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세르비아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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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 평온 되찾았지만 언제든 폭발 가능성
일부선 코소보 양보, EU 가입 실리론도

(베오그라드=연합뉴스) 권혁창 특파원 = 23일 저녁(현지시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번화가인 크네즈 미하일 거리는 평온했다. 평소처럼 젊은이들로 넘쳐났고 상점들도 환하게 불을 밝혔다.

코소보 독립선언에 반발한 30만명의 성난 군중이 반미 구호를 외치고 미국 대사관이 화염에 휩싸였던 이틀 전의 격동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지고 거리는 다시 일상의 소란스러움이 넘쳐났다.

시위대의 타깃이 됐던 맥도널드가 다시 문을 열었고, 이달 초 폭발 사고가 난 뒤 폐점됐던 슬로베니아계 양판점인 메르카토르도 영업을 재개했다.

그러나 거리에서 베오그라드 시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57세의 여성 외판원인 릴랴나 밀로예비치는 "코소보 독립은 부당하다. 미국은 아무리 불공평한 일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밀어붙이려 한다"며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그녀는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군소리 없이 양보하기에는 때가 늦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참전했다는 회사원 미초 부르코비치(36)는 "코소보는 1389년 세르비아인 10만명이 전사한 곳이다. 미국 역사보다도 훨씬 오래된 세르비아의 성지 코소보를 어떻게 쉽게 떼줄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부르코비치는 기자의 국적을 묻더니 한국이라는 대답에 "당신은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싸우다가 수많은 한국인이 전사하고 그들의 유해가 묻힌 땅을 함부로 내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청년은 "폭력 시위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어쨌든 코소보는 포기할 수 없다"며 다시 시위가 열리면 당연히 참가할 것이라고 했다.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은 듯 했지만 정작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코소보 문제에 있어서 만큼 세르비아는 전 국민이 한치의 이견도 없이 똘똘 뭉친 듯 했다.

세르비아는 옛 유고 연방 붕괴 이후 보스니아 내전(1992-1995)과 코소보 내전(1998-1999)을 치렀다. 미국의 경제 제재와 78일간에 걸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폭격도 감당했고 이후에는 유럽 최저 수준의 빈곤에 시달려왔다.

세르비아는 그래서 유럽연합(EU) 가입을 갈망하고 있다. EU의 일원이 되는 것 만이 소외와 고립을 딛고 피폐한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소보 만큼은 어떤 시련 속에서도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신념 만큼은 더 이상 변질되지 않는 신화처럼 굳어져 버린 듯 했다.

유럽연합(EU) 가입과 코소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시민들은 당연히 코소보라고 대답하거나 "답하기 곤란한 문제"라고 말했다.

아무도 코소보 대신 EU를 택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올리베라라고 소개한 한 젊은 여성은 코소보 문제에 대해선 즉답을 피한 채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며 EU 가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코소보 떼주고 EU 가입해서 편하게 살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꽤 많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이런 생각을 감히 공개적으로 내세우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이 세르비아인들을 이토록 EU 가입마저 돌려세울 정도로, 민족주의적 사명감에 불타게 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역사와 자존심을 얘기한다 .

중세 세르비아 왕국은 1398년 코소보 폴예 전투에서 오스만 터키 대군에 맞서 싸웠다. 거의 모든 병사가 장렬히 전사하며 대패했지만 이 전투를 계기로 세르비아는 터키 제국의 유럽 원정을 상당 기간 위축시켰다.

이 전투에 라자르 왕자도 참가해 전사했으며, 이를 기려 세르비아는 후일 이 곳에 많은 사원과 유적을 남겼다. 그라차니차와 데차니에 있는 정교회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세르비아 학생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런 코소보를 세르비아 민족과 종교의 성지이자, 요람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받아왔다.

정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르비아 역사의 요람 코소보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그런 코소보를 양보한다는 것은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며,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친 서방 성향의 보리스 타디치 대통령마저도 코소보에 대해선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총리가 지난 21일 시위에 앞서 세르비아의 역사를 강조하면서 시위대의 애국심에 불을 지핀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또 한가지 이들이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자존심이다. 일부 관측통들은 코소보 독립 선언 이전에 서방 측이 EU 가입, 경제 지원, 전범 처리 문제 등을 제시하며 타협을 계속했다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런데 미국과 EU는 세르비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방적으로 코소보의 손을 들어줘 세르비아인들의 자존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물론 전쟁이나 대규모 무력 충돌의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그럴 정도로 무모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든 코소보 독립선언을 무력화하기 위한 긴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세르비아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부르코비치는 "외교적 노력은 물론 시민들 차원에서는 미국이나 슬로베니아 기업들의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소보 전투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선 죽음도 불사한다"는 그의 말에서 코소보 문제가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앞섰다.

미 대사관이 불탄 이튿날 아침 세르비아 일간 베체르네 노비스티의 헤드라인은 맹세(Vow)였다. 코소보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국민적 약속인 셈이다.
fait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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