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 올 줄은 꿈에도"..간첩혐의 무죄 강희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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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으로 간첩조작 무기징역..억울한 옥살이 12년

"경찰.검찰.법원 은연중 공모한 범죄행위"

(제주=연합뉴스) 홍동수 기자 = "정말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3년 만에 무죄라는 이 소식을 듣고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서슬이 시퍼렇던 5공 시절 간첩혐의(국가보안법 위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가석방될 때까지 12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강희철(49.제주시 조천읍)씨는 23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강씨는 "정말 저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생도 했고 많이 힘써주셨는데 우선 짧게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검찰의 재판 지연책으로) 재판이 진행되지 않을 때는 참 원망스러운 마음도 있었고, 그 과정들이 힘들었지만, 모든 것을 꾹 참고 힘써주신 모든 분들 덕분에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죄를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강씨는 "기대보다는,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며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다소 초조한 마음도 있었지만, 다행히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들에 대해 강씨는 수사기관의 고문이나 장기 투옥 등을 제치고 "주위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며 "(사건 때문에) 이혼하고, 아들이 할머니 밑에서 공부해야 했던 시절이 힘들었고,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했지만, 이제 참고 살아온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강씨에 대한 이날 재심사건 선고공판에는 변호인과 천주교 관계자, 이장형.강희철과 함께 하는 사람들 대표 등 그동안 강씨의 무죄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 참가해 각각 소감을 밝히며 강씨를 대변하기도 했다.

최병모 변호사는 "조작된 간첩 사건이 45-50건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강희철씨 사건의 경우 순수하게 피고인 측에서 재심을 청구하고 해결된 첫 사례가 될 것 같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조작 사건들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또 "간첩으로 의심될 만한 손톱 만큼의 증거도 없는 사건이고 오히려 반대 증거들이 곳곳에 널려있는 사건인데 경찰의 불법행위 뿐만 아니라 검찰, 법원이 은연중에 공모한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며 "무죄가 선고된 이상 형사보상은 당연한 것이고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청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제주도민들은 4.3사건 등으로 인해 일본에 친척들이 많고, 그로 인해 조작된 간첩의 10%가 제주도민일 만큼 도민들의 피해가 크다"고 지적한 뒤 "그래도 강씨는 이렇게 조명을 받을 수 있지만, 지금도 불안해서 연락도 못하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며 "우리 제주 사회가 더욱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빨리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천주교 제주교구사제단 임문철 신부는 "우리 사회가 그래도 정의는 살아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며 "우리 사법부가 그래도 정말 믿을 수 있구나 하는 확신과 신뢰를 심어줬다는 점에서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이장형.강희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성명을 통해 "제주출신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들 중 첫번째 진상규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며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바로잡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통일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모든 사건들의 진실이 반드시 규명되고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주교인권위 등은 또 "수구 언론들과 일부 보수단체들은 수백, 수천의 강희철들에게 사죄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일에 함께 나서는 것만이 군사독재정권 시절 정권과 함께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인 잘못을 참회할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재심사건 재판장인 박평균 부장판사는 판결문 낭독에 앞서 "수사기관의 불법 수사로 말미암아 억울하게 간첩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만 했던 피고인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오늘의 판결 선고가 피고인의 진정한 명예회복과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혀 무죄 선고를 미리 시사하기도 했다.

촬영 , 편집 = 오은정 VJ (제주취재본부)

dsh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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