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도스

2008-08-13 アップロード · 9,150 視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기독교 성지인 파티마 대성당을 가는 도중, 대서양 변에 아주 작은 성곽마을, 오비도스가 있다. 우리나라 수원의 ‘화성’보다는 작지만, 성곽은 돌로 쌓아 단단하다는 것은 비슷하다. 규모 면에서는 우리나라의 ‘낙안읍성’과 비슷하다.

오비도스의 원래 이름은 '보로우(Borough)'였다면서 기원전 308년경, 겔트족이 성벽을 쌓아서 자신들을 보호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가장 널리 알려진 이곳의 역사는 12세기부터 시작된다.

‘보로우(오비도스)’는 게르만(고트족)과 무어인(아랍인)의 침략을 받아 그들의 지배를 받았으나 12세기 ‘곤살로 멘데스 다마이아'장군이 이곳을 정복한 후 아랍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그 후에 ‘오비도스’는 귀족들이 거주하는 마을로 성역화 되었는데 1228년 ‘디니스’왕이 이곳을 방문한 후, 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의 왕비, 이사벨에게 이 마을을 결혼선물로 기증한다.

그래서 이곳은 그 후 약 6백 여 년 동안 이사벨 왕비와 관계를 맺게 되어 1834년까지, '왕비의 집'으로 불렸다. 그리고 1441년에는 국왕 ‘아폰소 5세‘가 왕자 시절에 사촌이었던 8살의 이사벨과 이곳 ‘산타마리아’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산타마리아’ 교회는 아직도 이곳에 건재해 있다.

그러나 1775년 포르투갈에 대지진이 일어나, 이곳의 많은 건축물이 파괴되었다. 그 중에서 산티아고 교회나 상페르도 교회, 바르티칸 탑 등과 성벽의 서쪽 일부는 오비도스의 백작들의 요구에 의해 다시 재건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성벽에 올라서서 마을을 내려 다 보면 중세기(中世紀) 속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마을의 좁고 오밀조밀한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더욱더 그러하다. 골목 쪽으로 면하고 있는 집들은 대부분이 기념품 가게나 수공예품 등을 파는 상점으로 변해있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우리나라의 ‘낙안읍성’을 비롯한 몇몇 읍성들과 제주도의 민속마을, 안동의 하회마을 등도 한국의 전통미를 잘 살려 깨끗하게 정비하고 관광객의 휴식공간과 볼거리 문화광장, 카페 등을 아담하게 꾸며 놓는다면 외국의 관광객들이 이 ‘오비도스’보다 더 많이 오지 않을까.


실버넷뉴스 김진홍 기자 yacho44@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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