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동 5.18 국립묘지 참배

2007-05-21 アップロード · 735 視聴

나는 1960~70년대 내 젊음을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바쳤다. 강원도 함백탄광에서, 구로공단에서, 청계천 판자촌에서, 합정동 철공소에서 수배와 도피, 그리고 투옥이 반복되는 나날이었지만 행복했다. 김해보안대에 끌려가 사흘 동안 불문곡직 매를 맞아 죽음에 이르렀을 때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이 땅에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서울의 봄이 오자 민주주의를 위해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 미뤄뒀던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이다. 바로 그 해 옥스퍼드에서 광주의 처참한 사진을 접하며 나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정통임을 자부하던 내가 정작 광주시민들이 신군부의 독재에 항거하다 총탄에 쓰러져갈 땐 저 먼 영국 땅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 당장이라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지 못한 게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하나의 후회로 남는다.

물론 당시 광주항쟁에 대한 유인물을 만들어 영국과 유럽에 있던 교민들에게 돌리며 진상을 알리고자 노력했지만 부끄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1993년 국회의원이 된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5·18 묘역을 찾고 있지만 죽음으로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펴낸 열사들의 묘비명만 대하면 내 안에 웅크린 죄인을 포박하는 듯해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다.

나는 이제 한나라당을 나와 시베리아에 섰다. 다시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춥고 고통스러운 길을 택했다.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어내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배신을 끄집어내겠지만 나는 지금 꿈에 부풀어 있다. 이 땅에 인간다운 삶을 꽃피우겠다는 젊은 날의 꿈이 여태껏 나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광주항쟁 이후 내 마음속에 내리는 비가 개기만, 낡은 정치의 틀을 깨뜨리고 다시 그 언덕길에 돌아오기만,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선진평화의 미래를 열고자 한다. 선진 대한민국과 한반도 평화의 꿈을, 국민의 삶 속에 행복과 희망과 인간다움을 채우는 꿈을, 좌우와 동서와 남북을 크게 융합하는 새 정치 창조의 꿈을 펼쳐나가고자 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과거지향적인 정치, 국민의 희망을 짓밟는 갈등과 대립의 정치, 현실을 왜곡하고 기만하는 세몰이 정치를 극복하고 참된 민주주의의 역사를 쓰고자 한다. 그것이 광주항쟁의 정신을 잇는 손학규의 각오이자 경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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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h
2010.03.09 12:19共感(0)  |  お届け
오월의 영령들 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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