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희생자 유해 발굴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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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개토제..2009년까지 11곳 발굴

(제주=연합뉴스) 김승범 기자 = "4.3사건 당시 불귀의 객이 되신 영혼들에게 삼태기만한 봉분 하나 마련해 드리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가슴을 후빕니다…"
해방공간에서 좌우 이념대립으로 촉발된 제주4.3사건이란 광풍속에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총살, 암매장된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이 7일 제주시 화북1동 속칭 가릿당 동산 동녘밭에서 개토제(開土祭)를 시작으로 본격 개시됐다.
김두연 4.3사건 희생자 유족회장 등 유족과 고충석 제주대 총장 등 도내 각급 기관장, 고희범 4.3연구소 이사장 등 관련 단체 관계자, 주민 등 2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날 개토제는 60년이 다되도록 해원되지 못한 4.3영령들을 추모하는 유교식 제례로 엄숙하게 진행됐다.
김한욱 부지사는 주제사를 통해 "집단 매장지 유해발굴은 엄토(掩土) 감장(勘葬)도 제대로 못한 구천의 넋들을 안장시켜 편안한 영면을 도모하고, 이 땅에서 모든 원한의 줄기를 걷어내고 결 고운 흙위에 새 새명의 씨앗을 뿌리기 위한 것"이라며 "오늘을 필두로 제주의 곳곳에 산재해 있는 매장지를 발굴해 희생자의 신원과 유족들의 해원이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첫 삽을 뜨는 가릿당 동산 동녘밭은 당시 상황을 목격한 안명호(73.제주시 화북동)씨의 증언에 따르면 4.3사건 발발 이듬해인 1949년 초 군트럭으로 실여온 서촌사람 30여명이 30여평의 구덩이 앞에서 군인들에 의해 총살돼 매몰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중윤(79.〃) 할머니는 "4월께 행방 불명된 남편을 찾기위해 가릿당 동산으로 갔더니 한림에서 온 남자 7∼8명이 삽으로 시신들을 들춰내며 친인척들을 찾고 있었다"며 "시신들은 손발이 묶여 있었고, 갈중이(갈옷) 입은 사람과 국방색 무명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사방에 뒤엉켜 있었다"고 증언했다.
제주도는 올해부터 2009년까지 국비 43억원을 들여 가릿당동산과 별도봉 진지동굴, 동제원 입구, 고우니모루 저수지, 화북천 등 화북동 5개소와 제주공항내 2개소 등 모두 11개소에서 950여구로 추정되는 4.3사건 희생자 암매장 유해를 발굴할 계획이다.
발굴한 유골들은 제주대 예방의학교실, 서울대 인류학과 등의 도움을 받아 DNA검사 및 유전자 분석, 유가족 가계도 조사 등을 통해 유족을 확인, 인도된다.
유해발굴단장인 유철인 제주대 교수는 "이번 유해발굴은 국비 지원을 받아 제주도가 시행하는 첫 사업으로, 4.3위원회가 지난 2003년 4.3진상보고서를 채택하며 정부에 건의한 7대 사항중 하나였다"며 "4.3의 실체를 추적, 땅속 깊이 방치돼 있는 역사의 진실을 양지로 끄집어내 과학적 방법을 통해 폭력의 실태를 드러내고 피해자의 신원을 규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ksb@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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