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화 삼절 헌정공(憲靖公) 표암 강세황(姜世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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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예.회화 삼절,삼세기영지가

(三絶三世耆英之家)

왕세손 시좌(侍坐) 기로과(耆老科)에 장원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정헌대부 지중추부사(正憲大夫知中樞府事)






자 광지(光之), 호 표암(豹菴),첨재( 齋)·산향재(山響齋)·박암(樸菴)·의산자(宜山子)·견암( 菴)·노죽(露竹)·. 시호는 헌정(憲靖),해산정(海山亭)·무한경루(無限景樓)·홍엽상서(紅葉尙書)





서울에서 현(현)의 3남6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생모는 광주이씨로 집안은 대대로 학문과 장수를 누렸으며, 할아버지 백년(柏年), 아버지 현에 이어 71세 때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감으로써 이른바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로 칭송받았다.




1713~1791 시.서예.회화에 모두 빼어났던 삼절(三絶)로 18세기를 대표하는 문인.



당시 화단에서 '예원의 총수'로서 중추적인 구실을 했다.


김홍도가 어린 시절 고향인 경기도 안산에서 모시고 공부했던 스승.



집안 선조들과 임금의 두터운 관계로 영·정조에게 상당한 배려를 받았다.



1776년 기구과(耆耉科), 1778년(정조 2)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수석합격하여



관계(官階)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그 뒤 영릉참봉·사포별제(司圃別提)·병조참의·한성판윤 등을 두루 거쳤다.



1784년 천추부사(千秋副使)로 북경에 갔을 때 덕보(德保)등 당시 중국 지식인들과 접촉하면서 자신의 문화적인 면모와 긍지를 발휘했다.

1790년 78세에 지중추(知中樞)가 되었다.



시는 육방옹(陸放翁)을 본받았고,

글씨는 이왕(二王:王羲之·王獻之)의 법을 받아

상당히 깊은 경지에 이르렀으며,



그림에서는 왕몽(王蒙)·황공망(黃公望)의 정신을 이어받아 산수(山水)·묵란죽(墨蘭竹)에 속기(俗氣)가 없었다.





작품으로는 〈현정승집 玄亭勝集〉·〈첨재화보 齋畵譜〉·〈방동현재산수도 倣董玄宰山水圖〉·〈벽오청서도 碧梧淸暑圖〉·〈표현연화첩 豹玄聯畵帖〉·〈표암첩 豹菴帖〉·〈송도기행첩 松都紀行帖〉·〈약즙산수 藥汁山水〉·〈삼청도 三淸圖〉·〈피금정도 披襟亭圖〉·〈난죽도 蘭竹圖〉·〈묵죽팔폭병풍 墨竹八幅屛風〉·〈사군자병풍 四君子屛風〉·〈임왕서첩 臨王書帖〉·〈동기창임전인명적발 董其昌臨前人名迹跋〉·〈제의병 祭儀屛〉 등이 전한다.

특히 자서전인 〈표옹자지 豹翁自誌〉에 들어 있는 2폭의 자화상을 비롯하여 7,8여 폭의 초상화를 남긴 사실이 주목된다. 저서로는 문집 〈표암유고〉가 있다.

말년에 임금으로 부터 괴장(지팡이)를 하사받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을때 享年 79세 였다.시호는 헌정(憲靖)이다.


이명기필본(李命基筆本) ㅡ보물 제590-2호





강세황자필본(姜世晃自筆本) ㅡ보물 제590-1호



강세황영정(姜世晃影幀) ㅡ보물 제590호




벽오청서도 (碧梧淸暑圖)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강세황 필적 강세황 인장


영통동구도 강세황 산수도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 백석담도(白石潭圖)

속초신흥사부도군
(束草神興寺浮屠群) 홍정명지석(洪廷命誌石)
문화재자료 제115호 시도유형문화재 제241호
(속초시) (진천군)


도산서원도(陶山書院圖)
ㅡ보물 제522호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그의 문집인 《표암유고》를 영인, 출판하였다.

*찬기문 보기 ㅡ>표암 강세황

*찬기문 보기 ㅡ>표암공(豹庵公) 휘 세황(世晃).

참고문헌:朝鮮王朝實錄, 豹菴遺稿, 經山集, 警修堂全藁, 海巖稿,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姜豹菴(崔淳雨, 考古美術 110, 1971)
豹菴姜世晃의 山水畵硏究(裵貞龍, 考古美術 138·139, 1978)
豹菴姜世晃의 繪畵硏究(邊英燮,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86). 〈邊英燮〉

配位:정경부인 진주류씨
父:진사 내(來)
祖:판서 명현(命賢)

配位:정경부인 나주나씨

tag·,서예,그림,삼절,강세황,진주강씨,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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