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터뷰3] 김영선 KTX열차승무지부 상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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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인터뷰3] 김영선 KTX열차승무지부 상황실장
KTX 탑승까지 한 걸음 더
2008년 12월 31일

[기획인터뷰3] 참세상은 촛불의 해를 보내며 2008년을 달구었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더 큰 촛불의 2009년을 전망합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네티즌 안단테, KTX열차승무지부 김영선 상황실장에 이어 1월 1일 GM대우차비정규직지회 이대우 지회장, 1월 5일 기륭공대위 소속 '함께맞는비'의 이상욱, 1월 6일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순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자

석 달 후면 파업 3년. 한창 투쟁할 땐 파업 대오가 4백 명을 넘은 적도 있다. 해고된 KTX승무원들은 용산역 옆 철도노조 서울본부 강당과 사무실에 스티로폼 깔고 다닥다닥 붙어 두 번의 겨울을 났다. 2008년 들어 파업 조합원이 서른 네명으로 줄었지만 더 이상 이탈 없이 오롯이 남아 “철도공사가 전 KTX승무원들의 사용자”라는 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끝이 보일 듯 안 보이는 터널을 지나온 KTX승무원들은 “축하한다”는 주변의 호들갑도 오히려 차분하다. “곧 해결될 거”라는 말도 다 믿진 않는다. 다만 “KTX열차에서 다시 승무원으로 일할 것”이라는 믿음만 있다. 올 겨울 KTX승무원들은 스스로에게 3년 만의 첫 '파업휴가'를 줬다. 기륭분회 동지와 함께 내년엔 일터에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키우며.

30일 김영선 KTX열차승무지부 상황실장을 파업 승무원 숙소이기도 한 용산역 옆 철도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래는 김영선 상황실장과 인터뷰 전문이다.

법원 판결 이후 후속조치는. 최근엔 어떻게들 지내나.

남아 있는 34명만 가처분 판결이 났고 본안 소송에 들어간다. 같이 해고됐던 밖의 다른 친구들까지 모아 함께 소송에 들어가려고 백 명 가량 모았다. 판결 뒤엔 그래도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결 편하다. 많은 분이 좋은 판결을 축하한다고, 좋지 않냐고 하시는데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감이 없다. 인권위 발표 때나 그 전 판결들 나왔을 때도 별반 다를 것 없이 똑같이 싸울 수밖에 없었다.

3년간 투쟁하면서 한 번도 쉬지 못해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면서 각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고 있다. 중간중간 상황을 공유하면서 철도노조 새 집행부나 철도공사 새 사장에 따라 내년 투쟁계획을 짤 거다.

본안 소송 결과가 어떻게 될까. 복직 가능성은

가처분 결과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승무원으로 일하고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았고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3년간 별의별 투쟁을 다 했는데 결국엔 사법부 판단으로 희망이 생겼다

교섭으로 풀 수 있을거란 생각에 그동안 소송을 하지 않았는데 3년이 지나다 보니 투쟁의 기한이 하루이틀 길어지는게 두렵지 않았다. 법원 판결도 3년 동안 투쟁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투쟁 천 일 이전에 소송을 걸었다면 이번 같은 결과가 안 나왔을 수도 있다.

오래 싸우면서 4백 명이 서른 네 명으로 줄었다. 많이 떠났는데도 지금껏 남은 서른 네 명의 원동력은 뭔가

일하고 싶었던 것. KTX승무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 동지들이 떠나가는 게 가장 힘들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시작도 같이 했으니 끝도 함께 보자는 하나의 목표를 갖고 왔다.

중간에 이탈한 조합원들을 원망하진 않았나

처음에는 그랬다. 그 분들이 이탈하지 않았다면 빨리 끝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고. 이탈자가 늘수록 회사의 회유 협박도 늘어서 더 그랬다. 그런데 3년을 두고 보니 힘들어하는 친구들은 늘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런 힘듬이 그 사람(이탈자)들은 조금 더 전에 왔을 수도 있겠다고 다들 생각한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지

마지막에 했던 철탑투쟁(올 9월 서울역 옆 철탑 고공농성)이다. 마지막에 했던 투쟁이라 더 생각이 날 수도 있지만 서른 네 명 모두가 정말 최선을 다했고 후회도 없다. 새마을호 승무원들과 분리하는 회사의 안이 나왔을 때 새마을 동지들에게 미안함도 있었지만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우리 입장도 이해시켜야 했고 그 점이 굉장히 힘들었다. 당시 조합원들 중에서도 그만 끝내고 회사가 가라는 자회사로 가자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며 서로가 서로를 설득한 6시간의 회의, 그 날이 가장 힘들었다.

오랜 투쟁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기륭 동지들. 내가 나중에 복직이 돼서 뭔가를 하더라도 그 분들은 마음 속에 계속 남을 것 같다. 같은 여성 사업장이고 투쟁을 우리보다 2백 일 정도 앞서 시작했고. 처음 3.8여성의날 집회(2006년)에서 기륭 동지들을 만났을 때 충격이 굉장히 컸다. 그때 은미 동지(최은미 기륭분회 조합원)가 발언에서 머리카락이 (구사대에게) 뽑혔다고 말하는데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나라에 저렇게까지 심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그 충격 때문에 나간 우리 조합원들도 많았다. 50명 정도.

그 집회 이후 지금까지 기륭과 계속 함께 해 왔다. 지금도 새 사옥으로 이전했다는 이야기도 듣고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연락한다. 마음도 가장 짠하게 아프고 뭘 해도 내 일처럼 아프고. 우리 조합원들도 ‘기륭은 우리보다 하루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다. 항상 마음 속의 동지다.

코스콤비정규지부는 엊그제 합의했다. 남은 다른 비정규직 장투사업장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젠 거의 기륭이랑 우리밖에 안 남은 것 같다. 어제 뉴스를 보니 코스콤이 합의했다고 나오던데 순간 드는 생각은 또 우리랑 기륭만 안되네. 항상 그랬다. 누군가 합의했다고 하면 또 역시 우리만 안돼. 그런 게 많았다. 내년 초에는 우리도 기륭도 현장에서 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KTX에서, 기륭은 기륭 사업장에서, 이랜드는 마트에 가서 그분들을 만났으면 좋겠고. 코스콤도 증권거래소에 갔을 때 아는 얼굴이 맞이해 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판결이 나서 180만 원을 매달 받게 되고 좋지 않냐고들 하지만 우린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전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다. 많은 분들이 편하게 있으라고 하는데 편안하지만은 않다. 평화는 언제나 뒤집혀 왔기 때문에 불안감이 굉장히 많고. 코스콤과 모두 다 투쟁의 현장이 아닌 일터에서 만나고 싶다. 정말 일하고 싶다.

* 출처 : 참세상TV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coolmedia&id=1826&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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