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 믿음의 사람들-박형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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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믿음의 사람들>
40편 ‘신학자의 길로 나아가다’ 박형룡 박사 # 2

등장인물: 박형룡, 교목, 교수, 장터아낙, 김익두, 아내, 강규찬, 순사


Na : 마음의 정결함을 갖고자 고민했던 소년 박형룡은
하나님을 만난 후 진리를 만나게 된다.
추운 겨울, 고개를 넘어 예배당으로 향하였던 그는
본인의 의지로 산천의 한 기독교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곧 큰 진보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믿음 앞에서 항상 갈급하였다.

형룡 : 목사님,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교목 : 그래, 편히 얘기해보거라.

형룡 : 저는 어려서부터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갔고
하나님을 만난 후 편안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교목 : 만유의 주께서 능으로도 안되고 힘으로도 안되니
오직 나의 영으로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단다.
기도 가운데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마음속에 역사하시도록 간구 해야하렴.
오직 하나님만이 성령의 권능으로 마음을 순결히 하실 것이야.

Na : 그 때 박형룡은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첫 감동과 사랑을 담아 기도문을 작성한다.

박형룡 :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주께서 불가능한 일을 이루시어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세요.

Na : 뿐 만 아니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 것을 무수히 암송하였다.
하루에 일 백 번, 혹은 일 천 번을 되풀이한 날도 있었다.

형룡 : 목사님. 제 생활이 변했어요.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과 평화가
가슴 속 깊이 들어와 저의 태도와 시간을 완전히 바꾸었어요.
주님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어떡하면 될까요?

교목 :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항상 길을 보여주신단다.


NA : 3년 후 박형룡은 신성중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다.
하루치 분량으로 주어지는 만나와 같은 믿음에 성실함으로
반응하고 학생으로써 자신의 위치에 충실하였던 그는 품행이
단정하였고,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 후 그는 평양 기독교 전문대학을 입학하게 된다.

교수 : 이번 시간에는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에 대해서 발표해보겠네.

박형룡 : 1907년 평양에 불같은 부흥이 일었을 때
저는 김익두 목사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굉장히 열정적인 분이셨습니다.
멋스럽게 얘기하는 법이 없으셨죠.

장터아낙 1 : 깡패 김익두가 정말 예수에 미쳤구만...

장터아낙 2 : 조용히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한번 들어보게...
금싸라기 같은 말씀이 뚝뚝 떨어진다니깐...

김익두 : 예수천당, 불신지옥.
예수 믿으세요.

박형룡 :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Na : 그렇다. 그는 부흥의 불씨가 짚여질 때 즈음 유년기를 보냈고
그 불씨에 활화산 같이 폭발할 때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박형룡 : (결의에 찬) 신학자가 되겠어.

NA : 청소년기에 그가 보았고, 들었던 것이
고스란히 그의 삶에 남아
평생의 좌표가 되어준 것이다.

박형룡 : 여보. 중국으로 갑시다.

아내 : 중국이라니요. 이제 자리 잡으셔야지요.
지금 우리형편은... 굶어죽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입니다.

박형룡 : 하나님,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돈이 없습니다.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인도하여주십시오.

Na :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원대한 꿈을 가졌던
청년의 길에 막힘이 있으랴.
이후 그는 중국 남경의 금능대학교를 졸업하였고
프린스턴신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박형룡 : 여보,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바로 프린스턴 신학교 입합허가서입니다.

Na : 하지만 입학의 감동은 잠시였다.
곧 삶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박형룡 : 먹고 살 길이 막막하구나.
미국이라는 곳에서 공부는커녕 살아남는 길이 우선이라니...
지금 조선에 돌아가면...
아... 하나님, 제가 이 곳에 왜 왔나요?

아내 : 여보, 우리 그만 돌아가요.
조선에 돌아가면 지금보다야 배불리 먹고 살 것 아니에요.

박형룡 : 약한 소리 마시오.

아내 : 여보. 흑흑
괄시받는 것도 이제 너무 지긋지긋합니다.

박형룡 : 아버지. 저는 왜 이렇게 연약합니까?
부푼 꿈을 가지고 왔는데...

하나님 : 아들아, 내가 너를 인도하지 않았느냐.
마음을 굳게 하고, 네 나라를 위해 일어나라.

Na : 당시 우리 나라는 헌신한 자를 교육시킬 만한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다.
정도의 길을 밟은 자가 적었기에 성경에 대한 무지가
하나님을 가리우고 있었다.

박형룡 : 세상에... 엉터리 이론이 판을 치고 있구나.
올바르게 하나님을 증거 해야해. 정직하게...

Na :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그는 수많은 신학론을 접하였고
한국교회의 현실에 맞는 것을 취하여 1929년 귀국한다.

위임목사(강규찬) : 미국에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산정현교회에서 함께 동역합시다.


NA : 한국에 들어온 박형룡은 부흥의 진원지였던
산정현교회에서 첫 사역을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평양 장로회신학교 임시교수직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순사 : 신사참배를 하지 않으면 모두 싹 쓸어버릴 지 알아.

성도 :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셨다고 합니다.

목사 : 이봐, 우리도 살 길을 모색해야하지 않겠나.

박형룡 : 목사에게 살 길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신사참배는 절대 안됩니다.

목사 : 우리는 신사참배를 하겠네.

박형룡 :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등지는 행위입니다.


Na : 박형룡의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제 27회 조선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된다.

박형룡 : (울먹) 아버지. 아버지. 이 나라를 어쩌면 좋습니까?
피맺힌 눈물들을 아버지께서 보시고 계십니까?

박형룡 : 분명 하나님이 예비하신 ‘남은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잠시 일본으로 가겠습니다.

Na : 일본에서 박형룡 목사는 하나님과 조용히 독대하며
표준성경주석 저술을 마무리한다.

성도 : 목사님, 목사님. 계십니까?
광복이 왔습니다. 조선에 광복이 왔습니다.

박형룡 : (흑흑) 정말입니까? 할렐루야. 할렐루야.
너무 기뻐서... 너무 기뻐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군요.

Na : 감격의 해방을 맞은 후 박형룡 박사는
본격적으로 제자를 세우는 삶을 살게 된다.
고려신학교 교장 역임,
1947년 장로회신학교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는 등
환경적인 제약을 넘어 한국적인 신학을 전파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박형룡 : 여러분 자유신학, 보수신학 수많은 이론들에
휘둘려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Na : 1978년 10월 25일
박형룡 박사는 82년간의 생애를 마치고
주님의 품에 안기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저술, 학문, 이론은
여전히 많은 목회자들의 말씀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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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호
2009.11.23 05:16共感(0)  |  お届け
이것은 남한에서와 북한의 평양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기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신사참배를 다른 번역어로 표시하면, 배의 진실한 일의 신으 로그리스를 표시하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한사람들은 그 반대의 중화민국표시 글자로 '죽은신을진실로절하다'라는 표시로 배우고 있기 때문이죠~삭제
centj72
2007.11.25 06:36共感(0)  |  お届け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가져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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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j72
2007.11.25 06:36共感(0)  |  お届け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가져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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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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