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토론회 상영 영상

2007-10-18 アップロード · 1,549 視聴

오늘 이 행사가 열리기 이틀 전인 10월 14일 일요일 아침, 우리는 11차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 회의를 갖기 위해 중국 선양으로 떠나는 남측 편찬위원들을 환송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았습니다.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직후의 첫 정기편찬회의라서 그런지 이들의 역사적 발걸음은 더욱 더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들은 지금 이 시간쯤 중국 선양에서, 그동안 평양과 금강산, 중국 베이징 등을 오가며 가졌던 지난 열 차례의 정기 편찬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북측 편찬위원들과 함께 모국어 공동체 마련을 위한 진정성 깊은 열정의 머리를 맞대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 2005년 8월 우리는 이곳 인천국제공항 국내선 출국장을 통해 60년만의 남북작가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평양행 고려항공을 탔던 적도 있습니다. 북측 문인들과 함께 백두산에 올라 통일문학의 새벽을 외치기도 했고,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는 남과 북, 그리고 해외 문인들까지를 모두 함께 아우르는 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을 의결해 내기도 했으며, 60년 이산의 반쪽 원고지를 단시간에 메우기 위해 남북의 문인들은 거듭 술잔을 부딪치기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60년 우리 문인들을 옥죄였던 국가보안법은 마침내 자연스레 휘발되는 중이었는데..... 남정현의 소설 <분지>가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던 세월로부터 꼭 40년만의 일이었습니다.

남정현의 단편 <분지>는 월간 현대문학 1965년 3월호에 발표되고, 같은 해 7월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북한 노동당 기관지 <조국통일>에 전재됐던 작품입니다. 주인공 홍만수의 어머니가 항일 독립운동가인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미군에게 강간당해 미치광이가 되어 결국 죽고 만다는 줄거리......이것이 곧 ‘계급의식과 반정부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반미감정을 조성하고 있다’ 그리고 ‘북괴의 대남전략에 동조하고 있다’는 등의 반공법 위반 혐의자로 묶여 마침내는 1967년 6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기까지 하는데... 이것이 바로 <문단의 반공법 저촉 1호>로 영원히 기록되고 있는 소설 분지 사건입니다.

1969년, 3선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토대를 만든 박정희 군사정권의 그릇된 야욕으로 절망의 70년대를 막 시작할 무렵 또 한 번의 역사적 필화사건이 한국지성의 깨어 있음을 세계만방에 고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입니다.

1970년 5월, 오적이란 제목으로 <사상계>에 발표된 이 담시는 기층민중의 장르인 판소리 사설의 특장을 절묘하게 살려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군장성, 장차관 등 다섯 부류의 타락한 인물들을 매섭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시인이 즉각 구속되었음은 물론, 시를 게재했던 장준하의 <사상계>가 폐간되고, 당시 <사상계> 대표를 맡고 있던 부완혁과 편집장 김승균, 그리고 이 시를 전재했던 야당 기관지 <민주전선>의 출판국장 김용성까지 구속되는 등... 오적 사건은 그야말로 70년대 우리 문단의 길고도 험한 겨울공화국의 시작을 싸늘하게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맞선 문단의 저항 또한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중심으로 때론 칼보다 매서운 펜으로... 때론 온몸으로 박정희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며 민주화의 최 일선 선봉에 섰던 전사들이 바로 이 땅의 대표적 문인들이었습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태동한 직접적 배경 또한 지나가는 소도 웃을 필화 조작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1972년 12월 대통령의 초법적인 절대 권력과 장기집권을 보장하는 유신헌법이 공포되었고, 이에 맞서 73년엔 학생과 민주인사들이 헌법개정청원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갔습니다. 문인들 또한 74년 1월 7일 문학인 61명이 명동의 한 다방에 모여 헌법개정청원운동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는데... 이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중앙정보부는 문인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발표하며 이호철, 임헌영, 김우종 등을 잡아 가둡니다.

이른바 <국가보안법의 시대>라고도 불렸던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일어난 대표적 필화사건으로는 이산하의 서사시 <한라산>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주 4.3항쟁의 역사적 성격을 민중항쟁이라는 시각에서 쓴 서사시로 1986년 3월 무크지 <녹두서평> 창간호에 수록되었던 <한라산>... 검찰은 이 시를 “폭동을 진압한 정부의 조치를 ‘무차별한 주민학살극’으로 묘사 &#8228; 비방하는가 한편 인공기를 찬양하였다”는 혐의로 시인을 구속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노태우 정권 시절의 대표적 필화사건으로는 실천문학사에서 펴냈던 오봉옥의 시집 <붉은 산 검은 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공안당국은 이 시집이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을 강도 높게 표현하는 한편 미국을 점령군으로,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묘사하며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내용”이라고 하여 오봉옥과 실천문학사 주간인 소설가 송기원을 구속했습니다.


하나하나 나열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80년대의 필화사건은 김사인의 말마따나 시대 자체가 필화덩어리였습니다. 89년 문익환과 황석영의 방북 사건까지를 보태지 않아도...그리고 남북 문인들이 최초의 만남을 시도하다 전원 구속됐던 사건까지를 보태지 않아도 국가보안법이란 철망 속에 갇혔던 80년대 우리 문인들의 수는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버겁습니다.

(황석영 홍석중 대담 화면)
그로부터 10수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지금 이 같은 현실을 사실로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2005년 남북작가대회 당시 평양 고려호텔에서 촬영했던 것을 오늘 이 자리를 위해 처음 공개하는 화면입니다. 국가보안법의 대표적 피해자 중 한 사람인 황석영이 북한 최고의 작가 홍석중과 반갑게 만나 파안대소하는 이 모습.... 어떻습니까? 이제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가 휘발된 지 벌써 오래란 생각 들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이 악법중의 악법이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1948년 이래 제도권 내 법전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 건지...이 또한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겠습니다...

<기획/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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