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후예 은열공 강민첨장군(姜民瞻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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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장원(文科壯元) 부원수 강민첨장군(姜民瞻將軍).

영 정 - 보물 제588호 *정1품(正1品)*

봉선홍경사사적갈비(奉先弘慶寺事蹟碣碑)-공적비:국보 7호

추성치리익대 일등공신(推誠致理翊戴一等功臣)

금자흥록대부 태자태사문하시랑 자주대첩 고려구국지장군 부원수(推聖治理翼大第1功臣錦資興錄大夫太子太師門下侍郞高麗救國之將軍副元帥)

ㅡ식읍300호를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세금을 가볍게 해주셨으니 백성들의 추앙이 대단하였다.

諡號 은렬(殷烈).

고려 광종 14년(서기 963) 11월 29일 진주 옥봉산(玉峰山)아래 개경향(開卿鄕 : 지금의 진주시 옥봉남동 622)에서 탄생하셨다.

태자태사(太子太師)문하시랑(門下侍郞)

충현서원지(忠賢書院址) -광명시도기념물 제80호

은열공 1000년 은행나무-(경남도문화재 69호)

1012년(현종 3) 5월에 동여진(東女眞)이 영일(迎日)·청하(淸河) 등지에 쳐들어오자 도부서(都部署)의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등과 함께 안찰사로서 날카로운 못이 돋아난 일종의 철갑선인 과선(戈船=거북선의 효시)으로 격퇴.

1016년 내사사인(內史舍人)

1018년에는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내침하자 대장군으로 평장사(平章事) 강감찬(姜邯贊)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대파하였다.

패배한 소배압의 군사가 바로 개경으로 쳐들어오자 다시 이를 추격하여 자주(慈州)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 공으로 1019년에 응양상장군 주국이 되고,곧 이어 우산기상시에 올라 추성치리익대일등공신(推誠致理翊戴一等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이듬해 지중추사 병부상서가 되었다.

향수 59세의 수를 누리시고 세상을 떠나시니 현종임금이 3일동안 조회를 철폐하고 예관을 보내어 장사를 돌보게하였으며

태자태사(太子太師)문하시랑(門下侍郞)을 증직하시고 은렬(殷烈)의 시호를 내리셨다.

아들 단(旦)에게도 녹자(祿資)를 가하였다. 태자태부에 추증되었으며, 문종 때 공신각에 올랐다.


왕이 손수 시를 지어 공을 칭송하니...

庚戌年中 有虜塵

경술년 중 오랑캐의 풍진이 있어

干戈深入 漢江濱

한강에까지 전란이 깊이 들어와

當時不用 姜公策

당시 강공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면

擧國皆 爲佐임人

온 나라가 오랑캐가 될 뻔했다.

라 칭송하였다.

참고문헌:高麗史, 高麗史節要, 新增東國輿地勝覽. 〈邊太燮〉

tag·고구려,은열공,강민첨,장군,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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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sdgfsd
2008.11.29 14:10共感(0)  |  お届け
강감찬장군 말고도 강민첨장군도 있었네요 ㄴㄴ 몰랐네 대단하다삭제
강영준
2008.11.27 07:45共感(0)  |  お届け
저의 파조십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선조예요 삭제

화주현벌 선조(先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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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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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강감찬함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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