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벨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

2008-05-13 アップロード · 156 視聴

"작가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 포착해야"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터키의 오르한 파묵이 2005년 방한이후 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아왔다.

파묵은 12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소설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경계, 금기를 허물고 싶다"며 "작가는 그러한 금기를 비롯해 보통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을 포착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오기 전 막 탈고한 소설 순수박물관과 이번에 국내에서 출간된 에세이 이스탄불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이날 통역은 파묵의 책들을 국내에 번역.소개한 이난아 씨가 맡았다.

다음은 파묵과의 일문일답.

--3년 만에 방문인데.
▲한국에 다시 오게 돼서 매우 기쁘다. 한국과 터키는 많은 점이 닮아있다. 이모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여서 어릴 때부터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은 국제출판협회(IPA) 서울총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최근 출간된 이스탄불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은 스물두 살때까지의 자서전적 이야기이면서 이스탄불 도시 자체의 이야기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왜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도 제시하고 싶었다. 또 한편으로 작가가 된 사람이 젊은 시절 어떤 분노와 고민, 번뇌를 갖고 있었는지에 대한 수기이기도 한다.

--작품이 56개국에 번역돼 읽히고 있는데, 작품 속 어떤 요소가 언어의 경계를 뛰어넘고 많은 독자들에게 소통하게 한다고 생각하는가.
▲30살때 하얀 성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56개국에 번역되고 있지만 나라마다 많이 팔리는 작품은 다르다. 내 이름은 빨강은 한국과 중국에서, 이스탄불은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그리고 유럽과 미국에서는 눈이 많이 팔렸다. 아마도 눈이 미국에서 인기 있는 것은 미국이 이슬람주의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고 이스탄불이 스페인에서 호평 받은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겪는 어린 시절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이름은 빨강의 경우 한국과 중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예술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닐까 한다.

--IPA 기조연설에서 소설의 안과 밖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정치적인 의미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경계, 금기를 허물고자 했다. 사람들은 보통 우러나는 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무엇이 금기인지도 잘 모른다. 작가라는 직업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부문에 접근하는 것이다. 소설 쓸 때 항상 독자가 "아,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라는 반응을 보일 것을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오전 총회에서는 출입금지라는 글을 통해 우리 안의 금기를 우리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기능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전에 방문했던 2005년과 비교했을 때 스스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집 문 앞에 경찰들이 더 많아졌다. 터키의 비민주적인 정치에 대한 비평 때문에 테러 위협을 받으면서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그런 위협이 2005년 왔을 때보다 더 극심해졌다. 그 외에 많은 책들이 외국어로 번역되고 노벨상도 받았다. 또다른 변화는 3년 전 한국에 왔을 때는 내가 이스탄불에 살고 있었는데 지금 매년 가을 학기에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또 노벨상 받기 전부터 시작해 6년간 쓴 600페이지 분량의 소설 순수박물관을 탈고했다는 점이 최근 가장 큰 변화다. 보통 노벨상을 받으면 많은 작가들이 은퇴하는 분위기가 되는데 난 젊은 나이에 상을 받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고, 순수박물관을 쓰면서도 노벨상에 준하는 작품을 쓰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순수박물관에 대해 소개해달라.
▲1975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식 소설이다. 상류사회의 돈이 많은 남자가 먼 친척인 가난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기본 골격이다. 이스탄불 상ㆍ중류층 문화를 많이 다루고 있고, 특히 이들이 얼마나 서구화하기를 원하는 지를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화가가 되고 싶어했는데 소설가가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그 질문에는 한 가지로 대답할 수가 없다. 그 질문을 많은 세월에 걸쳐 곱씹어봤는데 이번에 이스탄불을 쓰면서 답을 알게 됐다.

15살 때 이스탄불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매우 행복했다. 그런 데 어느날 갑자기 그것이 싫어졌다. 마치 사랑하는 여자를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지 않게 됐는데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그림 그리는 기쁨 대신에 글 쓰는 기쁨을 갖게 됐는데 왜 그런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내 모든 소설을 읽어야 할텐데 그리고 나서도 아마 모를 것이다. (웃음)

--대부분의 작품이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닌데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쓸 생각은 없는가.
▲난 문학작품 쓸 때 보통 충동으로 쓴다. 순수박물관을 끝낸 이후 세 달 동안 긴 문장을 짧게 해볼까,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바꿔볼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은 내가 놓은 덫에 독자가 걸려들어서 복잡하고 신비스러운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번 읽으면 어렵지만 여러번 읽으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묘미가 있다.

에디터, 조교와 함께 순수박물관을 점검하면서 가령 30쪽에 등장한 물건이 570쪽에 다시 나오면 어떤 독자가 눈치채겠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다. 삶이라는 것이 내 책과 같다. 어릴 때 만난 사람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마주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음 작품은.
▲소설 끝내고 나서 주위에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 "아무것도 안 할거야"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전처와 딸은 "그게 얼마나 가나 보자. 보나마나 얼마 안 가 또 무엇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구상하는 것이 있지만 여기서는 밝히고 싶지 않다. 우선 지금은 하버드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소설예술에 대한 책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tag·인터뷰,노벨상,수상작가

非会員の場合は、名前/パスワードを入力してください。

書き込む
今日のアクセス
1,328
全体アクセス
15,963,943
チャンネル会員数
1,796

사회

リスト形式で表示 碁盤形式で表示

00:51

공유하기
내일의 날씨
9年前 · 11 視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