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氏 秘傳> 음양팔괘장(陰陽八卦掌)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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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음양팔괘문 태극권 http://www.korea-taiji.com


음양 팔괘장과 田廻


서문

복희는 사물(세상)을 관찰하여, 처음으로
팔괘를 만들었다. <주역>을 간단히 말한다면,
음양을 풀어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음양이라는 것은 천지의 도를 뜻한다.
하늘과 땅이 합쳐져 만물이 생겨나고,
음과 양이 만나 변화를 시작한다.”
음양팔괘가 생겨나고 나서, 후세에 그 학문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배운 음양 팔괘장은 이전 사람이 <주역>
을 빌어 말하기를, 음양의 이치를 변화 시키고,
팔괘의 도를 따르며, 조수(鳥獸)의 출몰을 관찰
하고, 천지의 변화를 살펴, 그 사물을 취하여,
법상(法象)이 자연스러우며, 수대의 연구와
수련을 거쳐 완성되어, 그 연원이 오래되었다.

명말청초부터 우리 전씨 가문에 전해진 후,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일들을 통해, 폐문의 술
이 되었으나, 후에 배우는 자가 끊어지지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학(家學)을 이어받았으며,
수십 년에 거쳐 세상을 피해 팔괘장을 수련하여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저 생각컨데,
“술 항아리를 가져와 술잔에 따라 마시며,
정원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웃음짓는다.
남쪽 창에 기대어 의기양양해하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안한가.”

이제 다행스럽게 평온한 시기를 맞이하여
무학이 다시 흥하게 되어, 국운이 번성하고,
무운이 번성하게 되었다. 내 나이 비록 환갑
이 넘었으나, 늙은 천리마가 마구간에 누워
있으나, 여전히 천 리를 달리고 싶어하고,
열사(烈士)는 만년이 되었어도 장대한 뜻은
조금도 쇠퇴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중화무술을 드높이고자 하는 뜻을 마음에 품고,
조상이 전해 준 음양팔괘장을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 평생의 바램이다.

이제 내가 익힌 음양팔괘장의 원류,
내가 음양팔괘장을 익히게 된 과정, 내가 익힌
음양팔괘장의 전수와 내가 책을 쓰게 된 과정을
아래에 간략하게 말하겠다.


1. 내가 익힌 음양팔괘장의 원류

내가 익힌 음양팔괘장은 명말청조에 사천 아미산
과 청성산 일대에서 벽운, 정운 두 도사에 의해
전해져, 나에게까지 9대에 이르러 이미 300여 년
이 되었다.

나의 오래된 조상 중 처음으로 음양팔괘장을
배우기 시작한 분은 전호걸(도호 선자도인)로서
벽운, 정운 두 도인의 문하생이었다.

그 후의 사람으로는 전선(도호 붕선도인),
전붕비, 전리우(도호 동우도인), 전부청
(도호 도청도인), 전해강, 전옥산 등
(한 세대에 한명만 소개) 모두 음양팔괘장을
배우고 전수했다.

그들 중에는 출가하여 도인이 된 사람도 있고,
출가 후 다시 환속한 사람도 있다. 특정한 역사
배경에 의해 보수적으로 집안 가족에게만 전수
되었고 외부 다른 성을 가진 자에게는 전수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후에 음양팔괘장을
익히는 사람은 날로 적어져 폐문의 술(術)이
되어 이때부터 세상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선친 옥산이 비밀리에 전수하였으며,
8살부터 정식으로 무술을 익혔다. 기억해 보면
10년의 힘들었던 세월이 눈앞에 선하다.
60년하고도 5년이 흘렀으니 어찌 놀랍지 않으랴!


나의 선조가 음양팔괘장을 익힌 것에는 특정한
역사배경과 함께 의로운 일에 용기있게 나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의 선조는 어디에서 옮겨온 것일까?
우리 가족 <무사(武史)>의 서문에 이런 시 한구
가 적혀있다.

형제가 노나라로부터 옮겨와, 당고에 부락을
정하였고 세대를 이어 삶을 이어오니,
수 세월을 이어가네.

명나라 시대, 전씨 문중에 두 분이 있었는데,
한 분은 전유성, 한 분은 전유문으로 친형제간
이었으며, 산동성 영성현 용수향 동하구촌과
서하구촌 사람이었다. 명대 후기에 하북성
당고구 등선고촌을 옮겨와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염전을 열어 소금을 만든 것을
업으로 하면서 이 부락을 이루게 되었다.

전씨 문중 4대 전인 중, 전여굉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자는 상보, 호는 호걸이며 사람됨이
천성이 강직하고 어려서부터 무예를 숭상
했으며, 무공을 능숙하게 이용했다.
사서오경과 시문을 숙독하고 병서 읽기를 좋아
했으며, ‘기문둔갑’류의 책 보기를 좋아했고,
말 타기를 잘 했고, 여행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불공평한 일에 관여하기를 좋아했다.

명조 말기에 전호걸이 한번은 멀리 외유를 나가
사천 아미산과 청성산 일대에서 장웅이라는
한 협사와 의형제를 맺었다. 이 사람의 성격은
정직하고 호쾌하며, 나쁜 일이나 나쁜 사람을
원수처럼 증오하였다. 두 사람은 만나자 마자
오래된 친구와 같아서 바로 의형제의 관계를
맺어 함께 협객행위를 했다.

전호걸이 사천에 있을 때, 일찍이 악질토호와
싸워 어려움에 처한 여인을 구해 준 적이
있었고, 게다가 여러 차례 의를 위해 나서거나
불의에 대하여 분개하여 나선 행동이 두 명의
도사에게 발견되었다.

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 두 도사는 도(刀)를
뽑아들고 도움을 주었다. 전호걸은 두 도사의
무공이 높고 강한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매우 탄복하였다. 후에 두 도사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벽운, 정운으로 형제지간이며,
성은 이씨이며, 벽운의 이름은 가(嘉), 정운의
이름은 정(靖)이었다.

두 사람은 본시 의로운 사람들로서, 악한 사람들
을 제거하라는 스승의 명을 받아 하산하였고,
일찍이 부패관리를 죽이고, 악질토호를 제거
하여, 관부로부터 수배되어, 어쩔 수 없이
도사 복장을 하고 도사가 되었다.

이어 구름이 가는 데로 사해를 떠돌아 종적이
정해져 있지 않고 도처가 집이라, 후에 심산에
은둔하게 되었다. 집안<무사(武史)>의 기록
에 의하면,
벽운, 정운과 전호걸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전호걸이 여러 차례 벽운, 정운의 성명을
물었으나, 벽운, 정운은 진짜 이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종종 시로서 답을 했다. 아래에
4수를 기록해 본다.

<생략>


전호걸은 벽운, 정운의 내력을 알고 난 후에는,
그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고, 두 도장을 스승
으로 섬기기로 결심했다. 장웅 외숙의 소개로
전호걸과 장웅은 같이 벽운, 장운의 문하에서
음양팔괘장을 익히게 되었고, 전호걸은 벽운,
정운의 큰 제자가 되고, 장웅은 둘째 제자가
되었다.

이후 장웅의 외숙이 세상을 떠난 후, 외숙모를
돌볼 사람이 없어 장웅을 불러 돌아 오도록
했다. 장웅은 사부의 허락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가 외숙모를 봉양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음양팔괘장은 미완성으로
앞 투로의 팔괘장을 배웠을 뿐, 뒷 투로의
팔괘장은 다 배우지 못 했다.

후에 장웅은 그의 아들 장계종에게 전수했고,
장계종은 그의 아들 장영에게, 장영은 또
그 아들 장홍균에게 전해 후대에 남겨지게 되었다.

전호걸은 스승을 섬기며 배우기를 10여 년 동안
계속하여, 음양팔괘장의 진의를 얻었다.
그 때는 명나라가 멸망하는 시기였으며,
전호걸은 아직 남쪽지방에 있었다. 세상이
바뀌는 시기여서, 전호걸은 고향을 그리워했고,
이에 스승에게 고별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났다. 그가 남쪽지방에 있을 때,
청조의 통치는 그런대로 좀 괜찮았으나,
북쪽으로 갈수록 청조의 통치는 더욱 엄했다.

전호걸은 수년간의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해
있었는데,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 어떻게
청조의 엄격한 통치를 견딜 수 있었겠는가.
그 시기는 명조가 망한 때라 몇몇 애국지사들은
비분강개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청조의 통치
에 반항하였고,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절과 도관에 들어가 화상, 도사가 되었으며,
힘을 모아 명나라의 산하를 다시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전호걸은 항상 나라를
걱정하였고, 고향의 부모님께 어려움을 드리지
않기 위해, 작별인사도 하지 않은 채 집을
떠났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고 소식도 알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전호걸의 후대로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전선 또한 실종되었다.

수 십 년이 지난 후, 홀연히 한 도사가 전씨
집에 나타나서 자신이 전선이라고 말하였는데,
집안사람들이 모두 알아보지 못하자, 그는 과거
의 일들을 말하여 온 마을을 놀라게 했으며,
마을사람들은 전호걸이 마을을 떠날 때, 그를
데리고 갔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전호걸, 전선은 도사 복장을 하고 반청복명 조직
에 가입했다. 전선은 전호걸에게서 음양팔괘장
을 배웠고, 이번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전호걸의 명에 의해 전씨 집안에 음양팔괘장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전선이 고향에 돌아온 후,
전씨 집안에 비밀리에 음양팔괘장을 전했으며,

또한 규칙을 정하기를 :

음양팔괘장을 배우는 자는, 모두 반청복명 조직
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직의
활동구역은 북경과 매우 근접해 있었고,
청조에 발견이 되었을 경우에는 멸문의 화를
당하게 된다. 그러한 까닭으로 전씨 집안이라고
모두 음양팔괘장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고,
명나라에 충성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였다.

전선은 당시에 반드시 지켜야 할 규약 3가지를
말했다. 첫째, 비밀을 지키고 청조를 위해
관리가 되어서는 않는다.
둘째, 청조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셋째, 만주족에게 무예를 전수하지 않는다.

전선이 또 규정하기를, 음양팔괘장을 익히는 자
는 다음의 20자의 순서에 따라 배분(위아래)을
정한다.

즉, 붕, 리, 부, 해, 산, 회, 극, 자, 금, 천,
만, 리, 초, 강, 악, 운, 후, 무, 건, 곤.
(벽운, 정운, 전호걸, 전선은 배자가 없고
그 이후는 글자를 배분했다).

전선은 음양팔괘장을 전씨 일족 10여명에게
전수한 뒤, 가족에게 이별을 고하고 산으로
돌아갔다. 이로서 음양팔괘장은 전씨 문중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2. 내가 음양팔괘장을 익힌 과정

나의 이름은 수상, 자는 회, 호는 무림이다.
하북성 당고구 등선고촌 사람이다.
나는 전씨 문중에서 음양팔괘장을 익힌 제8대
전인으로, 벽운, 정운부터 계산하면 제9대
전인이 된다.

나의 무공은 선친 옥산이 비밀리에 전해 준 것
이며, 내 선친의 무공은 나의 선친의 백부가
전한 것이고 그의 이름은 전학의, 자는 의제,
무술자는 전해강이다.

나의 부친 전옥산은 46세가 되어서야 나를
얻었다. 나는 고향에서 태어났으며, 1924년
음력 5월 15일 오시생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온 집안이 경사가 났었다. 왜냐하면 나는
독생자이고, 내 아버지가 전하는 음양팔괘장의
유일한 전인이기 때문이다.

독생자이기에 이론상으로는 손안의 보석처럼
여겨지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나를 지나치게
애지중지하지는 않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그는 종종 나에게
음양팔괘장의 역사와 선조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곤궁에 빠진 사람을 구제
하고, 횡포하고 사나운 사람을 제거하고,
선량한 백성을 평안하게 한 옛 이야기를 들려
주셨고, 무술의 기본공법부터 시작하여 나에게
기초훈련을 시켰다.

나는 8살 때부터 정식으로 음양팔괘장을
익혔다. 아버지의 요구사항은 아주 엄격하여,
오전에는 글을 배우게 하고 저녁에는 무술을
익히게 했다. 내 나이와 지식이 쌓여감에 따라
나에게 배운 모든 것들을 기록해 두고, 암송
하도록 했다.

그는 종종 나에게 이야기 하기를 무인은 문인이
되어야 하며, 무공이 있으면 이론까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론이 없으면 무공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한번은 내가 놀기를
좋아해 무예수련에 늦은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아주 화가 나셔서 모질게 나무라시면
서 말씀하시기를

"공을 쌓는 것은 봄 누에가 실을 토해내는 것과
같고, 공을 잃는 것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조금이라도 늦추면 퇴보하게 된다.

하루를 수련하면 하루의 공이 생기고, 하루를
수련하지 않으면 백일이 헛되어진다."
이 말씀은 비록 이미 50 여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내 귓가에 맴돌고 있다.


당시 무예를 수련할 때, 자오공(子午功) 수련을
중시하였다. 매일 시간에 맞추어 장을 수련
하였으며, 쇳가루 주머니를 쳤다. 처음에는
양손 매번 200번 정도 때렸으며 이후에 점차
증가했다.

나중에는 쇳가루 주머니가 이불 솜을 때리는
것과 같이 되었다. 나아가 매달린 주머니를
치고, 발력을 수련했다. 35근부터 시작하여
이후에 2,3백 근까지 증가시켰다.

또한, 크기가 다른 모래를 높낮이가 다르게
매달아 놓고, 흔들리기 시작하면 때렸다.
처음에는 2,3개부터 시작하여 계속해서 10여 개
로 늘였고, 순간반응과 몸의 어느 곳에서도
발력을 할 수 있게 수련함으로써, 어느 곳이
닿으면 그 곳으로 때리는 능력을 키웠다

손가락 힘을 단련하기 위해 모래를 찌르는 연습
을 했다. 처음에는 누런 콩 한 항아리로 시작
하여 차츰 녹두와 조로 바꾸어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기억해보면 그 시기에 몇 개의 항아리
를 찔러 깨트린 것 같다.

잡는 힘과 팔 힘을 단련하기 위해, 항아리 안에
쇳가루를 채우고, 항아리 주둥이를 잡아 평행
하게 들어 올렸다.

뛰어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도약판 연습을
했다. 나무 판을 벽에 비스듬히 세우고 나무판
을 밟고 위로 뛰었다. 공력이 늘어남에 따라
나무 판이 점점 가팔라졌다. 후에는 도약판
없이 바로 뛰어 넘었다.

보행의 민첩성과 안정성을 단련하기 위해,
소쿠리에 모래를 담고 소쿠리 주변을 걸었다.
공력이 높아감에 따라 조금씩 소쿠리 속의
모래를 줄여나갔다.

다리 힘을 단련할 때는 양 다리에 모래주머니에
묶었다. 탄력을 수련하기 위해 양 무릎에
대나무 판을 묶어,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는
상황에서 발 안쪽에 의지해 뛰어올랐다.
이와 같은 일들은 부분공법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공력이 높아짐에 따라, 아버지는 나에게
실전적 기술의 응용에 대해 가르쳐주시기 시작
하셨다. 투로의 순서에서 벗어나 자유 격투기를
진행하였다. 이 수련이 가장 어려웠으며,
모든 것은 깨달음과 민첩성 및 순간변화에
의지해야만 했다. 한번은 나와 아버지가 밭 사이
의 작은 길을 걸어갈 때, 아버지는 갑자기 몸을
움직이셨고 나는 너무 갑작스러워 미처 막아낼
수 없어, 단번에 길가의 하천으로 밀려났으며,
주변의 갈대 풀들이 쓰러졌다. 원래 아버지는
나의 민감성과 기술변화 능력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험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말하기 어렵다.

평소 길을 가거나, 앉거나, 눕거나, 어떤 때는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자주 맞닥트린 일이었다.
매번 내가 아버지의 공격에 맞거나 넘어지면
아버지의 얼굴에는 언제나 불만이 가득하셨다.
후에 나의 무공이 높아져 아버지가 언제 어느
때 손발을 움직이시더라도 나는 모두 적절히
대응했고, 그제서야 아버지는 만면의 미소를
지으셨다.

아버지께서 평소 나를 가르치시길
“뜻이 있으면 일은 결국 성공하게 된다.
무예를 수련하는 것은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하고, 고생을 참아내야 하며, 깊이 연구하기를
잘 해야 한다. “고 하셨다.

항상 말씀하시기를:

길이가 만장인 높은 건물도 땅에서부터 시작
하니, 뜻이 견고하면 산과 강도 옮길 수 있다.
쇠몽둥이를 갈아 수를 놓는 바늘을 만들듯이,
공부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천 가지 어려움 만가지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고생스럽게 깊이 연구할 것을 결심하라.
팔괘장의 功을 얻고 싶다면, 깊이 구하고
깊이 연구하면 비로서 손에 얻게 되리라.

그는 또 “시간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 슬퍼질
것이다. 너는 반드시 시간을 소중히 여겨,
절대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고, 명성과 실재
가 부합되는 음양팔괘장을 익힌 사람이 되거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지도하에서, 수련은 무척 고생스러웠
다. 당시, 등선고촌 부근에는 연고가 없는 무덤
이 마구 널려있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그 지역 사람들은 관영공동묘지라고 불렀다.
묘지 내에는 무덤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쑥과 풀들이 수북하여, 매일 밤이 되면,
여우와 족제비가 도망다니고, 도깨비불이 반짝
거려서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밤 늦게 음양팔괘장을 수련하는 장소로
이 천연정토(天然淨土)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첫째 내가 수련하는 음양팔괘장은 우리 집안의
비전이어서, 여기서 수련할 경우 다른 사람들
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고, 둘째 이곳의 환경이
조용하고 외진 곳이어서 意로서 神을 이끌기에
좋으며, 사람이 없음을 있는 것처럼 하여
음양팔괘장의 공을 수련해 낼 수 있었다.

나는 연공을 할 때 심신합일(心身合一)을
이루고 물아양망(物我兩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사람들의 방해를 막아야 했고, 계획을
세우길 깨진 거울조각을 무덤 위에 꽂아두고
달빛이 비치면 무덤마다 빛을 발해, 사람을
놀래 키게 되어, 자연스럽게 아무도 올 생각을
못 했다.

또한 아버지는 나에게 무덕교육을 아주 중요시
하셨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마을에서 그 누구와도 싸운 적이 없었고,
아버지의 교육이 엄해, 내가 무공을 드러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며, 다른 사람들과 싸우
는 것은 더욱 할 수 없었다. 만약 규칙을 어겼
을 때는 가족의 법에 따라 처리를 받아야 했다.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겸손하고 신중하라고
하셨고, 우월해하거나 자만해 하지 말라고
하셨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

일단 진정한 기술을 얻었다면, 절대로 떠벌이지
마라. 眼空四海不可要, 무공이 있는 자는 모습
을 드러내지 않는다. 말로서 자신을 자랑하지
마라, 진정한 무공이 어디 말로서 오는가?
일에 부딪쳐도 남을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결코 무공이 떨어짐
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을 용서할 수 있을
때, 용서하라. 무예를 이용해 남을 상하게
하지 마라.

기술을 가지고 적수를 상하게 하는 것은 요행
이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 사람이 만능이 될 수는 없고, 만능인 한 사람
이 일을 완성할 수도 없다.
세 사람이 함께 가면 나의 스승이 있으니,
마음을 비우고 배워 지식을 늘여라.
이 말씀은 내가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지금까지 매사에 무덕을 우선시 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의 밤낮없는 힘든 훈련과 아버지
의 엄한 가르침에 의해, 나는 마침내 음양팔괘장
의 무공과 음양팔괘장의 이론 전부를 계승하게
되었다. 또한,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의학을
배워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고 부상당한 사람을
도울 수 있었다.

후에 내가 사회에 나왔을 때, 배운 것들을
활용해 나의 조상들이 행한 것과 같이 여러 번
義를 위해 용감히 나서, 인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했다. 이것은 전부 각고의 노력으로
무공을 수련하고 의술을 공부해 민중들을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고개를 돌려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정말
감격스럽다. 내 조부 시절에 의(義)를 위해
용감히 나섰던 역사적 배경이 나의 아버지 시절
에도 있었고, 나 자신에게도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이 나에게 말씀하시곤 했던 것이:

“음양팔괘장을 배우는 자는 반드시 3가지를
배워야 한다. 문학, 무학 그리고 의학이다.
글을 배운 자는 고상하고, 무예를 배운 자는
지식이 있으며, 의술을 배운 자는 환자를 치료
해 인자하다”나는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아
글을 익히고 무예를 익혔으며, 의료 봉사를
수십 년간 해 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선친의 말씀의 실천이다 :

"평생 얻은 것이 깊디 깊으며, 세가지 배움이
내 한 몸에 모여,국가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네"



3. 내가 배운 음양팔괘장의 전수

내가 배운 음양팔괘장은 대대로 가전으로만
전해져 오던 것으로,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후인이 음양팔괘장을 배우는 것
은 폐문의 술(術)이 되었다.

내가 수십 년간 세상을 피해 숨어서 무예를
수련한 것을 외부인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비록 소문은 있었겠지만, 외관상으로
나는 무술을 익힌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내가 수년간 양성
해온 일종의 습관이다.

나는 16,7살이 되어서 고향을 떠나 사회로
나왔고 그 후에는 북경에 정착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익힌 음양팔괘장의 제9대 전인이며,
현재 이미 12대까지 전해졌다.

전씨 비전 음양팔괘장이 나의 세대에 와서야
외부인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내 부친이
1958년 북경에서 돌아가신 후, 나는 제자를
찾아 다니며 거두었다. 나는 내가 익힌
음양팔괘장은 인민들로부터 온 것이기에 응당
인민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조국의 문화유산으로 나는 그것을
가져갈 권한이 없으며, 더욱이 전씨만의 전유물
이어서도 안 된다.


내가 제자를 찾아가는 데는 3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도덕성이 좋아야 하고, 둘째, 무술사업에
열정이 있어야 하며, 셋째, 정직하게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라야 한다.

이렇게 엄격한 선발조건을 통해, 나는 잇따라
몇 명의 제자를 받아들였다.
그들과 나의 아들은 함께 음양팔괘장을 익혔다.
그 때 나는 여전히 세상을 피해 숨어서 전수
했고 나와 제자들은 3가지에 대해 약속을 했다.

첫째, 음양팔괘장을 익히는 자는 반드시 무덕을
준수해야 하고, 무술로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며, 글을 익혀야 한다.
둘째, 나의 이름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셋째, 공공장소에서 음양팔괘장을 익혀서는
안 된다.(왜냐하면 그때는 숨어서 무예를 수련
했기 때문이다.)


4. 내가 책을 쓰게 된 과정

나는 1965년부터 시작하여 문자를 이용해
음양팔괘장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며, 그때의
생각은 후인에게 남겨 전달하기 위함이었지
출판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세상의
바깥에 숨어지내면서 가진 평생의 바램이었다.

전국무술공작회의 후, 나의 무공은 기자들에게
알려졌고, 그 결과 기자들의 취재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나로
하여금 내가 익힌 음양팔괘장의 내력을 말하길
바랬으며, 어떤 경우에는 깊은 밤까지 나를 설득
하였다.

그 당시, 나는 말하기를 원치 않았는데,
이유는 첫째, 내가 익힌 음양팔괘장은 특별한
역사적 배경이 있고,
둘째, 내가 익힌 음양팔괘장은 사회에서 이미
보기 드문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주저했었다.

후에, 기자들이 여러 차례 나에게 중국무술협회
주석 서재 동지가 전국무술공작회상에서 한
연설문을 읽어주었고, 기자들의 조국 무술유산
을 발굴하려는 열정이 나를 감동시켰다.

특히 서재 동지의 적극적으로 중화무술을 육성
하고자 하는 정의감은, 세상을 피해 숨어 지낸
많은 세월, 아는 사람도 적은 무예인을 깊이
탄복시켰다. 나는 만약 서재 동지의 연설내용
에 따라 진행한다면, 중국의 무술은 아주 큰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조국의 무술유산을
발굴과 정리하여 한층 더 빛나게 하는 것이
사람들의 바라는 것이고, 역사의 조류에 순응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공적이
역사에 길이 남아 자손이 윤택해 질 것이다.

서재 동지의 연설로 인해 나는 다시는 세상을
피해 일을 지체하지는 않기로 했다. 여러 차례
를 깊이 생각한 후, 나는 헌신을 한다면 뜻한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뜻을 굳혔다.
그리하여 나는 기자들에게 내가 익힌 음양팔괘장
의 근원과 유래를 이야기 했으며, 기자들은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글을 발표했다.

나는 즉시 <초담팔괘장> 이란 글을 바로 발표
했다. 그 후 연이어 음양팔괘장의 <팔장팔세>,
음양팔괘장의 <호형호박월>과 <망형팔성수>,
<사형팔성수>, <팔괘장술변>, <팔괘장금나술>,
<팔괘장촉솔> 등 문장을 발표해 사회에서
크나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적지 않은 독자들이
서신을 보내왔으며, 나에게 지속적으로 문장과
<음양팔괘장> 전서를 쓰기를 요구했다.

인민체육출판사의 동지들은 무술의 발굴정리
작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즉시
나와 만났으며, 나에게 책을 저술해 뜻을
알려 후인에게 도움을 주기를 건의했다.
또한, 나에게 음양팔괘장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를 요구했다. 동지들의 일장연설은 세상을
벗어나 숨어 지내던 나를 일깨워주었다.
지금은 좋은 시기를 맞이하였고, 과거와 달라
빠르게 붓을 들어 늦음을 막지 않고, 백발이
성성한 시기를 기다려 책을 저술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나는 비록 따르는 제자가 몇 몇 있으나,
말로 전하고 마음으로 전수하는 것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유실되어 갈 것이며, 결국
그 정화를 잃어버리거나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책을 써
뜻을 알리기로 결심했고, 모든 것을 국가에 헌납
하기로 했다. 이로서 후인이 음양팔괘장을
익힐 때 의지할 책이 있으며, 찾아 볼 수 있는
근거가 있고, 기준을 삼을 글이 있을 것이다.

이 책으로 내가 배운 음양팔괘장의 표준으로
삼아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부주의로 인한
누락을 피하여 후인을 위해 본보기로 삼고자
한다. 항상 말하기를 “규율이 없으면 표준을
이룰 수 없다. 무예를 익히는 자는 구전심수와
동작모방을 하나, 결국에는 역사를 쓰고 책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는 것만 못 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시작하여 나는 바로 책을
쓸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책을 쓴다는 것
은 말하기는 쉬워도,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내적인 조건이 갖추어졌어도 외적인 조건의
뒷받침이 없다면 결국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
사진을 찍을 대상은 문제가 안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계승자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중 몇 몇은 내 곁에 있었지만,
몇 몇은 내 곁에 없었다.

지금 사진을 찍을 대상은 내 제자 조문규,
해수덕, 아들 전극련, 외손자 이점녹 이다.
그들은 모두 일정한 음양팔괘장의 소양을 갖추
었기에 사진의 모델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촬영에 있어, 오히려 문제에 봉착했다.
원인을 말하면 이것은 폼을 잡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수련 중에 순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는 시간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나는 결국 내가 직접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느 순간에
사진을 찍는 것이 좋은 것인지 그 기준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사진기를 만져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란 배워서
안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사진사에게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청했고, 여러 번의 시도
를 통해 사진 찍는 부분적인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다.

사진을 찍는 과정 중에 또 예상치도 못 했던
여러 가지 불편함을 겪었다. 시내에는 이상적인
장소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향산 근처에 가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길이 비록 멀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단지 날씨변화가
심하고 예측이 어려워 종종 시간 낭비를 하게
되었다. 어떤 때는 갈 때는 날씨가 맑았는데,
도착했을 때 날씨가 변해 바람이 불고 흐리거나
비가 내렸다. 정말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풍운이 있어 빈손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을 때, 어떤 때는 광선이 좋지 않았고
어떤 때는 사진 찍는 시점이 적절치 못했다.
또한 표정이나 자세가 좋지 않은 사람은 모두
다시 찍어야만 했다. 책을 쓸 시점에,
누락된 것을 발견하게 되면 또한 다시 보충해서
촬영을 했다. 음양팔괘장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촬영한 필름의
길이만도 천 미터가 넘었다. 정말 그 어떤 말로
도 책을 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국 이루어
냈다.

이 책에서 내 자신의 사진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진은 모두 내가 손수 촬영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원래 기대했던 효과에 도달했다.
이것은 “일은 결코 뜻이 있는 사람을 실망
시키지 않는다. 뜻이 견고하면 산과 강도 옮길
수 있다.” 보여주는 듯 하다.

음양팔괘장은 8가지 형으로 나눠지며, 매 형이
일괘장(一卦掌)이다. 8가지 형은 팔괘장이
된다. 전서는 모두 8권으로 순서에 따라
망형장, 사형장, 호형장, 웅형장, 사형장,
마형장, 후형장, 붕형장으로 각 책은 일괘장
이고 8권이 합쳐 하나가 된다.

첫 번째 책 <음양팔괘장-망형장>중의
<상편-총론>은 전체 책의 총강(總綱)이다.
음양팔괘장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장명(掌名)을 바꾸지 않았고, 8가지 형의 동작
과 투로도 바꾸지 않았다. 그 장세(掌勢)명칭도
바꾸지 않았다. 그 명칭은 8가지 형 동작의
함축된 의미에 근거해 정해진 것으로 각각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책 속에 기술된 음양팔괘장의 기술적 용어는
이론과 실제에 있어서 분리해서 쓰지 않았고
이론과 실제가 서로 부합하도록 하나하나 분해
해 보고 한층한층 파고들어가 음양변화의 이치
가 전체 글을 관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음양팔괘장의 진면목이 알려질 수 있도록 했다.

본서를 저술하는 과정 중에, 인민체육출판사
<중화무술> 편집부의 동지들과 많은 열정적인
무술계의 동지들로부터 열정적인 지지를 얻었
으며, 그 중에 양아산, 창창, 총명례, 유수정,
서개인, 강성, 염유인, 양소우, 풍대표,
진장지, 장순본, 풍지강, 한건충, 장춘동,
유무년 등 동지들은 나에게 많은 정신적인 격려
를 보내주었다.

이 책이 완성되는 시점에 있어, 그들에게 충심
으로 감사 마음을 전한다. 나는 중국무술은
방대하며 그 깊이가 깊고, 각 무술은 모두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음양팔괘장은 단지 그 중 하나이다.

나는 음양팔괘장에 대한 배움이 깊지 않고,
연구가 부족하여 대략적인 것만 알아 그 깊은
이치에까지 접근하지 못 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세상과 접촉하지 않았던 폐문의 술이었다. 비록
이유가 있어 세상을 벗어나 숨어 지내며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으나, 글에 있어서는 이미 수십 년
이 머물러 있었다. 이에 많은 식자들께서
바로 잡아 고쳐주시기를 희망한다.




번역 - 차진영 님

출처 - 음양팔괘문 태극권
http://www.korea-taiji.com




tag·팔괘장 ,음양팔괘장 ,무술 ,쿵푸 ,격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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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협려역비
2014.02.22 21:36共感(0)  |  お届け
盛 感谢 ... 감사합니다삭제
긍지인
2008.11.16 23:57共感(0)  |  お届け
담아갑니다...삭제
신들린뚱이
2007.12.24 07:00共感(0)  |  お届け
잘 보고 담아갑니다^^삭제
kdgwa
2007.12.14 03:14共感(0)  |  お届け
감사합니다.삭제

전씨 비전무술 '음양팔괘장(田氏 陰陽八卦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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