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술 / 우춘명 노사 태극권 시연

2007-07-19 アップロード · 6,408 視聴

우리 게시판에 우연히도 우 춘명(牛春明)노사에
관해서 질문이 들어왔다. 이 기회에 우 춘명
이란 분이 누구이며, 왕 영천 태사부와 관계는 어떠한가를 간략하게 적어 보기로 한다.

우 춘명노사는 1881년 북경의 만주족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소년시절부터 수공예 공방
직공으로 이리저리 떠돌다가 그의 나이 21세
되는 해에 그의 성실함과 총명함을 알아본 의인
의 도움으로 공예공방 직공생활을 면하게 된다.

그 의인이 학비일체를 지불하면서 "의학원"에
입학 시켰고, 그곳에서 정골학을 전공하면서
그의 입지는 수공예직공에서 정골 중의사로
바꿔지게 된다.

청나라 말기인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북경 소방대가 첨단 관청 이였던 모양인데,
자연히 그 관청의 책임자로 황족실세가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황족들(만주족) 사이에는 고급취미로
태극권 선생을 초빙하여 배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태극권은 품격이 늠름하고 우아
하여 귀족들 입맛에 맞아 떨어 졌으리라.
기격과 방신은 물론이요, 양생효과가 높으니
호사취미가 아니더라도 실용성이 높으니 귀족들이 선호했던 모양이다.

그에 비해 같은 내가삼권중의 하나인 팔괘장은
환관(내시)인 동해천 선사에 의해 전파되었기
때문에 평민이나 낮은 직급의 관료 몇 사람이
배우게되었고 근대에 와서도 그 세력은 태극권
에 비해 미약하다.

각설하고 그 당시 최고 인기있는 관청인
북경 소방대는 양가 태극권의 창시자 양로선
선생의 아들인 양 건후 선생을 초청하여
귀하신 몸(?) 몇 사람이 태극권을 교습받고
있었는데, 이때 신참 정골 중의사인 우춘명
노사도 가끔씩 왕진을 가게 된다.
(소방업무란 항상 위험성이 있지 않은가?)

이 때에 양 건후 선생의 절예를 접한 우춘명
노사는 양건후 선생에게 권술을 배우기를 간청
했고 몇 번의 거절 끝에 자신의 아들에게 배사식
의 예를 치루고 배우라고 권했다.

다음날 양씨댁을 곧바로 찾아갔고 그 후에
양징보 선생에게 배사례를 드리고 양가 태극권
에 입문하게 된다.

30대의 우춘명은 "소호(작은호랑이)"란 별명의
소년 왕영천을 만나게 된다. 이미 왕영천 소년
은 7살때부터 양가집에서 양건후 부자에게 공부
를 한 터이다. 아무튼 이 두 명의 사형제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고, 양가 태극권이란 기차를
타게 된다.

그 기차는 끝없이 달리게 된다. 결국 우리
음양 팔괘문 동도들도 그 뒷칸에 타게 되었고,
그 뒷칸에는 빈좌석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서 그 후 1914년부터
양징보선생이 무관을 운영 했는데
우춘명 선생은 스승을 보필 하기를 6년정도
하였고, 1920년경 스승과 같이 항주, 남경,
상해 등지로 남하하여 상해에서 태극권 무관을
개설하여 활동하기도 한다.

이때 양 징보 선생이 왕 영천 선생에게 같이
갈것을 권했으나 개인사정 때문에 못가게 되고
집 한채를 팔아서 스승의 경비로 내놓았다고 한다.

우 춘명 선생은 그 후 절강성에 눌러앉게 되고
그 곳의 "란계 체육학교", "중의학교"등에서
태극권과 정골학을 지도하게 된다.

또 항일 전쟁시기에 일본군에게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고초를 당하셨고(직장박탈당함)
그때부터 제자들을 집으로 불러 가르치기도
했다. 그 후 절강 의과대학과 절강성 군의원등
많은 기관과 학교, 공원등에서 수천의 제자를
배출해냈다.

1956년 가을 절강성 무술대 대표로 북경에서
열리는 전국 비무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젊은 시절 양가댁에서 태극권을 배운 두 선생은
그 당시 신분은 개인이었지만, 후일 왕 영천
선생은 중국의 수도 북경대표로, 우 춘명 선생
은 일개성의 대표로 만나게 된다.
이 때 두분의 고급공부에 대해 대단한 평가를
받게 된다.

높은 경지의 우 춘명 선생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태극권을 보급 실천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고 한다. 1961년 향년 82세의 나이로 타계 하실때까지....

마지막으로 두 분의 다른점과 공통점을 이야기
해보겠다. 서로의 다른점은 우 춘명선생님은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당금무림에서 상대할
자가 별로 없었던 분이고, 제자가 많기로도
유명한 분이다.

성격 또한 밝고 인정이 많은 분이라 전한다.
그에 비해 황부의 관리아들로 유복하게 자란
왕 영천선생은 내성적이고 엄격하여 제자가
많지 않다(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로.....)고 한다.

반대로 서로의 공통점은 만주족이며, 양가태극권
의 초기제자이며, 사형제간이고 또 내공의 고수
란 점이다.

절강성 무술협회 주석이셨던 우 춘명선생과
북경 무술협회 부주석이셨던 왕 영천선생
두 분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두 분의 전설은 계속 될 것이다.

출처 - 음양팔괘문 태극권
http://www.korea-taiji.com

..

tag·중국,무술,우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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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ca
2007.09.07 01:27共感(0)  |  お届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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