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3상회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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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스크바 삼상회의는 어떤 회의인가?

1945년 12월 16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 소, 영 삼상회의에서 조선문제가 결정되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사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 내 각 계층의 모든 민주세력이 참여하는 임시 조선 민주주의정부를 수립할 것
둘째, 임시정부와의 협의 하에 최고 5년간의 4개국(미, 소, 중, 영)에 의한 후견제 실시여부를 결정할 것.
셋째. 후견 기간에는 전적으로 조선인이 임시정부를 통해 스스로 통치할 수 있게 할 것.
넷째, 조선 문제 해결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를 설립하고 조속히 논의할 것.


2.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소 대표는 무슨 주장을 했나

미국 : 조선 반도에 대한 50년 신탁통치 제안
소련 : 조선 민족이 자주독립 역량이 충분하므로 신탁통치 반대

이러한 사정이 작용하여 신탁통치 기간은 30년, 10년 나중에는 5년까지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이 아닌 모든 주권을 조선민중에게 주고 연합국은 후견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피력

결과적으로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5년간의 후견기간’을 조선 임시정부와 ‘협의하여 결정하자’는 것이다.



3.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사항이 ‘신탁통치’인 것으로 왜곡된 과정

미군정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정이 나자, 악의적으로 모스크바 삼상회의를 왜곡, 은폐시켜 심각한 조선의 국론분열을 조장시켰고 이를 통해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사항을 무산시키고자 하였다.
미군정은 이승만, 김구, 동아일보를 비롯한 친미언론 등에게 마치 소련이 신탁통치안을 주장한 것처럼 거짓정보를 흘리고, 이들에게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투쟁을 사주하였다.

미국에 우호적인 남조선의 언론들은 한결같이 ‘모스크바 삼상회의는 소련의 주장에 의해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날조기사들을 싣기 시작했다.

해방된 직후에 접하게 된 소위 신탁통치 결정 소식에 온 민족은 혼란에 빠졌고 ‘외세에 의한 신탁통치를 반대한다’고 주장하며 소련을 반대하는 ‘반소반탁’궐기대회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욱이 명망있는 독립운동가인 김구, 김규식이 ‘반소반탁’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면서 민심은 크게 동요하였다.

이후 미국의 은폐, 왜곡사실이 공개되고 각계의 운동진영에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사항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운동을 펼쳐졌다. 그러나 미국은 반소반탁운동을 통해 반소련, 반북조선, 반좌익 여론을 형성시키면서 친미수구세력들을 양산했고 이들의 조직적 규합을 도모하였다. 아울러 과거 친일세력들과 지주세력들이 힘을 더하면서 미국의 식민통치를 엄호해줄 수구집단은 더욱 커져갔다.
결국 이로 인해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진실과 찬탁반탁 논쟁은 왜곡된 채 전해지게 된다.


4. 사회주의, 민중진영이 애초에 반탁을 주장하다가 찬탁으로 돌아선 과정

처음 언론 등을 통해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5년 동안 신탁통치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온 민족은 상당한 혼란에 빠졌다. 5년간의 신탁통치는 조선민족의 자치역량을 무시하는 행위로 모두가 신탁통치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 당의 계통을 통해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문 원본을 받아 본 사회주의자들은 ‘연합군은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명시된 것을 보고 사태판단을 하게 된다.
즉, 우익이 3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것이 명백히 미군정의 지배를 연장하려는 음모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다음날 우익들은 서울에서 5만 명을 동원하여 소위 반탁집회라는 이름으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민중진영은 같은 시간에 50만 명이 모여 모스크바 3상회의를 지지하는 집회를 조직했다.


5. 모스크바 삼상회의 관련 논쟁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나.

(미소 공동위원회 완전 결렬, 남조선만의 단독 선거)

1946년 3월 20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사항인 조선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시작되었다.

미소공동위원회는 두 번에 걸쳐 회의를 열고 조선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논의를 진척시켰으나, 미 국무장관 대리 로버트가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완전히 뒤집는 ‘유엔감시하의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조선 총선거’를 주장하면서 그동안의 논의는 모두 허사로 돌아갔고 미소 공동위원회는 완전히 결렬되었으며, 이와 함께 조선민족의 통일독립국가건설도 어떠한 단초도 없이 무산되고 말았다.

50년간의 신탁통치를 제안했던 미국은 애당초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사항을 집행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미국은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해 시간을 끌며 미소대립, 남북대립, 좌우대립을 인위적으로 조장하여 조선의 영구분단을 꾀했던 것이었다. 이후 미국은 북조선을 배제한 ‘유엔감시하의 남조선만의 총선거’를 적극 추진하였고 이후 유엔에서 미국 측 나라들로 구성된 유엔조선임시위원회를 조작하고 남조선만의 단독선거를 실시하여 남조선영구분할책동을 실천에 옮겼다.

tag·모스크바,3상회의의,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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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냥
2012.11.26 19:58共感(0)  |  お届け
좋은 동영상 이네용^^삭제
옌쭌윤맘
2011.12.07 17:44共感(0)  |  お届け
^^bbbbbbb삭제
qh
2010.09.08 09:39共感(0)  |  お届け
모순
그런다고 신탁을 찬성?
상식적으로 통일을 한다면
우선 좌우익의 합의가 있어야지.
박헌영도 할말없는 아이
그 뒤 팽당했지만

우선 소련이 김일성을 내세운 것 이유는 ?

그것이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삭제
아 뭐하는 거야
2008.11.13 04:10共感(0)  |  お届け
정말 정말 감사해요~삭제
구원천사
2008.03.15 05:04共感(0)  |  お届け
근대사을 알자.삭제
김보람
2007.06.29 12:43共感(0)  |  お届け
드디어 제가찾던 내용을 찾았습니다..ㅠ.ㅠ감사해요삭제
2006.12.11 11:02共感(0)  |  お届け
좋은자료 정말 감사합니다.삭제
장호원
2006.12.07 10:36共感(0)  |  お届け
80년대 후반 격동기 한 시민단체에 가담하여 초청강사를 통해 학습받았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당시 모스크바 3상회의가 그때까지 배웠던것과는 정반대였다는 사실을 접하고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심한 혼란에 빠지기도 했었죠. 이제서야 비로서 그 진실이 만 천하에 드러나니 감회가 깊군요. 좋은영상물을 제작하신분들 이곳에 공개해 주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삭제
노아야
2006.12.07 07:42共感(0)  |  お届け
감사합니다.^^;;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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