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파이터' 최무배가 외치는 'Bravo, Wre

2008-03-20 アップロード · 16,272 視聴

'제가 이 길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지 그것 때문에 이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 中)

검지로 하늘을 찌르는 '피버 포즈' 세리머니,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전에서 얻은 별명 '부산 싸대기'…. 그전까지 종합격투가 최무배(38, 팀태클)하면 코믹한 이미지가 강했다. 아니면 우직한 '부산 사나이'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얘기를 나눌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그의 실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BestNocut_R]

"참신하고, 재주도 많고, 한국에서 고정된 레슬러의 이미지에선 많이 벗어나 있죠." 최무배 본인의 평가처럼 그는 다재다능하다. 노래, 기타연주는 기본. 웹기획, 포토샵도 능숙하다.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그동안 짬짬이 써놓은 격투기 칼럼을 묶어서 책으로 내고픈 소망도 있다. 단, 술은 한 잔도 못한다.

얼마 전 여름방학을 겨냥한 가족영화(제목: 비밀의 샘을 찾아라')도 찍었다. "리마리오의 하수인 '왕주먹' 캐럭터로 나오는데, 대사는 다섯 마디에요. 하하" 최근 감명 깊게 본 반 고흐에 대한 다큐 얘기를 한참 하고 나선 또 "남자도 30대 중반 넘으면 아줌마 다 되나 봐요"라며 푸념이다. 종합격투가 최무배를 '최무배 도장'에서 만났다.

▲ 마이티 모랑 시합 못해 아쉬워…'굿리지, 기다려'

"마이티 모 시합 보면서 굉장히 아쉬웠어요. 기량도 많이 올라오고, 준비도 많이 했었거든요."

지난해 6월 미국 L.A에서 열린 'K-1 다이너마이트 USA'. 그때 메디컬 테스트 불합격으로 '출전 불가 판정'을 받고 아쉬움을 곱씹은 선수는 최홍만 뿐만이 아니었다.

최무배는 이 대회에서 마이티 모(35)와 붙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 체육위원회로부터 '파이트 라이선스'를 발급받지 못했다. 그는 B형 간염 인자보균자로 확인됐다. "이길 자신 있었는데, 시합 못나간다니까 당황스러웠죠."

그때 '코리안 킬러' 마이티 모를 이겼다면 이슈화 됐을 거란 아쉬움도 들었다. "미국은 원칙을 지키는 데는 철저하잖아요." 관광을 하면서 허탈함을 달래보려 애썼다. "예전에 다리를 심하게 다쳤을 때 2주간 L.A 친구집에 머문 적이 있어요. 그래도 그때보단 (상황이)낫지 않나 맘을 추스렸죠."

그로부터 7개월. 최무배는 오랜만에 종합격투기 무대에 선다. 그는 3월 30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토종 격투기대회 '더 칸'에서 '빅 대디' 게리 굿리지(42)와 맞붙는다. 강도 높은 체력훈련으로 7kg을 감량했다. 컨디션도 서서히 끌어올리는 중이다.

굿리지는 K-1, 프라이드 같은 메이저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파이터. 하지만 최무배는 "비교우위에 있는 그라운드에서 승부하겠다"는 복안이다. "굿리지는 충분히 강한 상대에요. 하지만 저도 강하니까…." 공백이 길었지만 그의 말투에선 자신감이 묻어난다.

앞으로 붙고 싶은 선수가 누구냐고 묻자 "사실 전 '싸움'을 사랑하지 않아요. 다 무서워요. 만만한 상대는 하나도 없어요"라며 웃는 최무배. 그러면서도 "이번 대회에서 이긴 다음 흐름을 타서 쭉쭉~ 쭉쭉~ 뻗어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 도장 운영은 '숙명' vs 종합격투기는 '흥분되는 이벤트'

3월 18일 밤 10시. 늦은 시각인데도 '최무배 도장'의 매트 위에선 10명 남짓한 회원들이 땀을 뻘뻘 흘린다. 서로 비뚤어진 자세도 잡아주고, 어색한 몸놀림도 고쳐준다. 쉭~ 쉭~ 샌드백 치는 소리가 연신 허공을 가른다. 최무배 관장도 직접 회원들과 몸을 부대끼며 기술을 전수한다. 열기가 후끈하다.

"한국에선 최초로 레슬링을 돈 받고 가르쳤죠." 최무배는 회원수 120명을 자랑하는 '최무배 도장'의 관장이다. 2002년 7월 시작한 '최무배 레슬링교실'를 모태로 지금은 전반적인 격투기 기술을 모두 가르친다 도장을 오픈한 지 회수로 벌써 6년 째. "도장 운영은 잘 되느냐"고 묻자 "경제적으론 취약하죠"라며 웃는다. 하지만 그에게 도장 운영은 '비즈니스'이기 전에 소중한 '꿈'이다.

"레슬링을 통해서 제 정체성을 찾았고,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성취감과 자신감이 저라는 인간을 만들었죠." 최무배는 "그런 보람과 즐거움을 일반인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가 세종대에서 교양과목 호신술 강의를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직은 더디지만 미국처럼 레슬링이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최무배는 부산체고 1학년 때 레슬링을 시작한 후 4년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90년 북경아시안게임 그레꼬로만형 100kg급에선 동메달을 딴 엘리트 레슬링 선수 출신. 하지만 이젠 '레슬링 전도사'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굳이 비교한다면 도장 운영은 필생의 업으로 삼아야 할 '숙명'이고, 종합격투기는 '흥분되는 인생의 큰 이벤트'라고 할까요?" 레슬링은 한결같이 함께 있어주며 최무배를 지지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Bravo, Wrestle Life.' 최무배 도장 홈피 메인 화면의 문구는 그가 갈 인생의 지향점을 말해주는 듯하다.

지난 2004년 10월 31일 '프라이드 28' 소아 파랄레이전. 최무배는 일방적으로 밀렸다. '부산 중전차'라는 별명답게 시종일관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그도 파랄레이의 무차별 타격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겨야 했다.

최무배는 2004년 2월 한국인으론 최초로 '프라이드'에 진출했다. "(프라이드에서) 한국선수가 좋은 대접 받으려면 승수를 쌓아야 했죠." 한국 종합격투기의 미래와 그의 거취가 이 시합에 달렸다는 비장한 각오로 시합에 임했다. "그래, 쉽게 죽진 않는다. 여기서 죽을 순 없다 생각했죠."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2라운드 종료 10여 초전, 그는 네이키드 초크(목조르기)로 상대로부터 탭을 받아냈다. 종합격투기에선 보기 드문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정말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했죠." 지금도 가끔씩 당시 경기 동영상을 보며 감동을 되새긴다. "인간의 정신력이라는 게 정말 강하구나 생각해요."

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moon034@cbs.co.kr / 노컷뉴스 영상취재팀 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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