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풍림화산(風林火山)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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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림화산 1화 「외눈의 남자」[시청률 21.0 ]
[2007] 풍림화산(風林火山)

원문제목 : 風林火山
분류 : NHK 대하드라마
장르 : 액션 / 드라마 / 사극
본방송국 : NHK
방송기간 : 2007.01.07 - 2007.12.16
방송편수 : 50부작 (평균시청률 18.7%)
국내등급 : 15세 이상
국가 : 일본
원작 : (NOVEL)
공식 홈페이지 : http://www3.nhk.or.jp/taiga/index.html
연출 : 시미즈 카즈히코

출연 : 우치노 마사아키 - 야마모토 칸스케
각트 - 나가오 카게토라 (우에스기 켄신 )
치바 신이치 - 이타가키 노부카타
이케와키 치즈루 - 산죠 부인
아사다 미요코 - 하기노
카네다 아키오 - 오부 토라마사
류 라이타 - 아마리 토라야스
사사키 쿠라노스케 - 사나다 유키타카
시미즈 미사 - 시노메
타니하라 쇼스케 - 이마가와 요시모토
나카다이 타츠야 - 타케다 노부토라
후부키 준 - 오오이 부인
칸지야 시호리 - 미츠
후지무라 시호 - 쥬케이니
타카하시 카즈야 - 쿄라이시 카게마사
타나베 세이이치 - 오야마다 노부아리
사쿠라이 사치코 - 네네
카시마 노리토시 - 타케다 노부시게
이치카와 사단지 - 우에스기 노리마사
마츠이 마코토 - 호죠 우지야스
이치카와 카메지로 - 타케다 하루노부 (타케다 신겐)
시바모토 유키 - 유우 공주
아메쿠 미치코 - 칸스케의 母
미츠이시 켄 - 야마모토 토시치
츠지 카즈나가 - 카츠누마 노부토모 (노부토라의 동생)
시시도 카이 - 하라 토라타네
카토 타케시 - 모로즈미 토라사다
코히나타 후미요 - 스와 요리시게
미즈카와 아사미 - 히사
사토 류타 - 헤이조
야마우치 하야테 - 겐스케 (야마모토 칸스케의 어린 시절)
이토 코우 - 야마모토 사다유키 (칸스케의 父)
마츠카와 나루키 - 야마모토 토시치 (어린 시절)
이케마츠 소스케 - 타케다 하루노부 (어린 시절)
소노베 고타 - 지로 (타케다 노부시게의 어린 시절)
사사노 타카시
미즈사와 아키
타나카 코타로
마에카와 야스유키
시오노야 마사유키
타카하시 잇세이
테라지마 스스무
키무라 사카에
이부 마사토
이시바시 렌지
세가와 료
테리 이토
사키모토 히로미
츠무라 타카시
시나가와 토오루
요코우치 타다시
사카키 히데오
나가에 히데카즈
키타로
스가타 슌
우에스기 쇼조
콘도 요시마사
아리조노 요시키
아리마 지유
카메야마 스케키요
쇼지 에이켄
시호도 와타루
오오모리 아케미
마나세 주리
마키 요코
마츠오 토시노부
콘노 마히루
시부야 타케루
야기 유키
오가타 켄

프로듀서 : 와카이즈미 히사오
각본 : 오오모리 스미오
원작 : 이노우에 야스시
음악 : 센주 아키라
제작사 : 일본방송협회 (약칭: NHK)

♣ 작품소개
카와나카지마 전투

일본 중부에 위치한 카이의 영주 다케다 신겐은 전국제패라는 웅대한 꿈을 품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 북부의 시나노를 병합하고 점차 세력을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그를 막아선 자가 있었으니, 그는 다름아닌 북부 에치고의 영주 우에스기 겐신이었다. 그는 시나노를 침략한 다케다 신겐의 행위를 규탄하며 그에게 즉시 북시나노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으나, 신겐이 이를 받아들일리 없었고, 둘은 전면전에 돌입했다.
이들의 전투는 서로의 영토간의 거리등을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카와나카지마에서 잇달아 벌어졌다. 제1.2.3차 전투는 신겐이 전투를 회피함으로써 전면전에까지는 돌입하지 않았으나 우에스기 겐신은 이 기나긴 전투에 결말을 내고자 결사의 각오로 병력 1만8천을 이끌고 에치고의 가스가 산성을 떠나 가와나카지마로 진입했다. 신겐도 이에 응하여 병력 2만을 동원. 카와나카지마로 진격했다.
먼저 선수를 친 것은 신겐. 그는 카와나카지마에 가이즈 성을 세운 관계로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 있었다. 그는 성내에 3천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카와나카지마 깊숙히 들어온 겐신을 협공할 수도 있었다. 이를 익히 알고 있던 겐신의 부하들은 겐신에게 이점을 지적했으나 겐신은 어쩐 일인지 그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전군 부동(不動)"을 명령했다. 그는 후방이 차단되어 가스가 산성으로의 퇴로가 끊길 것을 우려하는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걱정마라. 만약 신겐이 가스가 산성을 친다면, 우리는 고슈(신겐의 본거지)를 칠 것이다." 이에 겐신측의 동요는 수습되었다.
이때. 신겐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는 겐신이 1만 8천 가운데 1만3천의 병력만 끌고 오고 나머지 5천을 신광사 주변에 배치.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겐은 이 5천의 병력이 신경쓰여 미처 겐신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고, 겐신은 겨울철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미동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초조해진 신겐은 결국 군사 간스케의 "탁목조" 전법을 받아들여 겐신을 치기로 결정한다.
결전 전날. 신겐은 1만2천의 병력을 동원하여 겐신의 본진을 급습하고 자신이 이끄는 8천은 겐신의 퇴각로 쪽으로 이동하여 결정적 타격을 입히기로 결정한다. (적진을 급습하여 적을 퇴각으로 몰아넣고 그 도망치는 적을 공격하여 괴멸시키는 전법임.) 그러나 이미 신겐의 진영 근처에 닌자들을 풀어놓은 겐신은 그날 저녁 유난히 많이 피어오르는 밥짓는 연기를 포착. 신겐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는 결단을 내리자마자 이미 동향을 파악하고 있던 신겐측의 닌자 17명을 모조리 잡아 죽여 자신의 이동을 신겐이 알지 못하게 한 후 즉시 1만3천의 전군을 동원하여 신겐의 본진을 공격했다. 때마침 인근 지역에 퍼진 막무(엄청 짙은 안개)까지 겹치는 바람에 신겐은 미처 이러한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2만의 병력으로 겐신을 포위공격하려던 신겐의 전략은 순식간에 역전되어 신겐의 본진 8천 대 겐신의 주력군 1만3천의 대결이 되었다. 이 때 겐신은 헛탕을 치고 돌아올 신겐의 별동대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후방에 카즈마스의 병사 1천을 남기고 공격하는 기민함을 보인다.
허를 찔린 신겐은 황급히 공격형인 어린진을 바꾸어 학익진으로 전환. 겐신의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 순식간에 방어진이 뚫리고 신겐의 동생이자 유능한 장수였던 노부시게.
신겐의 곁에서 전략을 보좌했던 애꾸 군사 간스케등이 겐신의 공격을 막다 전사했다.
신겐은 죽음직전까지의 위기에 몰렸으나 다행히도 그들의 희생으로 시간을 벌어 별동대가 도착할 수 있었고 겐신은 신겐의 바로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퇴각했다. (이 때 겐신이 신겐의 진영에 단기로 돌입. 신겐과 1 대 1 결투를 벌이고 신겐은 부채로 막아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저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 마저도 그가 죽을 때까지 상대하기를 꺼렸다는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 그리고 가장 웅대한 전략을 가지고 영토를 수배로 늘리며 일생을 통틀어 거의 승리만을 수놓았던 카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 이기지 못할 싸움은 절대 하지 않던 신겐과 못 이길 싸움을 이겨버리는 겐신. 이 둘의 전투가 유독 흥미를 끌었던 이유는 아마도 둘의 이러한 독특한 성향, 그리고 극한까지 가는 전략의 대결이 오로지 음험한 책략과 검의 대결로 일관했던 전국시대의 전투에서 빛나기 때문이 아닐까

♣ 등장인물 소개
야마모토 칸스케 [山本勘助晴幸] - 우치노 마사아키
타케다 신겐의 군사(軍師). 태어난해와 태어난곳에 대해 여러설이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 젊은시절 여러지역을 돌아다니며, 군략과 축성술등의 병법을 몸에 익혔다. 타케다 하루노부(후에 신겐)의 무장으로써의 그릇에 홀려서 하루노부의 천하제패을 보좌하려고 타케다가문에 사관(仕官;등용과 비슷한말)한다. 전투의 작전을 세우는것에 그치치않고 모략에도 뛰어나, 전쟁에서 수차례 승리을 타케다군에게 안겨주었다. 하루노부의 측실 유우공주을 경모(敬慕;존경하고 사모하다.)하여 두사람의 아들 가쓰요리가 타케다가문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획책한다. 가와나카지마(川中島)의 전투에서 자신이 내놓은 키쯔쯔키(啄木鳥;딱따구리)전법을 우에스기 켄신에게 간파당하여, 타케다 본진이 위험해지자 그 책임을 지고 전투에 뛰어들어 전사한다.

타케다 하루노부 (타케다 신겐) [武田信玄] - 이치카와 카메지로
가마쿠라(鎌倉)시대부터 이어진 겐지씨(源氏)의 명문이었던 가이국(甲斐國;지금의 야마나시현)의 슈고(守護;당시 지방장관직) 타케다가문의 장남으로써 태어났다. 폭정을 일삼는 아버지 노부토라을 추방하고 자신이 당주가 되었다. 처음부터 천하통일을 목표로 정하고, 그 첫걸음으로 시나노공략에 심혈을 기울였다. 북시나노에서 우에스기 켄신과 수차례의 명승부을 벌였고, 특히 에이로쿠 4년의 가와나카지마 전투(川中島 ; 4번째 전투였다.)는 전국시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중 하나로 기록될정도였다. 칸스케의 사후에도 영토확장을 계속했으나 최후에는 교토상락 도중에 지병으로 생애을 마쳤다. [영웅은 색을 좋아한다]라는 말이 그대로 표현된 인물로써 예전부터 이 문제로 인해 여러차례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나가오 카게토라 (우에스기 켄신 ) [長尾景虎(上杉謙信)] - 각트
에치고(越後;지금의 니이카타현) 슈고다이(守護代;지방장관대리) 나가오(長尾)가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성인식을 치루고 나가오 카게토라란 이름으로 군웅할거상태였던 에치고을 순식간에 통일하였다. 하극상이 범람하던 전국시대에 보기 드물게 도의(道義)을 중시하는 모습은 매우 이채롭고, 전투을 벌일때도 항상 대의명분을 추구했고, 타케다 나 호죠에게 패한 무장을 항상 보호하여 이해(利害)을 초월한 전투를 벌였다. 호죠에게 쫓겨났던 관동간레이(關東管領;관동지역을 통괄하던 지방장관의 우두머리) 우에스기 노리마사을 도와주고, 그의 양자가 되면서 간레이직을 물려받아 이후 우에스기씨로 이름을 바꾼다. 전술의 천재로써 비교할 자가 없을정도로 합계 5번에 걸친 가와나카지마의 전투에서 타케다 신겐과 사투을 벌였다. 청렴결백한 그의 모습은 자신이 믿던 비사문천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주위에서 군신(軍神)이라고도 불렸던 천재무장이었다.

유우 공주 [由布姬] - 시바모토 유키
시나노의 전국 다이묘 스와 노리시게의 딸. 타케다 하루노부(신겐)의 측실로써 차기 당주 가쓰요리을 낳았다. 타케다 가문과 스와 가문은 선대이래로 동맹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시나노공략을 목표로 하던 하루노부는 의동생인 스와 노리시게을 갑자기 공격하고, 항복한 노리시게을 모살하였다. 유우공주는 주위에서 자결할것을 권했으나 거부하고 살아남기를 결심했다. 유우공주을 보호하던 칸스케는 첫만남에서 마음을 빼앗겨 주군 하루노부와 유우공주 두사람을 지키는 것에 자신의 생애을 바칠것을 결심했다. 하루노부는 유우공주의 미모을 보고 측실로 맞이하였다. 이것은 타케다-스와 두가문의 후계자을 태어나게 하기위한 칸스케의 설득을 공주가 받아들인 결과였다. 측실이 된 공주는 언제나 하루노부을 바라보며 [타케다는 나의 원수다. 방심을 보이면 그 머리을 자르겠다]라고 말하였다. 그 기가 센 모습에 하루노부는 사랑스럽다며 빠져들어갔다.

산죠 부인 [三條夫人] - 이케와키 치즈루
타케다 하루노부의 정실. 권대납언 산죠가의 자녀. 공가(公家;귀족가문)에서 태어난것을 슬퍼하지 않고 하루노부에게 정성을 다하여 3남 2녀을 낳았다. 그러나 야마모토 칸스케가 타케다 가문에 사관하면서 운명이 변하기 시작했다. 차남은 병으로 시력을 잃었고, 하루노부의 마음은 유우공주에게로 향하고 말았다. 유우공주을 측실로 추천한것이 칸스케인것을 알게된 후로는 그의 존재을 좋게 생각할수가 없게 되었다. 자신이 낳은 장남 요시노부와 유우공주가 낳은 4남 가쓰요리 사이에서 가문계승권 다툼이 발생하자 부응할 사이도 없이 정쟁에 휘말리고 말았다.

이타가키 노부카타 [板垣信方] - 치바 신이치
타케다 가문의 후다이(대대로 내려온)중신으로 노부토라, 신겐 2대을 섬기며, 아마리 토라야스와 더불어 [양직(兩職);타케다 가문의 최고위직]의 지위을 받았다. 말하자면 필두가로적 존재. 스루가 노카미을 칭하였다. 하루노부의 노부카타에 대한 신뢰도는 다른이와 비교도 할수 없었고, 하루노부에 의한 부친 노부토라 추방 쿠데타을 벌일때는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멸망시킨 스와씨의 본거지 우에하라성의 성주로 임명받아 타케다가문의 시나노 공략에 있어서 항상 선두에 나섰다. 또한 야마모토 칸스케가 사관하던 시기에는 가신들이 칸스케에 대한 반감을 모으던 중에는 칸스케을 비호하였다. 연전연승을 거듭하던 타케다군에 자만심이 생긴 하루노부을 여러차례 충고하였으나 듣지않던 하루노부는 북시나노 최강의 무장으로 불리던 무라카미 요시키요에 대한 정면공격을 도발하였다. 이 우에다하라의 전투에서 타케다군은 크게 패하였고, 난전중에 노부카타도 전사하고 만다.

타케다 노부토라 [武田信虎] - 나카다이 타츠야
가이 타케다 가문의 당주로써 하루노부(신겐)의 아버지. 가이 1국의 통일을 이룬뒤에는 시나노에 대한 영토확대을 시도했으나 장남 하루노부에 의해 스루가로 추방되면서 당주의 자리을 빼앗겼다. 노부토라는 14살때 가문을 이어받아 사분오열의 상태로 있던 가이을 통일했다. 뛰어난 전술가로 알려져 가이의 치안은 안정되어 타국에서의 침략을 받은일은 없었다. 다만 제한없이 계속되는 전투임무에 영내의 불만이 높아지고, 거기에 잔혹한 성격으로 가신들의 배신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장남 하루노부을 이유도 없이 싫어하고 반대로 차남에게 가문을 물려준다는 의사을 표명하기도 했다. 결국엔 가신에게도 배척당해 스루가 이마가와 가문에 추방당하게 되었다.

오오이 부인 [大井夫人] - 후부키 준
타케다 노부토라의 정실. 장남 하루노부을 시작으로 3남 1녀을 낳았다. 부인은 타케다의 피을 물려받은 가이의 호족 오오이씨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노부토라와의 싸움에서 패할때 인질형태로 노부토라와 결혼했다. 그 때문에 마음 깊은곳에서 남편 노부토라을 믿지않았고 그 대신 장남 하루노부에게 애정을 쏟아 열심히 교육시켰다. 남편이 하루노부에게 추방당할때는 부자의 다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괴로워해 출가했고, 이후에는 기타노가타라고 불리었다. 이타카키, 아마리의 두 중신이 전사하는등의 대패을 받았던 우에다하라의 전투에서는 철수을 촉구하는 편지을 보내 의지을 내세워 철수하지 않던 하루노부을 충고하였다. 육친, 가신들로의 경모의 정이 두터워, 전란의 세상에 있었던 오오이 부인은 타케다 가문의 안전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쥬케이니 [壽桂尼] - 후지무라 시호
전국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어머니. 공가에서 태어나서 교토에서 이마가와 가문으로 시집왔다. 남편은 이마가와 우지치카. 장남 우지테루, 차남 겐고로. 5남 요시모토등의 6명의 남자아이를 낳앗따. 남편 우지치카가 죽은 뒤에는 어린 우지테루을 보좌하여 실질적인 당주로써 이마가와가문에 군림. 그 때문에 후세에 [여자 전국다이묘]란 말을 듣게 되었다. 당주 우지테루와 겐고로가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자, 가문분쟁이 격발되던 시기 쥬케이니는 당시 출가했던 승방(후의 요시모토)을 데려와 측실의 아들 겐히로에이타과 대결하였다. 이 내란은 하나쿠라의 난이라고 불렸는데, 쥬케이니와 요시모토가 이겨 요시모토가 당주가 되었다. 그후에도 이마가와의 중진으로써 존경을 모았고,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의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에게 죽음을 당한뒤에도 젊은 당주을 지탱해 주었다. 1568년 타케다 신겐이 동맹을 깨고 스루가을 침략할때 이마가와 가문은 멸망하고 말지만, 이것은 쥬케이니의 죽음 직후였다. 생애 전부가 이마가와 가문을 지탱하던 여성이었다.

우에스기 노리마사 [上杉憲政] - 이치카와 사단지
관동의 명문중에 명문 야마노우치 우에스기씨의 최후의 당주. 대대로 관동간레이을 이어받아 동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우에스기씨는 차례로 내분이 일어나 서서히 몰락해 노리마사가 이어받을 시기엔 신흥 오다와라 호죠씨에 의해 북관동으로 쫓겨날 지경에 있었다. 1552년 호죠 우지야스에 의해 관동에서 쫓겨난 노리마사는 에치고의 나가오 카게토라의 곁으로 도망쳐 실질적으로 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문은 멸망했다. 관동의 질서회복을 바랬던 나가오 카게토라는 호죠씨을 쓰러뜨리기 위해 출진, 게다가 시나노 진출을 계속하던 타케다씨의 생각이 합쳐져 동국은 거대한 전란의 소용돌이속에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후에 노리마사는 카게토라와 양자의 약조를 맺고, 우에스기성과 관동간레이직을 물려주었다. 나가오 카게토라는 관동간레이 우에스기 켄신이 되어 전국사상 가장 유명한 타케다, 우에스기의 전투가 시작되는 계기을 만들었다.

쿄라이시 카게마사 [敎來石景政] - 타카하시 카즈야
하루노부의 측근중에 한명. 후에 가이의 명문 바바가문을 이어받아 명장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로써 후세에 이름을 남긴다. 가이의 지지 사무라이(재지무사)에 불과하던 카게마사는 하루노부에 눈에 띄어 출세하게되어 덴분15년에는 사무라이대장이 되고, 가로의 1명으로써 가세하게 되었다. 전투에 능하고 모략이나 축성에도 재능을 발휘해 칸스케의 최고의 제자라고 불리었던 존재였다. 스와공격에서는 칸스케와 콤비을 이루어 스와가신의 내부붕괴을 일으킨 큰공을 세웠다. 시나노에서는 슈고 오가사와라 나가토키가 도망한 후에는 마쓰모토성의 성주대리을 맡아 치쿠마군을 지배했다. 가와나카지마의 전투에서는 별동대의 장수중 한명으로 타케다군을 패전에서 구했고, 칸스케, 하루노부의 사후에는 가쓰요리을 섬기다가 나가시노의 전투에서 패전중에 후군을 맡다가 전사하였다.

오야마다 노부아리 [小山田信有] - 타나베 세이이치
타케다가문의 중신 오야마다가문의 당주. 타케다 노부토라,하루노부 2대을 섬겼다. 오야마다 가문은 노부토라가 가이을 통일할때까지는 가이의 동쪽에 있던 군나이지방을 영유하여 그 세력은 타케다을 위협할 정도였다. 노부아리의 아버지때에 노부토라에게 항복해 이후에는 타케다가문의 중신으로써 활약하였다. 노부아리는 지략과 무력을 겸비한 명장으로 스루가의 이마가와 가문의 가문분쟁이 내란상태에 빠지는 시기을 누구보다도 먼저 읽어내 가문분쟁에서 이기던 이마가와 요시모토을 지원해 결과적으로 예전의 원수관계였던 타케다가문과 이마가와가문의 동맹을 맺을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에는 후다이 가로중에 한명으로써 타케다가문의 선봉에 서서 시나노 공략에서 분전하였다. 칸스케와는 호각을 다투는 지모에 뛰어난 존재로 일종의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네네 [ねね] - 사쿠라이 사치코
하루노부의 여동생. 대립관계에 있던 타케다가문과 스와가문의 화평의 증거로 스와 노리시게와 결혼했다. 노리시게와의 사이에서 장남 인왕환을 가져 기쁨이 가정에 넘쳤으나, 오빠 하루노부가 갑자기 스와을 침공해 오면서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항복한 노리시게와 더불어 가이로 돌아왔으나 노리시게는 하루노부에 의해 자결을 강요받았다. 존경하던 오빠의 배신에 의한 충격으로 병을 얻어 눕게되고 오빠와의 대면을 거절한 끝에 스와멸망 다음해에 젊은나이에 병사했다. 전란의 세상을 원망해 아들은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랬지만 그 바램은 무참하게 배신당하고 만것이다. 상승 타케다가문에서 태어난 운명에 희롱당한 비극의 여성이었다.

타케다 노부시게 [武田信繁] - 카시마 노리토시
하루노부의 친동생. 어머니는 오오이부인. 하루노부을 싫어한 아버지 노부토라는 노부시게에게 가문을 물려줄 생각을 했으나 노부토라 추방시에는 형 하루노부을 따랐다. 관직명은 사마노스케(左馬助) 이고, 별칭으로 텐큐(典 )란 이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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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31 20:56共感(0)  |  お届け
風林火山03
호박고구망
2013.09.21 13:55共感(0)  |  お届け
감사히 잘보겠습니다삭제
ginahlee
2013.05.04 23:19共感(0)  |  お届け
감사합니다.삭제
마포밤섬
2012.03.08 16:12共感(0)  |  お届け
감사합니다 ^^@삭제
관둬요
2011.11.25 17:22共感(0)  |  お届け
감사히 담악바니다삭제
kate24
2010.08.03 23:16共感(0)  |  お届け
감사합니다~삭제
이상적 싸가지
2010.03.04 12:12共感(0)  |  お届け
담아가요~~삭제
칼레이서
2010.02.14 22:50共感(0)  |  お届け
잘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삭제
outa
2009.10.01 03:10共感(0)  |  お届け
共有お願いします삭제
tanglewood
2009.09.30 23:57共感(0)  |  お届け
감사히 담아감니다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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