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촛불집회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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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완간 기념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소설가 이문열(60)씨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촛불집회에 대해 "본질은 위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말했다.
초한지(전10권.민음사 펴냄)의 완간에 맞춰 9일 귀국한 이씨는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내 한 음식점에서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촛불집회에 대한 견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결코 빈정대는 말이 아니다"라며 "침묵하는 다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침묵도 하나의 선택이다. 이것(촛불집회 참여자들의 뜻)을 민의(民意)라고 말할 때 거부감이 없다"고 덧붙였다.
초한지와 관련, 작가는 "초한지가 갖고 있는 코드가 낡고 반복됐다는 인상이 있어서 완간 간담회를 갖는다는 게 멋쩍기도 하다"며 "그러나 그동안 반복돼온 낡은 코드를 다시 반복한 것이 아니라 초한지라는 코드만 빌려 새로 창작했다"고 소개했다.
올초부터 출간돼 이번에 완간된 초한지는 기원전 3세기 중국의 진말한초(秦末漢初) 시대 천하의 패권을 겨룬 유방과 항우, 두 영웅을 중심으로 한 역사소설로, 작가는 사기를 원전으로 하고 자치통감과 한서를 보조자료로 삼아 기존에 알려진 초한지를 완전히 새로 썼다.
다음의 작가와의 일문일답.
--미국 생활은 어땠나.
▲당초 7월에 한번 한국에 들어오려고 하다가 완간에 맞춰 당겨서 왔다. 완전히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들어올 준비를 했고 10월 정도에 미국에서 완전히 철수할 계획이다.
이번에 오면서 2년반 동안의 미국 생활을 중간결산해봤는데 애초에 미국에 갈 때 하고 싶었던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별로 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밀렸던 작업이나 한 꼴이 났다.
10월에 들어오는 이유는 2005년에 떠날 때 너무 준비를 안했기 때문이다. 장기체류 준비가 안 된데다 집 수리 문제와 향후 부악문원 운영 문제 등 더이상 미루면 안될 것들이 생겼다.
다시 미국으로 가면 몇년이고 비워도 한국으로 끌려오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해놓고 갈 생각인데 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초한지를 소개한다면.
▲우리나라에 초한지라고 나오는 책들은 대개 명나라때 종신거사가 쓴 서한연의를 원전으로 한 것인데 가장 긴 것이라고 분량이 5권 정도 밖에 안 된데다 종산거사는 너무 많은 부분을 상상력과 창의력에만 의지하다보니 역사와 너무 동떨어진 부분이 많다.
보다 정사에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또 훨씬 더 재밌게 설명하고 부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조잡하게 된 부분이 있어서 새로 쓰게 됐다.
--촛불문화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가장 걱정했던 질문인데 막상 물으니 피할 수가 없다. 위대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본다. 결코 빈정대는 말이 아니다. 이를 부인하거나 이것을 민의라고 말할 때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 침묵하는 다수도 있겠지만 민의로 인정되게 방관하고 묵인한 것도 그들의 선택이고 동조다.
본질은 위대하고 한편으로는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이다. 되기 어려운 일을 되게 한 점에서는 위대하고, 또 정말 중요한 다른 문제에서도 이런 게 통하게 된다면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다.
--초한지의 항우와 유방에서 볼 수 있는 동양적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가.
▲항우, 유방의 리더십이라는 것이 그 시절에 인식하고 활용한 개인적인 리더십이었는지 후세 사람들이 그렇게 유형지어 분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리더십 유형에 대해 설명을 하려는 노력은 사기가 쓰인 시기부터 엿보인다.
흔히 역사의 승자의 것이라고들 하기 때문에 유방은 많이 미화됐고 항우는 폄하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유방은 엄청난 순발력과 임기응변이 강점으로 나오지 않고 탐욕스러운 시정잡배처럼 그려졌다.
원래 초한지를 쓰기 전에는 항우가 더 소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쓰면서 두 사람은 원래 처음부터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유방쪽으로 기울었다.
가령 항우에게 쫓겨 달아나던 유방이 수레가 무거워져 적에게 붙잡힐까봐 수레에 타고 있던 자식들을 밖으로 던지는 모습이 유방의 비정함, 파렴치한 욕망으로만 해석됐는데 나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자기를 살리기 위해 죽은 많은 장병들을 생각했기 때문이지 자신의 목숨 때문에 자식을 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일본작가 글을 보니 유방이 먹는 것에 집착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것도 대단한 편견이다. 사기에는 유방이 왜 광무산에서 그렇게 여러번 낭패를 당하면서도 땅을 잡고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나온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고, 제왕은 백성의 하늘이기 때문에 먹는 것은 곳 제왕에게는 하늘의 하늘이었고, 그래서 제왕은 하늘의 하늘이 있는 곳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통치자에게는 먹는 것이 하늘의 하늘이라는 것은 이번 쇠고기 사태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이번 사태는) 먹는 것의 문제는 아니고, 다른 문제라고 본다. 먹는 것이 하나의 빌미가 됐을 뿐이고 또다른 하나의 빌미는 감정적인 문제다.
--차기작 계획은.
▲전부터 구상했으나 아직 손을 안 댄 것이 있고 새로 쓰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할 지 고민 중이다. 전에 구상했던 것은 80년대 이야기인데 그것이 아직도 유효한 지에 대한 의문이 있고, 새로 쓰고 싶은 것은 이 시기에 그것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다.
초한지가 10권이나 되니 몇 달은 쉬어도 되지 않나.(웃음) 몇달 쉬면서 우선순위를 정하겠다.
중국 역사물은 이만하면 됐다 싶어 이제 안 했으면 하고 한국 역사물은 쓸 계획이 있다.
mihye@yna.co.kr

영상취재: 권동욱 기자, 편집: 김해연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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