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수 진녕군(五道都元帥晉寧君) 강홍립장군(姜弘立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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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장원,도원수 진녕군(五道都元帥晉寧君).

자 군신(君臣) 호 내촌(耐村)

참판 진흥군(晉興君)신(紳)의 아들이다.

1570년 선조 경인생,1589년 기축 진사(進士)

선조(宣祖) 30년 (정유, 1597년), 알성시(謁聖試) 병과1(丙科1) 장원,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시강원 설서보덕(侍講院說書輔德),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사예직강(司藝直講),홍문관 수찬(弘文館修贊),

부교리(副敎理),사헌부사평(司憲府사平),장령(掌令),보경기함경도사(輔京幾咸鏡道事),

도원수 한준 겸 종사관(都元帥韓俊兼從事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보덕(輔德)이 되고, 이듬해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서

예조좌랑,내자시정(藝曺左郞內資寺正),

1609년 광해 기유 진주사 서장관(陳奏使書壯官),동년 6월 한성우윤(漢城右尹),

함경도병마절도사(咸鏡道兵馬節度使),

1611년 신해 수원부사 견사방어사(水原府使遣使防禦使),1614년 갑인 순검사(巡檢使)

1614년 순검사(巡檢使)를 역임한 뒤

형조참판(刑曺參判),동년 4월 오도도원수(五道都元帥) 3만병마,일만삼천인.

1618년에는 진녕군(晉寧君)에 봉해졌다.

이때 후금(後金)이 명나라 변경을 침입하는 등 세력이 확장되자, 명나라는 후금을 치기 위해 조선에 원병을 청하여 왔다.

조선 조정은 이때 새로 일어나는 후금을 의식하면서도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원병을 보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출병을 결정하였다.

강홍립은 오도원수(五道元帥)가 되어 부원수인 김경서(金景瑞)와 함께 1만 3000여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였다.

1619년 명나라 제독(提督) 유정(劉綎)의 군과 관전(寬甸)방면에서 합류하여 동가강(#동01佳江)을 따라 회인(懷仁)에서 노성(老城)으로 향하였다.

이들 조·명 연합군은 일제히 공격을 시작하여 앞뒤에서 적을 협격하기로 하였으나, 작전에 차질이 생겨 부차(富車)에서 대패한 뒤 강홍립은 적진에 통하여 “조선군의 출병이 부득이하여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남은 군사를 이끌고 후금군에 투항하였다.

이는 출정전에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고 한 광해군의 밀명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조선 조정에서는 강홍립의 관직을 박탈하였다.

투항한 이듬해 조선 포로들은 석방되어 돌아왔으나, 그는 김경서 등 10여명과 계속 억류당하다가 1627년(인조 5)정묘호란 때에 후금군의 선도로서 입국하여 강화(江華)에서의 화의를 주선한 뒤 국내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역신으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하였다가 사후에 복관되었다.

1627년 7월 졸.향수 57세.

참고문헌:光海君日記, 仁祖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李章熙〉

配位:정경부인 전주황씨

父:감역 이형(履亨)

祖:우의정 헌(憲)

사위:파평 참판 윤감(尹堪)

청송 진사 심자(沈자)

전주 통제사 이현달(李顯達)

tag·강홍립,장군,도원수,강씨,고구려,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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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구
2008.12.11 16:09共感(0)  |  お届け
감동적이예요 흑윽 눈물이 나네요삭제

화주현벌 선조(先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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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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