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쇄신안 파격..제3창업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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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삼성이 22일 파격적인 경영쇄신 카드를 내놓음으로써 제3창업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이자 출발점에 섰다.
이병철 선대 회장으로부터 대권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이 1988년 취임 1주년을 맞아 제2창업을 선언한 이후 20년만에, 그에 버금가는 삼성의 터닝 포인트를 예고한 쇄신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삼성 오너경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회장이 1987년 선대 회장에게서 대권을 물려받는 지 20여년만에 회장직을 내놓는 단안을 내렸고, 그룹 컨트롤타워로 역할한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기로 했다. 이것은 일단 외견상 이 회장의 퇴진 불가와 개편 수준의 전략기획실 수술을 점친 안팎의 예측을 훌쩍 뛰어넘는 강도높은 처방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삼성은 또 이 회장의 조세포탈에 연루된 차명계좌를 공익 사용으로 돌리겠다는 입장과 함께 은행업 진출 포기, 순환출자 고리 해소라는 진일보한 쇄신안으로 여론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다.
◇ 이 회장과 전략기획실 없는 경영체제 어떻게 되나 = 이 회장의 퇴진은 삼성의 시종(始終)을 관통하는 중추가 사라짐을 의미한다는 게 삼성맨들의 진단이다. 선장을 잃은 거대 항공모함의 순조로운 항해에 대한 우려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룹 단위의 장기 경영비전과 계열사간 중복사업 방지, 대규모 투자 조율, 사업구조 조정, 자원 배분, 인사 등을 맡아온 전략기획실을 없애기로 한 것도 1급 항해사를 잃은 데 비유하고 있는 게 현재 삼성의 상황이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 핵심 경쟁력으로 분석되던 회장-전략기획실-각 계열사 CEO라는 이른바 삼각편대 경영이 불가능해지고 소유 경영의 최대 강점으로 손꼽히던 스피드 경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삼성 내부에서는 삼성 브랜드의 해외 신인도 하락, IOC 위원인 이 회장의 행보 차질로 인한 스포츠 외교 불안 등 대외적인 삼성 영향력 약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일단 각 계열사의 독자 경영역량이 확보돼있고, 사회적으로도 그룹 경영체제에 대해 일부 이견이 있는 점을 감안해 전략기획실을 없앴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앞으로 각 계열사 CEO 등으로 구성되는 사장단협의회를 가동하기로 했다.
사장단협의회가 사실상 전략기획실 역할을 대행하는 그림이다. 나아가 대외적으로 삼성 회장 역할을 맡을 인사로는 이수빈(69) 삼성생명 회장이 지명됐다. 그러나 이수빈 회장은 말 그대로 삼성그룹의 얼굴을 대신하는 정도의 무게이지 이건희 회장의 카리스마를 대체하는 수준이 될 수는 없을 전망이다.
사장단협의회 아래에는 사장단회의를 실무 지원하고 대외적으로 삼성그룹의 창구와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정 서비스를 전담하는 업무지원실을 임원 2-3명 정도의 소규모 조직으로 설치키로 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향후 계열사별 독자경영체제를 기본으로 하되 계열사간 업무조정 등 필요한 현안에 대한 협의 창구 등으로 사장단협의회를 가동하는 것으로 소위 집단협의.지도 경영체제의 틀을 꾸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이 "원래 삼성 계열사 경영진은 전문경영인이지만 그룹의 총괄적인 전략 수립을 위해 이 회장이나 전략기획실이 존재했던 것인데 이로 인해 그동안 각사 CEO나 임원들이 전문경영인으로 비치지 않았을 수 있겠다"면서 "이 회장이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면 각사별로 전문경영인에 의해 독자적인 경영체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 경영체제 변화의 외양과 내면 = 그러나 업계에서는 그동안에도 이 회장이 경영전면에 서서 칼자루를 쥐고 진두지휘하는 장수형 오너경영자 스타일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외견상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경영시스템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지 않는 시각도 엄존한다.
사장단협의회가 가동되지만 어느 한 두명의 인물에 의해 그룹의 의사결정과 지배력이 좌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영향력이 지금과 180도 달리 크게 약화될 것으로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의 대규모 신사업 진출이나 주요 투자결정, 계열사 정리 등 삼성의 굵직한 현안을 다룰 때 최대 오너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면서 "일상적인 경영시스템이나 스타일은 크게 변모하겠지만 그런 골간이 전면적으로 한꺼번에 바뀌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특검 수사결과 전략기획실의 어두운 면이 드러났고, 이에 대해 삼성은 큰 아픔을 참아내며 환부를 도려냄으로써 투명경영과 그룹 차원의 간섭경영, 선단식 일방형 경영체제를 혁신할 수 있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 경영권 상속.승계와 지배구조 구도는 =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로의 경영권 이양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현재까지의 대체적인 기류다.
일단 이 회장이 물러나는 모양새에 맞춰 이 전무 역시 삼성전자 고객총괄채임자(CCO) 자리를 내놓고 해외사업장 투어에 나서는 것으로 정리했지만 특검 정국을 전후로 삼성의 여러 문제들이 풀리고, 특히 특검 수사결과 기소된 이 회장의 재판을 매듭짓는 등의 걸림돌이 제거된다면 적절한 시간이 흐른 뒤 이 전무의 컴백을 예상하는 시각이 많은 편이다.
삼성은 특히 이날 쇄신안에서 지주회사 전환에는 20조원 가량의 돈이 들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문제점을 내세우면서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시간을 두고 검토해야할 사안으로 정리하는 한편 순환출자의 핵심고리 가운데 하나인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보유주식(25.64%)을 4-5년내 매각하는 수순을 밟겠다고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 주식 매각은 작년 8월 개정된 금산법 규정을 의무적으로 이행하는 수순이다. 개정 금산법은 금융회사가 취득한 동일 기업집단내 비(非)금융 계열사 주식 가운데 5% 초과분에 대해 1997년 3월 이전 취득분은 2년 유예뒤 의결권을 제한하고, 그 이후 취득분은 즉각 의결권 제한과 함께 5년내 자발적으로 매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금산분리 정책 변경 등에 맞물려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삼성은 이 외에도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23% 중 5%를 초과한 2.3%분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의결권이 제한된다.
그 방안 외에 이 전무로의 경영권 이양 이슈에 대한 삼성의 솔루션은 이번 쇄신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회장은 이 전무가 백의종군한 뒤 글로벌 삼성의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삼성 경영체제와 시스템이 안착되는 과정을 거쳐 떳떳하게 낼 세금을 다 내면서 사실상의 오너경영 대권을 물려줄 공산이 클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이병철 전 회장이 별세한 뒤 삼성이 1995년 이른바 미국 로스앤젤레스 가족회의를 거쳐 지금의 삼성, 그리고 옛 제일제당.안국화재, 제일합섬.새한미디어, 전주제지.고려병원, 신세계 등으로 그룹의 가족분할을 시도한 것처럼 전자.금융계열은 이 전무, 호텔.화학은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 패션.의류는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 등 이 회장의 1남2녀에게 할당되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기도 한다.
◇ 비은행 금융업 확장 꾀한다 = 삼성은 이날 쇄신안에서 삼성생명, 증권, 화재 등 금융사에 대해서는 경영투명성을 높이고 정도경영, 윤리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은행업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으면서 "오직 금융사들의 경영을 더욱 튼튼하게 다져서 일류기업으로 키우는데 매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은 나아가 "사외이사들은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삼성과 직무상으로 연관있는 인사들은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과거 정권이 앞세운 금산분리 정책과의 결별 수순으로 가는 마당에 삼성에 쏠려온 은행업 진출 의혹을 차단하고 비은행 금융업 육성에 주력하겠다는 선언에 다름아닌 대목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재용 전무 →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삼성카드, 삼성물산) → 에버랜드로 이어지는 환상형 출자 구조에서 핵심고리 중 하나인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주식을 4-5년내 매각하기로 한 것은 차후 그룹 계열분리나 지주회사 전환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기 위한 예비수순으로 해석된다.
삼성은 그러나 지주회사 전환에는 20조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는 점을 들어 "현실적으로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고 앞으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고 말해 그룹 계열분리나 지주회사 전환 등은 중.장기 과제로 정리되면서 적지않은 기간 과도기적 상황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삼성 오너가족 동반 후퇴 = 이번 쇄신안은 이 회장의 퇴진에 더해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사임, 아들 이재용 전무의 고객총괄책임자(CCO) 사임 등 오너일가의 동반 퇴장을 담았다는 점에서 삼성 임직원들에게는 오너가족의 수난으로 비쳐지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의 이번 쇄신안이 그동안 각계에서 제기돼온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기 위해 여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다보니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면서 "삼성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과연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경제 살리기를 해낼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은 쇄신안 자료 말미에 "오늘 발표한 것으로 삼성의 쇄신이 완성됐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단지 시작일뿐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고칠 것이 있으면 적극 고쳐나가겠다"며 삼성의 이번 쇄신노력의 진정성을 헤아려 줄 것을 당부했다.
uni@yna.co.kr

편집 : 전수일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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