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제2의 코소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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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내전 뒤 인종 갈등 표면상으론 봉합
마케도니아인, 알바니아계 인구 증가 우려

(스코페=연합뉴스) 권혁창 특파원 =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한 이후 이웃한 마케도니아가 시선을 끌고 있다. 알바니아인들이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마케도니아는 언젠가 제2의 코소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물론 마케도니아는 코소보와 여러 가지 면에서 사정이 다르다. 하지만 2001년 일어난 내전의 상처가 지워지지 않은 채 알바니아인들의 가슴에 `대(大) 알바니아주의가 살아있는 이상 마케도니아는 분리 위험 지역임에 틀림없다.
스코페에서 만난 많은 알바니아인들은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같은 민족끼리 한 나라를 이루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심을 감추지 않았다.
마케도니아 소수민족 갈등은 어떻게 시작됐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 마케도니아 내전의 역사
마케도니아 역시 코소보와 마찬가지로 15세기 이후 오스만 터키의 발칸 지배로부터 알바니아인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현재 마케도니아 영토에서 마케도니아인들은 주로 중부와 동부에, 알바니아인들은 북서부에 거주하고 있다. 200여만 명의 마케도니아 인구 중 알바니아인들은 40만명 정도.
마케도니아의 민족 분쟁도 1990년 옛 유고 연방의 분열과 함께 시작된다.
마케도니아 내 알바니아인들은 1991년 9월 정부가 유고 연방으로부터 마케도니아의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자 이를 거부하고 1992년 1월 서부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자치권 수립 결정을 국민투표를 통해 가결시켰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알바니아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하고 서부 지역의 자치권을 보장해달라는 알바니아계 정당의 요구 역시 국가 존립을 이유로 묵살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반군 단체인 민족해방군(NAL)이 결성됐고 NLA는 1998년 마케도니아 경찰서와 법원을 겨냥한 연쇄 폭탄테러를 일으켰다.
이듬해 코소보 내전을 피해 36만명에 달하는 알바니아계가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로 피난하면서, 알바니아인들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NLA는 2001년 1월 테토보 인근에서 로켓 공격을 감행했고, 급기야 3월에는 테토보를 수도로 선포하고 정부군을 공격, 본격적인 내전에 돌입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마케도니아 내전이 확산될 경우 발칸반도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주변 국가들까지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 내전 초기부터 정부군의 진압을 적극 지원했다.
휴전과 교전 재개가 반복된 끝에 2001년 7월5일 마케도니아 정부군과 알바니아 반군은 서부 지역의 자치권 논의와 알바니아계 반군의 무장 해제라는 국제사회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내전은 종식됐다.
◇ 민족 갈등 표면상으로 봉합
마케도니아는 내전 종식과 함께 체결한 평화협정으로 일단 표면상으로는 양 민족 간 화해의 틀을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일단 국회에서 소수 민족의 대표성을 보장하고 각 민족 간 구성 비율이 행정부에 그대로 반영되도록 해 권력 분점을 실현했다. 현재 정부 각료 중 3분의 1은 알바니아계이고, 국회의원 중 4분의 1은 소수 민족 대표다.
이비차 보체프스키 마케도니아 정부 대변인은 "마케도니아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들은 누구나 문화적, 사회적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며 다민족 사회를 위한 프로그램이 원활히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누누이 코소보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이제 마케도니아의 인종 갈등은 없다고 말한다.
보체프스키 대변인은 코소보 독립 문제에 대해서는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코소보 특사의 방안을 지지한다"고 까지 말했다. 소수 민족 문제로 내전까지 겪은 국가의 정부로선 전혀 뜻밖의 반응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는 아티사리 플랜에 대한 지지가 코소보 독립에 대한 지지와는 다르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정부의 공식 입장은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마케도니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미국은 발칸 반도에서 마케도니아가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2001년 내전이 발발하자 정부군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내전 종식을 이끌어냈고 지금도 각종 정치.경제적 지원으로 마케도니아를 완전한 친미 국가로 설정해 놓고 있다.
미국이 코소보에서와는 달리 마케도니아에서는 정부 측을 지원한 것은 대(大) 알바니아주의에 대한 견제와 마케도니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제2의 코소보 될까
마케도니아에 살고 있는 마케도니아인들과 알바니아인들의 실제 생각은 어떨까.
수도 스코페의 알바니아인 거주 지역을 들어서자 갑자기 주변 풍경이 달라진다.
십자가 대신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 눈에 들어오고 길거리에는 히잡(이슬람 전통스카프)을 쓴 여자들이 길거리에 넘쳐난다.
전체적으로 하층민이 많은 알바니아인들의 거주 지역에서는 마케도니아인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뒤섞여 살고 있지만 물과 기름처럼 따로 돌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마케도니아 제1의 국립대인 키릴과 메토디우스 대학에는 알바니아인이 3-4%에 불과하며, 알바니아인들이 다니는 대학은 따로 있다고 한다.
학생들은 "그래도 이 대학에 다니는 알바니아인 매우 잘 교육받은 학생들로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알바니아인들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않고 문제도 많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거리에서 만난 많은 마케도니아인들은 코소보 문제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다. 기껏해야 "코소보 독립이 마케도니아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정도다.
코소보 독립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거나 대 알바니아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전혀 밝히려 하지 않았다.
알바니아인들은 한결같이 코소보 독립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마케도니아가 똑같은 길을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중 일부는 아주 분명히 강조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같은 알바니아인들끼리 모여 살기를 원한다고.
알바니아인 메디(53.상인)는 "코소보 독립은 밀로셰비치가 빼앗은 자치권을 돌려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마케도니아는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한 뒤 "나중에는 같은 민족끼리 함께 살면 좋겠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키릴과 메토디우스 대학 역사학과의 비올레타 아치코시카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아치코시카 교수의 발언은 많은 마케도니아인들의 숨겨진 생각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녀는 "마케도니아인들이 자식을 많아야 1-2명 갖는데 비해 알바니아인들은 5-6명씩 낳는다. 당장은 민족 간 화합이 이뤄지겠지만 알바니아인들의 인구 비율이 높아지면 상황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비올레타 교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알바니아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거대한 알바니아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이어 알바니아인들은 마케도니아에서도 서쪽 지방을 자기 민족의 영토로 만들고 싶어한다며, 알바니아계가 장악한 코소보의 독립은 사실 마케도니아인에게는 매우 걱정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fait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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