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북TV] 책읽는 사람들_전우용_<서울은 깊다>.3

2008-12-24 アップロード · 687 視聴

‘빈자의 성녀’로 추앙받는 테레사 수녀는
“이 세상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우리가 창조되진 않았다.
그 위대한 목적이란 사랑하는 것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기도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연말,
크건 작건 사랑의 불씨를 간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살만하고,
인간은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안녕하세요? 책 읽어주는 사람, 백승주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보건복지가족부와 함께 합니다.
<보이는 라디오, 책 읽는 사람들>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의 <서울은 깊다>를 만나봅니다.
서울에 대한 종합적인 해설과
비평을 시도 한 책, <서울은 깊다>

역사학자로서 서울의 역사를 기본으로 하지만,
청계천, 종로거리, 덕수궁 분수대 같은 상징물의 변화에 담긴
의미를 과감하게 추리하기도 합니다.

전우용 교수는 왜 서울 택해서 연구를 했을까요?

INS) 전우용 인터뷰


서울에 관한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책이 나오기 까지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려 1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INS) 전우용 인터뷰


장기간 연구의 결과물인 이 책 <서울은 깊다>.
전우용 교수는 건물의 공간배치에도
그 시대의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낭독) 전우용
사람을 둘러싼 공간의 이미지는 교과서나 거듭되는 잔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되며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정착 생활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특정 지표면과 특정 인간 집단 사이의 관계는 거의 고정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을 둘어싼 지표면의 형태나 식생, 그 위에 자신들이 세운 구조물들과 일상적으로 대면한다. 공간은 참고자료나 부연설명 없이 자신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간에게 가르친다. 그래서 특정 공간에 대한 특정 인간 집단의 정형적 사고는 문명 전환기에나 바뀌는 ‘고유문화’의 영역에 속한다. 어떤 곳에 집을 짓고 어떤 곳에 경지를 일구며 어떤 것에 죽은 자를 묻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이 정형적 사고가 내면화한 데 따른 직관이다.


“오랜 세월 형성된 서울의 공간배치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곳은 명동 성당이었다.
언덕위에 세워진 명동성당은 왕궁보다 높았다.
오랜 금기를 여지없이 깨버린 것이었다.“



낭독) 백승주

당시 천주교회가 그 자리에, 그 높이의 건물을 지은 것은
한편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도 불사한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순결한 성도들을 무참히 학살한
조선 왕실과 정부를 능멸하기 위해서였다.
조선 사람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이들 건물은 죽은 자를 기리는 건물이되 산 자의 공간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건물이었고,
도성 안에 있으면서 왕궁을 위압하는 건물이었다.
모양이나 재질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그 ‘위치와 방향’이 충격적이었다.

높은 언덕 위에 높이 솟은 건물은
한편으로 동양의 세속 전제 권력에 대해 서양의 신성 권력이
승리했음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서구적 공간관이 ‘복수의 하나님’을 매개로 한국적 공간관을
패퇴시키고 서울을 점령한 셈이다.
더불어 이는 1,000년 넘게 지속되어온 이 땅 사람들의
공간관에 결정적인 파열구를 내었다.
약현성당과 명동성당 건축의 종교적 후예들만이 아니라
세속의 후예들 역시 산자락을 파고들었다.
하늘이 만들어낸 자연의 선을 인간이 만든 건축물의 선이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오랜 금기는 여지없이 깨져 나갔다.

서울의 도시 한복판이 어디냐는
각자의 경험과 처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인들의 도심, 기억속의 도심,
그래서 역사적인 도심은 종로라고
전우용 교수는 이야기합니다.



낭독) 전우용
오늘날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사이를 산보하는 노인들은 전차가 달리던 옛 종로의 모습을 기억하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왜 서울역에서 청량리로 뻗은 노선이 지하철 1호선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더구나 110여 년 전 이 길 위에서 벌어졌던 장중한 행렬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만이 역사가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도 역사다. 한성전기회사는 러일전쟁 직후 한미전기회사로 바뀌었고, 명성황후의 능은 고종 사후 금곡으로 옮겨졌다. 1929년에 [연혁사]는 전차에 관한 고종의 기획을 한갓 코미디로 만들어버렸고, 1933~1934년 사이에는 동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엄숙하게’ 늘어서 있던 백양목 가로수들이 모두 베어져 나갔다. 1968년 종로 전차 궤도가 철거될 때쯤에는 이미 더 이상 잊을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낭만의 거리 덕수궁 돌담길에는
어떤 역사가 스며있을까요?
권력이라는 단어가 여러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도시 공간과 관련해서는 ‘공간을 개조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낭독) 백승주

경운궁(덕수궁)이 옹색하나마 황궁다운 면모를 갖추자
고종은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로 하는 새 나라를 출범시켰다.
더불어 경운궁은 새 제국의 새 황궁이 되었다.
이때를 전후하여 황궁주변에서 도로 신설 공사가 진행되었다.
고종이 경운궁 주변에 새로 만든 길들은
오랫동안 덕수궁 돌담길로 불렸고,
오늘날에는 ‘서울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시는 아예 이 길 중앙부를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꼬불꼬불하게 장식해 놓았다.
당시의 척도로는 결코 좁은 길이 아니었지만
오늘날 이 길은 디자인상의 특성까지 덧붙여져
‘도심의 오솔길’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해도
애초부터 이 방사선형 도로들이 길지도 넓지도 않았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새 도로의 폭이 좁고 길이가 짧았던 만큼,
대한제국의 권력기반도 협소했고, 그 시대도 오래가지 못했다.


“INS) 전우용 인터뷰


근대는 ‘변화가 일상화된 시대’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시간관념과 ‘시간을 분할하여 의식하는 정도’는
근대적 변화의 속도와 대략 일치하게 되는데요,
1880년 후반,
서울에서 시계탑이 등장하게 됩니다.


낭독) 전우용
1888년 이후 20년에 걸쳐 서울 공간 위에 차례로 들어선 세 개의 시계탑은 신이 주재하던 신비로운 시간이 기계적으로 분할되는 물리적 시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모든 변화는 언제나 중첩적이며, 자주 역방향의 변화를 포함한다. 물리적 시간이 모든 사람의 일상을 지배하기까지에는 아직도 험난한 길이 남아 있었다. 시간은 시계를 통해 물화한 자태를 보여주었지만, 사람들은 그에 즉각적으로 친숙해질 수 없었다.
시간 앞에서는 그 어떤 절대 권력도, 그 어떤 초인도 작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 역시 존귀한 신물로 대우받았다. 시계가 금은보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보물’이 된 것은 단지 그 값이 비쌌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계가 가져온 변화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삶이 기계적으로 분할되고,
통제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INS) 전우용 인터뷰

오늘 들으신 프로그램은
미래세대를 준비하는 보건복지가족부 홈페이지와
온북 TV 홈페이지를 통해, 보이는 라디오로 언제나 들으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책 읽어주는 사람, 백승주였습니다. *


한국방송공사
<연출 김영준, 글 장화식, 진행 백승주, 조연출 서승표,
출연 - 전우용
제작 연용호, 신혜정, 신재이, 서지은, 윤하림 /
김형대, 이승규, 김동섭, 이화중, 최영숙>

서울은 깊다 / 돌베개

(제작/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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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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