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야시장

2008-09-23 アップロード · 959 視聴

중국의 실크로드를 여행하려면 거대한 오아시스 도시인 둔황(敦煌)의 야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필수코스다. 우리나라 서울의 인사동 골목을 연상케 하는 골목시장이지만 인사동보다 더 넓고 거래되는 물건도 다양하다.

여러 가지의 과일도 팔고, 양고기 즉석구이 등 먹을거리도 팔면서 음료수, 맥주 외에 간단한 술도 판다. 주로 해가 지고 나서부터 손님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야시장이라고 한다는데 먹을거리를 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의자와 탁자들을 죽 늘어놓은 것은 우리나라 재래시장을 연상케 한다.

숯불에 구어 내는 양고기 산적(散炙; 꼬치구이)은 고기재료만 틀릴 뿐 우리나라 포장마차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닭고기, 돼지고기 꼬치구이와 비슷하여 낯설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생김새도 만주지방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어디서 본 듯한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신장위구르(新彊維吾爾) 자치구의 성도(省都)인 우루무치(烏魯木齊)가 톈산(天山)산맥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면 간쑤성(甘肅省)에 속해있는 이 둔황(敦煌)은 김(金)씨의 고향이라는 아얼진(阿爾金)산맥과 치렌(祁連)산맥의 정기를 받아 고대로부터 월씨족(月支族), 흉노, 돌궐족 등이 엔지산(燕支山)을 의지하여 살아왔다.

중국의 한족(漢族)은 그들 이외의 민족을 오랑캐라고 하여 이름도 험악하게 흉노족이니 동이족이니 라고 불렀으나 사실 북방민족은 모두 우랄 알타이어를 사용하는 몽골리안들 로서 고조선의 후예들이다. 따라서 만주, 몽골, 둔황 등지에서 우리와 닮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여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옛날에는 중국의 장안에서 동 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장삿길을 한번 다녀오려면, 꼬박 25년이라고 하는 너무나 긴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때문에 신라의 혜초나 중국의 현장법사는 서역을 한번 다녀오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구간교역(區間交易)이다.

중국의 장안을 출발하여 란저우(蘭州)를 지나 고비사막을 몇 년씩 여행하여 위먼관(玉門關)을 지나면 둔황(敦煌)에 도착하는데, 여기까지 온 중국의 대상(隊商)들은 가지고 온 비단과 생사(生絲)를 이곳에서 서양의 유리공예품 등의 물건들과 교환하여 중국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이곳 둔황은 자연스럽게 첫 번째 구간무역(區間貿易)의 중심지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숙박, 직조(織造), 문물교환시장 등을 중심으로 문화가 발달하였다 고 하여 기원전 2세기, 고조선을 멸망시켰던 한무제(漢武帝;BC156~87)가 장건(張騫)을 앞세워 이곳 둔황(敦煌)을 정벌하기 이전(以前)인, 중국 진시황 시절에도, 둔황은 중국에 버금가는 도시국가로 번성 하였었다.


실버넷뉴스 김진홍 기자 yacho44@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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