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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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이탈리아 조각가·화가·건축가·시인. 카프레제 출생. 이탈리아 르네상스 말기에 활동하였으며 89세에 로마에서 죽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성당내에 무덤이 있다.

조각작품 약 40점, 회화로는 4면의 대벽화 외에 약간의 타블로, 건축에서는 교회와 기념건축물 등의 설계와 장식을 남겼고 또 회화·조각·건축에 관한 습작·소묘·에스키스 등 약 800점이 세계 각지에 분산하여 전해지고 있다.

조각
처음에 피렌체의 화가 D.T.B. 기를란다요에게 배우고, 14세 때부터 메디치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조각가 베르토르도 디 조반니의 문하에 들어갔다. 또 메디치가문의 수집품인 고대조각을 연구했으며 그 이후로 조각에 전념, 조각가로서의 자각을 일생동안 계속 지니게 되었다. 제자시대의 작품으로는 《계단의 성모》 《켄타우로스마키아》가 있는데 피렌체의 조각가 도나텔로와 고대조각에서 영향을 받았다.

1496년, 21세에 로마에 가서 《디오니소스》 《피에타》를 제작하였다. 이 《피에타》는 성모의 가슴에 걸친 어깨띠에 미켈란젤로의 서명을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서 시당국의 위촉을 받고 《다비드》 제작에 착수, 3년반 정도 걸려서 완성하였다. 이 《다비드》 상은 팔라초 베키오 앞에 놓여져 당시의 자치도시 피렌체의 상징이 되었다. 톤도라고 불리는 2개의 원형부조(圓形浮彫) 《피티의 성모자(聖母子)》 《타디의 성모자》도 거의 같은 시기에 제작한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교황으로부터 율리우스 2세의 묘당(廟堂) 제작을 의뢰받은 것은 1505년 30세 때이다. 당초의 계획에 의하면 묘당은 7.6m×11.3m의 직사각형 대좌(臺座) 위에 설치하고 거기에 등신대 이상의 조상(彫像) 40체를 놓아 성베드로대성당 안에 안치시키려는 웅대한 구상이었다. 《빈사(瀕死)의 노예》 《반항하는 노예》 《승리》 《젊은 노예》 《수염을 기른 노예》 《아틀라스의 노예》 《잠을 깬 노예》 등은 묘당을 장식하기 위해서 제작된 것이다. 묘당 하단의 중앙에 《모세》, 왼쪽에 《라헬》, 오른쪽에 《레아》를 두었는데 모두 그의 손으로 제작된 조상이다.

1520년 45세 때에는 메디치가의 선조의 위패를 모신 산 로렌초성당의 새 성기실(聖器室)에 메디치가의 묘당 제작을 의뢰받게 되었다. 메디치의 묘는 새 성기실의 제단으로 향하여 왼쪽에 로렌초(우르비노공작), 오른쪽에 줄리아노(누므레공작)의 조상 및 석관이 놓여 있고 각 석관 위에 각기 2체의 우의상(寓意像)이 놓여 있다. 즉 로렌초의 석관에는 《새벽》과 《저녁》, 줄리아노에는 《낮》과 《밤》의 몸길이 2m의 조상이 놓여 있다. 또 제단 맞은편에는 《성모자》가 세워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젊은 시절부터 피에타상 제작에 집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앞서 말한 성베드로대성당의 《피에타》 외에 피렌체대성당의 《피에타》, 밀라노 스포르차성 미술관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남겼다. 피렌체의 《피에타》는 75세 무렵 제작한 것인데 중도에서 포기했기 때문에 후에 제자의 손에 의해 오늘날의 상태로 완성되었다. 따라서 좌단의 막달라 마리아는 비례감을 잃고 있다. 뒤쪽 중앙의 니고데모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죽음을 앞둔 6일 전까지 끌을 휘둘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미완의 조상으로서 손질이 되어 있는 예수의 두 다리와 왼쪽 허리, 떨어진 위치에 남겨져 있는 오른쪽 팔은 당초 계획에 의한 제작일 것이다. 이 피에타의 조상은 이례적인 것으로 죽은 예수가 살아 있는 마리아를 업고 서 있는 포즈인데 거장의 만년의 신앙·예술·철학이 결정(結晶)된 지고한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회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성당 내에 프레스코 대벽화를 그리게 된 것은 역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위촉에 의한 것이다. 프레스코 기법에 익숙하지 않았고 고개를 젖히고 천장에다 그리는 힘든 작업이므로 그는 육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벽화를 그리는> 고충을 호소하였다. 천장화의 천지창조로 시작되는 9장면(나비 13m, 길이 40m)은 33세인 1508년부터 약 3년, 또 정면의 《최후의 심판》 장면(약 14.5m×13m)은 약 30년 후 바오로 3세의 위촉으로 1536년부터 1541년까지 5년 반의 세월이 걸려 그려진 것이다. 거인과 같은 <노한 그리스도>가 중앙에 군림하는 최후의 심판도에서는 여러 성자 외에 구원받은 영혼, 벌받은 영혼이 전부 400명 가까이 그려져 있다. 왼쪽의 천국에 오르는 영혼과 오른쪽의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의, 크게 회전하는 군상의 동적 구도와 동적 표현은 르네상스의 고전양식의 해체와 격정적인 바로크양식에의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 밖의 벽화에는 바티칸의 파올리나성당의 《바울의 개종(1545?)》과 《성 베드로의 책형》이 있다. 또 1504~1506년경의 템페라에 의한 원형화(圓形畵) 《성가족(聖家族)》은 면밀한 구도상의 배려와 정성들인 묘사에 특히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건축
미켈란젤로가 건축 일을 시작한 것은 1516년 41세 때 레오 10세로부터 피렌체의 산로렌초성당의 파사드장식을 명령받았던 일이 최초이다. 그 후, 1524∼1526년 무렵에는 산로렌초성당의 라울렌티아나 도서실의 내장, 계단설계, 1535년에는 교황청의 건축·조각·회화총감(繪畵總監)에 임명되었다. 1547년에 성베드로대성당의 조영주임(造營主任)이 되어 대형 돔의 목제 모형을 제작하였고 그 밖에 로마에서는 캄피톨리오광장·포르타피아·파르네제궁의 설계에도 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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