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역하는 위스콘신 전함의 16인치 함포 발사장면

2007-11-04 アップロード · 9,816 視聴

1943년에 건조된 아이오와급 위스컨신 호의 퇴역전 마지막 발사.

아이오와가 등장한 1943년 경부턴 전함끼리 치고박고 하는 때는 지나갔고 거의 대부분 항모기동부대를 이용한 공중 공격이 중심이었습니다.(독일의 비스마르크, 미국의 아리조나, 일본의 야마토, 이들 모두 당대 최강의 전함이라 했건만 최후는 모두 항공 공격으로 인한 격침 내지는 격침으로 이어질만한 타격을 입은 함입니다) 따라서 아이오와급들 역시 전함끼리의 난타전보단 탑재된 수많은 함포를 이용해 적기 공습시 대공 화망을 펼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본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종전을 맞았지만 아이오와급 미주리호만큼은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에 참여합니다. 바로 이배에서 일본의 항복 조인식이라는.

전쟁이 끝난 후로 아이오와, 뉴저지, 위스콘신, 미주리를 이을 계획이었던 일리노이와 켄터키는 건조 중단되고 미주리를 제외한 3척은 모두 장기보존상태(Mothball:이를 비꼰 말이 모스볼 플리트, 좀약 함대라죠)니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한국 전쟁에서 아이오와 클래스 4척은 다시 전장으로 나서죠. 물론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해전이나 항공으로부터 방어가 임무가 아니라 밀집된 북한군 진지에 대한 함포 사격이라는 임무가 있었죠. 흥남 철수 작전 때 아이오와급의 활약이 컸습니다.

그러나 한국전도 끝나버리자 이번엔 4척 모두 '좀약'신세가 됩니다. 현대전이 더이상 대구경포가 아닌, 미사일에 의존하는 시대가 왔고 각국이 앞다퉈 그런 무장을 가진 함정을 가지려는데 비해 공격 범위도 짦고 유지 비용도 엄청나게 드는 전함을 가질 필요를 못느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다시 긴잠에 빠지지만, 그 중간마다 꼭 한번씩 기어나올 때가 있었으니, 이번엔 바로 월남전이었던 것입니다.

북베트남의 밀집된 방공망에 폭격을 가하는 미군 항공기의 피해가 늘어나자 차라리 16인치 포탄을 퍼붓자는 얘기가 나왔고(포탄이라면 요격될 일도, 만에 하나 요격되어도 인명 피해 걱정 안해도 되고, 또 전투기나 전투기의 무장보다 포탄이 훨씬 싸니) 1968년 뉴저지가 동원되어 110일 동안 그 어떤 전쟁보다 많은 포탄인 16인치 포탄 5,688발, 5인치 포탄 약 1만 5천발 이상을 발사했습니다. 아이오와급이 동원되었던 다만 이때 뉴저지는 정식으로 운항된 게 아니라 탑승 정원이 아닌 함포를 중심으로 다루는 인원인 장교 70명과 1556명의 부사관 및 병사만이 탑승했을 뿐입니다. 재취역한지 1년 8개월만에 뉴저지는 다시 보존 상태로 돌아갔지만 월남전의 참전이 많은 것을 시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타격 무기 플랫폼'으로서의 활용이죠.

월남전이 끝나자 카터 행정부의 계획으로 미국의 군비는 대대적으로 축소됩니다. 미 해군은 1976년 476척이나 되던 함정을 불과 3년새에 18척이나 줄이고 한술 더떠 카터 행정부는 1985년까지 392척으로 줄이겠다는 야무진(!) 발표를 합니다.

Key Point: 재밌는 건 해군력 깍아먹은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원자력 잠수함 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해군 출신이라죠. 그래서 육공군의 축소에도 안심하던 해군이 펄쩍 뛰었다는, 그것도 3군 중에서 제일 심하게 당했다는.

반면 구소련은 해외로 활발히 진출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등 미국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었던 겁니다. 미국으로서는 그런 위기를 타개해야 했고 그런 의미에서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자면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눈에 보임으로써 압박을 줄 수 있는 시현 효과인 '쇼잉 더 플래그(Show-ing the Flag)'를 줄 수 있는 항모 기동부대 같은 대규모 수상함대겠죠. 그러나 대대적인 삭감을 당한 미해군엔 그럴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원래 가지고 있던 거에서 뭐 쓸만한 게 없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데, 여기서 바로 아이오와급이 나옵니다. 그러나 의회에서는 많은 비용이 드는 아이오와급의 복귀에 반대였습니다.

따라서 해군은 해병대가 상륙 작전을 실시할 시 원거리에서 강력한 함포 지원이 필요한 것을 이유로 삼았으니 의회 역시 그렇다면 16인치포를 가진 전함보다 8인치포를 갖춘 순양함 2척이 더 낫지 않느냐로 나왔지만 8인치포가 16인치포를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으니 비용 문제였습니다. .1970년대 상태가 가장 좋은 뉴저지를 복귀하는데 필요한 비용만 3억2천6백만 달러, 가장 오래된 아이오와의 경우 4억7천만달러가 소요되는 지경인데 그 비용을 아이오와의 복귀에 쓴다면 30년 정도 쓸 수 있는 신형 함정을 마련한 비용을 포기한다는 뜻이었죠.
다음 문제는 바로 승무원 문제였는데 최소 인원만 탑승했던 월남전시에도 1천명이 훨씬 넘는 수가 탔는데 정원을 채울려면 자동화를 해도 1,900명이 필요한 마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가 물러나고 들어선 레이건 행정부는 1981년 1월 20일 해군 구성 600척을 발표함으로써 박차가 가해집니다. 그에 따라 1981년 뉴저지, 82년 아이오와, 84년엔 미주리, 85년엔 위스콘신의 재취역이 결정되었고 1982년 12월 28일 롱비치 해군공착장에서 뉴저지의 재취역식이 열립니다. 이렇게 아이오와급의 재취역이 빠르게 진행된 데에는 구소련의 거대순양전함 키로프등을 의식해 그에 맞설 수 있는 위력을 보여주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죠.

뉴저지는 레바논의 상황이 악화되자 중동에 배치되어 감시를 하면서 트루즈파 게릴라 진지에 16인치 함포 사격을 가하기도 합니다만 정치적 제약과 전진관측 부족 탓에 기대 이하의 전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신속한 이동성과 시현 효과를 줄 수있다는 점에선 아이오와급은 충분했고 다른 3척도 줄이어 재취역했습니다.

단, 아이오와는 1940년대 기준으로 만든데 비해 활동 무대는 1980년대였습니다. 아무리 16인치 함포가 강하다 한들 그 상태로는 현대전엔 적합하지 못했으니까요. 따라서 아이오와급들은 대대적인 개수를 받습니다.

1990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위스콘신과 미주리는 페르시아만에 배치, 토마호크와 함께 16인치 함포 사격을 실시했으며 약 100발의 포탄과 24발의 토마호크를 발사했습니다. 현재는 모두 퇴역.


글 출처 - gloyacks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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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전함 ,함포 ,해군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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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22:46共感(0)  |  お届け
missouri
ㅎㅎㅎㅎ
2010.08.29 09:35共感(0)  |  お届け
음냐음냐ㅎ삭제
전함마니아
2009.05.17 14:23共感(0)  |  お届け
이런 전함은 타보고 싶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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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맨
2009.05.02 15:07共感(0)  |  お届け
일본에항복조인식도있지만 6.25한국전쟁때도 미주리호가 와서 인천상륙할때함포 사격을햇읍죠삭제
밀리터리맨
2009.05.02 15:04共感(0)  |  お届け
미군거대전함은 미국아리조나가 아니고요 bb61 - Iowa 입니다 아이오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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