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5년 소중한 희생, 미흡한 평가

2007-06-18 アップロード · 805 視聴

(앵커)
지난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축구에 온 나라가 들떠있던 그 시각, 서해에서는 우리 해군 고속정이 북한 경비정의 선제 사격에 벌집이 돼가고 있었습니다. 뉴스나우에서 발발 5년이 지난 서해교전을 되짚어봤습니다. 김성일 기잡니다.

(기자)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NLL해상으로 출동하기 직전.

장병들이 서해교전 전적비를 찾아 참배를 합니다.

싱크> 묵념하는 장병들

2002년 6월, 고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교전.

기자>
이곳에 서해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과 교전을 벌였던 참수리357정이 전시돼 있습니다. 357정에 박힌 258개의 총흔이 당시 치열했던 교전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터뷰> 강희랑 대위 (참수리 정장) "해군 2함대 고속정 장병 총원은 357정의 희생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필승의 전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곳을 방문해 결의를 다지고..."

교전이 벌어졌던 인천 연평도 서방 해상.

1999년 연평도해전이 일어난지 3년만에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서해교전은 지금까지도 인근 마을 주민들에겐 생생한 기억입니다.

인터뷰> 연평도 주민 "1, 2차전 다 봤지. 여느때보다 심각하게 포소리 나고...우리야 게 잡으려고 나갔으니까..."

북한과의 일촉즉발 대치국면에도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바다로 나가야했습니다.

수년간 이어진 군사적 긴장으로 지칠대로 지친 연평도 주민들.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 조업까지 겹치면서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인터뷰> 연평도 주민 "한창 꽃게나고 생선나고 할 땐데 저 공해 해상에서 다 잡아가니까 이 앞까지 들어올 생선이 없어요. 살길이 막막하다니까."

남북수산회담에 일희일비했던 주민들은 군사지역 주민대책을 강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사자를 비롯, 참전자들에 대한 예우문제 역시 아직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전 발발 5년만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

유가족과 후원회 등은 그간의 설움을 쏟아냅니다.

인터뷰> 문회목 이사 (서해교전 전사상자 후원회) "국가를 위해 희생을 했는데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인식을 떨쳐버릴 수가 없죠. 국가에서 문제를 재검토해야 하고, 국민들도 다시 한번 깊이 새겨서..."

여섯명의 소중한 목숨을 조국에 바친 서해교전.

고귀한 희생에 비해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채 어느덧 5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쿠키뉴스 김성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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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코웨이미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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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동읍김옥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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