도 힘이 든다. 조금 올라 조별로 ‘아점’을 먹었다. 아침식사 생략하면 통 힘을 쓸 수 없다는 우리 조 김동원님, ‘아점’후엔 힘이 나시나 보다.

조금을 더 오르니 제법 널찍한 계곡 하단이다. 도착하는 데로 5열 횡대로 섰다. “뒤로 돌아! 그대로 러셀하며 오른다.” 맨 앞에서 러셀하며 오르는 경사는 힘이 곱으로 든다. 십여 발자국에 벌써 숨이 찬다. “모두 제자리! 뒤로 돌아!” 우리가 5열 횡대로 늘어선 이곳이 한국산악회 10동지가 묻혔던 곳, 우리 발 아래 쌓인 눈 속에 그들을 기리는 동판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우리는 ‘묵념’을 올렸다. 산에서의 죽음이란 (도심의 ‘개죽음’이 아닌) 하나의 특권이라며 장 코스트는 생전에 이렇게 썼다. “비록 내가 산에서 죽었다손 치더라도 슬퍼하지 말아주게. 오히려 ‘저 놈은 제 뜻대로 죽었으니까’ 라고 말해주게.”

오르면 오를수록, 산정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산길은 가팔라진다. 계곡 모양새 위에 그대로 쌓인 눈은 다져지지 않아 어떤 곳은 무릎, 어떤 곳은 허벅지, 어떤 곳은 허리까지도 빠진다. 고산에서 안자일렌 해야 할 정도의 크레바스는 아니지만, 어떤 곳은 빠지면, 벗어나기가 쉽지않다. 한참을 버둥대고 주위 눈을 다져가며 탈출해야 한다. 한 대원은 허리까지 빠져 꼼짝할 수가 없어 주위 눈을 조금씩 파내서는 겨우 빠져 나왔노라고 했다. 뒤 따라 가는 이는 앞 선 이들의 남겨 논 흔적을 따라 드러난 크레바스를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보폭이었는데, 남자들의 그것은 그대로 따라 딛기에는 내겐 너무 넓어 힘들었다. 나중에는 그대로 따라 딛기보다는 반쯤 걸쳐 딛어 나의 보폭을 유지했다. 힘을 어떻게 절약하면서 오르는가! 이것이 관건이다. 발바닥을 넓게 디디면 디딜수록, 스톡이던 피켈이던 간에 의지하는 힘이 크면 클수록 힘이 덜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사가 급해질수록 나는 뒤로 쳐지기 시작했다. 지그재그 모양새로 오르는 급경사길, 뒤에 처져 만난 이는 일본 북알프스에 이어 오늘도 함께 오르는 노승헌님, 맨 뒤에서 처진 대원을 거둬가는 이승훈선생님,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우리의 여장수, 변영선님이다. 그 동안 새 직장 일로 바빠 산행을 못하여서인지, 꽤나 무거워 보이는 본부조 식량 담은 배낭 탓인지 무겁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쉬고 있는 앞 무리를 잡자 곧 출발지시가 떨어졌다. “에고 힘들어라!” 오후 3시30분이 지나야 운행을 중지하고 캠프를 만든단다. 아직도 남은 한시간을 더 올라야 한다. 끝없어 보이는 경사 길을 오르면서 반복하는 독백, “곧, 곧 끝난다!”

우리의 첫 캠프지는 눈 깊이 쌓인 경사지다. 계단식 논 만들듯이 서로 어긋나게 눈을 파고 다져서 조별로 겨우 누울 공간을 만들었다. 아까부터 간간히 내리던 싸릿눈은 이제 제법 우리를 적시고 있었다. 비 같지도 않은 것이 그렇다고 눈 같지도 않은 것이.. 비 같은 눈이 내린다. 그라운드 쉬트를 꺼내 이어선 슬링으로 피켈과 바일, 스톡에 달아매 지붕을 만들었다. 서둘러 자리를 깔고 침낭 속에 들어갔다. 온통 젖었다. 배낭도 교복도 신발도.. 허기진 배를 고기와 육개장, 김치와 김으로 채웠다. 계속 내리는 비 같은 눈! 멀리 속초시의 불빛이 눈에 들어 온다. 보석을 깔아 논 것 같다. 저쯤이 바다인가? 멀리 작게 반짝이는 불빛은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선박의 것일 게다. 각 조별 캠프를 둘러보던 전두성 선생님, 젖은 교복도 입고 자란다. 얼음이 서걱서걱 붙은 교복을 껴입고 젖은 신발과 장갑도 비닐에 싸 침낭에 넣었다. (침낭에 넣고 자지않은 동문은 다음날 빳빳이 얼어붙은 교복, 장갑과 신발로 힘들었다.) 자리에 누워 침낭을 단단히 여미고 갑갑하게 시야를 막는 간이지붕을 바라보았다. 그쳐가는 비 같은 눈! 밖에선 달 떴다고 별 떴다고 야단이다. 다시금 일어나 저 지붕을 거둬내고 하늘을 볼 엄두가 안 난다. 몸은 조금씩 꺼져갔다. 오늘 우리가 올랐던 그 아래로 아래로..

새벽 4시, 기상이다. 침낭을 정리하고 어제 설치한 지붕을 거두니 하늘에 별들이 총총 떠있다. 선명하게 그 별자리를 그리면서, 주먹만 한 것에서부터 멀리 작은 점 같은 것까지, 마치 천문대 별자리 돔에 들어선 것 같다. 그 옛날 저 별들을 보며 우리 조상은 신화를 만들고 그 이름을 지어 불렀으리라. 저리도 선명한 별들을 바라 본 것이 얼마 만인가? 아름답다고만 하기에는 부족하고 경이로움과 신성함이 나를 깨어나게 한다. 밝고 선명한 별들을 볼 수 있는 ‘새벽’이 무작정 좋아진다.

밤새 얼어붙어 딱딱해진 배낭을 다시 메는 것은 쉽지않았다. 등판에 그 서늘함이 느껴진다. 조별로 정상을 향하여 출발이다. 경사는 더욱 가파르고 어둠 속에 계곡은 그 깊이를 감췄다. 그저 랜턴 빛이 떨어지는 앞자리 발자국들만을 보며 오르기 두시간 여 만에 먼동이 트고 하얀 산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까이서 환호성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대청봉이 가까운가 보다. 고개를 힘주어 쳐들어서야 보이는 하늘, 불어대는 바람이 느껴지니 능선이 바로 저기다. 마지막 경사를 정말 힘겹게 올랐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널찍하고 평평한 능선에서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저 산 너머로 해님이 고개를 내민다. 하얀 옷 입은 설악의 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이 밝아 질수록 그 파노라마는 눈에 부시다.

화채능선으로 내려섰다. 아무도 밟지않은 은박세계로.. 앞 조가 눈을 헤치며 길을 내면 그 뒤를 따라 하나의 길을 만들면서, 화채봉을 향해, 능선을 따라 길을 만들며 내려갔다. 눈 쌓인 내림 길에선 앞 발을 뒤꿈치부터 “쑤욱!” 내밀어 딛는다. 동시에 뒷발의 무릎을 꺾어 끌듯이 눈을 누른다. 경사가 급하면 급할수록 눈이 많이 쌓여 있으면 있을수록, 뒷발 무릎 꺾임이 심해진다. 이 때 스톡으로 가볍게 균형을 찾는 것이 요령이다. 마치 구름 위를 걷듯이 “푸-우욱!”

코 앞에 우뚝한 화채봉을 바라보고 5열 횡대로 자리를 잡았다. 휴식이다. 어느새 얼어있던 배낭도 녹아있었다. 눈 아래 보이는 안부에 큰 소나무들을 왼쪽으로 끼고 돌면 염주골이란다. 염주골!, 2000년 계곡산행의 추억이 담긴 곳이다. ‘설악’하면 제일 먼저 떠올라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 가장 고생했던 (꽁지뼈에 금이 간 덕에 그 역할을 실감했던) 그 곳이, 가장 깊이 마음에 담겨졌으니, ‘염주골’은 언제나 나에게 파문을 일으킨다. 이번에는 한겨울에 눈으로 덮인 염주골을 보게 됐다.

내리막 능선 길에선 균형을 잃지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능선 옆 사면으로 미끄러지면 그대로 멈출 때까지 아래로 아래로 내달려지니 말이다.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와야 하니 그것이 더 큰일이다. 앞서던 김재호님 둔전골 쪽으로 미끄러지더니 아래 큰 나무에서 멈췄다. 그 나무 덕에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서 멈췄으니 다행이다. 옆으로 사선으로 눈을 헤치고 다시 능선길 까지 올라와야 했지만 서도..

염주골로 접어드니 바람 없이 아늑하다. 눈과 돌, 잔 가지들을 헤치며 아래로 내려간다. 미끄러지면서 들어 나는 돌에 크램폰이 걸리지않도록 조심하면서.. 부쉬지대를 벗어나니 크램폰을 벗으란다. 눈앞에 비탈 길을 조별로 기차를 만들어 미끄러져 내려 가기다. 앞 서 내려가는 기차는 신이 났다. “야호!” “이야호!” 그 속도 감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앞 사람의 배낭을 단단히 부여잡고.. 단숨에 내려선 긴 비탈 길! 선행자들이 말하던 겨울 산행의 백미 중 하나, ‘미끄럼타기’다.

오름 보다는 내림길이 수월하다지만, 깊은 눈길은 나를 힘들게 했다. 균형을 잃어 주저앉을 때마다 시간이 곱으로 걸리니, 나는 다시 뒤로 쳐졌다. 앞 무리를 다시 잡으니 벌려진 계곡에 자리잡고 ‘아점’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힘든 산행 뒤에 맛난 식사와 휴식이다.

다시 크게 두개조로 나뉘어 설사면 그리세딩 추락정지 훈련과 설면 인공확보물을 이용한 확보 훈련이 이어졌다. 내가 속한 조는 이승훈 선생님 지도 아래 먼저 경사면을 러셀로 올라 누운 자세로 미끄러지면서 몸을 돌려 피켈을 설면에 박아 몸통으로 눌러 제동하기 이다. 몇 차례 시도에도 속도를 이기고 몸을 돌려 피켈을 박아 제동하는 것에 실패했다. 미끄러지면서 발을 벌려 가랑이 사이로 눈을 모으거나 뒤꿈치를 눈에 깊숙이 박아 누르면서 제동하는 것에 그쳤다. 이번에는 누워서가 아니라 머리를 아래로 하고 미끄러지면서 피켈을 찍어 몸 방향을 바꿔 자세를 잡으면서 피켈에 몸 무게를 실어 눌러 박아 제동하기다. 이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추락에 무슨 자세가 정해져 있을까 만은 어떤 형태이든 확실하게 제동해야 만 한다. 나는 이것을 숙제로 남기고 다음 확보 훈련에 들어갔다.

박태원 선생님 지도 아래 우리는 둘씩 짝을 이뤄 피켈, 스노바, 데드맨으로 나누어 확보하기를 했다. 내 짝은 김재호님이다. 먼저 내가 피켈에 로프를 걸고 발로 다진 설면에 깊숙이 박아넣고는, 발로 로프를 한번 감아 박힌 피켈 위를 밟았다. 내 짝 김재호님은 로프 한쪽 끝을 허리에 두르고 보우라인으로 처리한 후, 경사면 아래로 몸을 날린다. 추락을 견뎌주는지 실험하기다. “추락!” 한 순간에 나도, 피켈과 함께 딸려 떨어졌다. 우리는 곧바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 무엇이 잘 못 되었던가? 나중에 보니 피켈의 샤프트 한가운데를 로프로 감아, 가로로 피켈을 설면에 깊숙이 박고, 로프를 발에 감아 밟고 몸무게로 눌러 서있어야 함을 알았다. 다음은 두 자루의 스노바를 직선으로 설면에 깊숙이 박고, 두개의 바에 카라비나를 각각 설치하고 슬링으로 이퀄라이징하여 연결해선 그곳에 로프를 걸어 추락해 보기다. 이번에는 피켈보다 안전해 보인다. 먼저 내가 추락을 해보았다. “OK!” 다음은 김재호님, “추락!” 이번엔 두개의 바가 함께 뽑혀 나갔다. 다시금 “사망!!” 마지막으로 데드맨이다. 데드맨에 달린 아래 철 줄이 눈 속에 충분히 묻히도록 세로로 눈을 팠다. 그 위에 가로로 데드맨을 깊숙이 박고 아래 위, 두 철 줄이 보이지 않도록 밟아 다졌다. 두 번의 ‘사망’에도 추락다운 추락을 해 봐야 확인할 수 있다며 재시도하는 김재호님! “내 짝 파이팅!” 이번에는 모두 걱정스럽게 숨을 죽였다. “잡았다!!” 데드맨은 추락 힘을 견뎌줬는데 얼마나 깊숙이 눈을 파고 들었는지 데드맨 회수하는데 애를 먹었다. 바일로 파고 또 파서 건져낸 데드맨은 박았을 때와는 달리 설면에 직각으로 가 아니라 누워 박혀 있었다. 모두가 신설이라 다져지기 힘들어 선지 추락 힘을 버텨주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때려 박을 정도로 다져지고 단단한 설면에서나 가능할 것 같다.

오후 3시30분, 훈련을 종료하고 남정네들이 나무꾼 놀이를 하는 동안 ‘소’가 눈에 덮여 ‘멱’을 감지 못하는 선녀들은 휴식을 하기로 했다. 우리 조 선녀 강대호님, 본부조에서 삽을 빌려 잠자리를 만든다. 어제는 코펠로 힘들게 파냈었는데 오늘은 삽으로 쉽게 만들었다. 어제 비좁았던 자리를 오늘은 넓게 만들기로 하고 나는 옆에서 거들었다. 다음 겨울집중훈련에는 삽을 꼭 챙겨야 겠다고 다짐한다. 삽 머리에 피켈을 끼워 대를 만든 것이 여간 유용한 것이 아니다. 각 조별로 마음에 드는 곳곳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모든 찬들을 꺼내놓고 우거지국에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모든 것이 여유롭다.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둠이 깔리면서, 아직 빛이 남아 하얀 계곡 사이 벌어진 하늘로 얼굴을 내민 반달은 청아하고 고혹적이다. 우리는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앉았다. <설악가>로 시작하여 각 조별로 산 노래가 이어졌다. “본부 조는?” 박태원 선생님 왈, “’산’자가 들어가면 되죠.”라며 ‘슬픈 산토끼’를 부르신다. 정말 길게 늘어지는 슬퍼지는 ‘산토끼’다. <등대>, <만남>….<모닥불> … 밤이 깊어 간다.

강대호 선녀의 소원을 들어준 전두성 나무꾼의 ‘허락’으로 우리는 모두 늦잠을 잤다. 단단히 배낭을 꾸리고 조별 횡대로 출발선에 선 시간은 오전 7시! 아직 어둠이 거치지않은 채 앞 계곡을 삼키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 마음대로 피켈, 바일, 스톡을 쓰면서 내려갑니다!” 남겨진 짧은 바일을 집어 들었다. 미끄러지면 어찌하든 제동을 하여야 겠기에.. 조별로 어둠 속 계곡으로 사라진다. 골 깊은 계곡에 쌓인 눈은 더욱 깊다. “푸-우욱!” “쑤-우욱!” 얼마간 구름 속 걷기를 했을까, 어느새 날이 밝아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의 경사면을 따라 떨어진 눈들이 크기를 달리하며 동그란 도너츠를 만들어 곳곳에 멈춰 서 있었다. 눈 들의 ‘끙아!’ 모두 이렇게 도너츠 모양으로 뭉쳐져 내린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양폭산장을 앞두고 하강해야 하는 빙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램폰에 하니스, 하강기에 자기확보줄을 착용하고 한명씩 하강했다. 긴 기다림 끝에 (우리 조가 제일 끝이었음에), 제법 긴 빙벽을 내려서니 로프 회수하기위해 기다리는 장정들 뿐이다. 세 명씩 짝이 되어 양폭산장을 향해 걸었다. 지난 나의 추억의 계곡산행 끝에 멈춰서 물놀이와 수영했던 소들은 눈에 덮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쯤 이었을 텐데?” 어림잡아 그때의 큰 바위와 위치들을 &#51922;아 가 본다. 겨울의 설악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계곡산행 때 어렵게 내려왔던 염주골을 우리는 단숨에 내려왔다. 올해 눈이 많아 대부분의 빙폭들을 모두 덮어버린 덕에 작년 겨울집중훈련 때보다 하강이 한번 뿐이었으니 내려오는 시간은 더욱 단축됐다. 양폭산장에 도착해선 짐을 재정리하고 오뎅, 라면을 먹었다. 뜨거운 커피도..

비선대까지 내려오는 길은 이틀 전 우리가 오를 때보다 더 다져져 있었다. 겨울 산의 모습을 두 눈에 담으면서 천천히 풀린 다리를 달래면서 내려왔다. 아래로 내려 갈수록 계곡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얀 겹 모자를 쓴 바위들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사이로 맑은 물들이 시원스레 소리를 내며 흐른다. 얇게 얼은 얼음판 아래로 흐르던 물이 그 얼음 끝을 녹여내며 솟아오른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천불동 계곡은 나를 아득하게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저 배꼽 밑 어딘가에서부터 꼼지락거리며 가슴으로 치받아 오르던 뜨거움이 나의 겨울에 대한 공포를 거둬내고 있었다. “산은 겨울 산이야!” 라던 선배, 오늘 나는 그 선배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프다. “선배! 선배가 말하던 겨울 산을 조금은 알 것 같아!”

비선대에 도착하니 오후 1시. 해물전에 도토리묵, 막걸리로 거하게, 느긋하게 이야기 꽃을 피웠다. 2열 종대로 우리는 질서 정연하게 산 노래를 부르면서 설악동으로 내려왔다. 기다리던 버스에 오른 것이 오후 3시. 척산 온천에 도착해선 5시까지 목욕 시간을 준단다. 언제나 &#51922;기듯이 온천을 했던 선녀들, 두손들어 환영이다. 삼일동안 밀렸던 세수를 곱으로 하고, 머리도 곱으로 감고, 따스한 물속에 나를 담근다. 온몸이 풀어지고, 마음도 풀어지더니 졸음이 온다. 모두 버스로 돌아와 이제 대포항으로! 꺼 놓았던 핸드폰을 켰다. 여러 차례의 음성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지난 토요일과 오늘 월요일에 걸쳐 남겨진 메시지들은 사무실과 나의 보스에게서 온 것이었다. 아직 근무 시간 중임으로 사무실에 전화하고 보스와 통화한 후에야 비상상황이 파악됐다. “내일은 일찍 출근해야 한다. 벌려진 일들을 처리하고 마무림 하려면, 이번 주 나는 죽었다!”

우리가 설악산행 후 언제나 가는 대포항 횟집! 골목 끝에 있어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이 길을 걸어 들어 갈 때마다 화창했던 날의 기억이 없다. 비가 오거나.. 지금은, 비 닮은 눈이 내린다. 횟집에 들어서니 설악산구조대 박영규 대장님이 반갑게 맞으신다. 위층을 가득 채운 우리들은 맛난 회에 뜨거운 미역국, 그리고 ‘산’을 돌렸다. 이번에는 손바닥만한 삶은 ‘게’도 상에 올랐다. 다리 맛이 그만이다. 박대장의 인사말에 이어 몇 동문들의 이번 설악산행에 대한 감회 이야기가 있었다. 곧 캐나다로 떠난다는 최익호님, “내년에도 돌아와 겨울훈련에 꼭 참여할 것을 여러분에게 약속합니다!” 코 끝이 찡해지는 것이 떠난다는 익호님을 이 땅에 붙들어 두고만 싶어진다. 매운탕이 상에 오르고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들은 잔을 높이 들어 “천년!”을 외쳤다.

서울로 돌아 오는 버스 속에서 모두 아쉬운 듯 , 산 노래로 마음을 달랜다.
<등정> <스키어들의 노래>….<설악아, 잘있거라>

“설악아 ~ 잘 있거라 ~ ~ 내 또 다시 ~ 네게 오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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