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전범 한인생존자 46년만에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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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이학래씨 창원의 김석기씨 찾아

(창원=연합뉴스) 김영만 기자 = 일본 제국주의 치하때 강제로 징용돼 동남아시아에서 포로 감시원으로 복무했다가 전쟁 범죄인으로 낙인찍혀 억울한 옥살이를 한 B.C급 전범 한인생존자 노인 2명이 경남 창원에서 46년만에 만났다.

주인공은 전범 출신의 재일동포로 구성된 `동진회(同進會) 회장인 이학래(83.일본 도쿄 거주)씨와 창원시 신촌동에 사는 김석기(85)씨이며, 김씨는 국내 살고 있는 유일한 일제 전범 한인생존자이다.

이씨는 지난 23일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서 열린 억울한 조선인 전범에 대한 위령제에 참석한 뒤 이날 김씨 집를 방문, 1962년 일본에서 사회 친구이자 동료로 김씨와 함께 지내다 헤어진 지 46년만에 다시 만났다.

이씨와 김씨는 서로 보는 순간 손을 꼭 잡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는 등 한맺힌 지난 세월을 원망하는 듯 했다.

전남 보성이 고향인 이씨는 1942년 6월 17살때 징용돼 부산 노구치 부대에서 2개월간 혹독한 훈련을 받은 뒤 배를 타고 태국으로 끌려 갔다.

이씨는 그 곳에서 415㎞ 철도 건설현장의 `힌토쿠 포로수용소 분견소에 포로 감시원이란 임무가 맡겨졌다.

이 분견소에는 영국.네덜란드.호주 등 연합군측 군인 500여명이 포로로 잡혀 있었으며 많을 때는 700명을 넘었을 적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당시 일본군의 지시에 따라 포로를 건설 현장으로 이동시키고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 단순한 업무를 맡았던 것.

이씨는 식량.물.의료품 등 모든 상황이 열악해 한때 말라리아 등 전염병이 나돌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단지 살아 남기 위해 일분군측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따랐을 뿐인데도 이씨는 `포로 학대란 죄명으로 연합군 전범 재판에 의해 사형이 선고됐었고 다행히 뒤에 20년으로 감형돼 싱가포르 형무소와 일본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56년 10월 석방됐다.

이씨는 "전범으로 풀려났던 동료 2명은 후유증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기도 했다"며 "날품팔이와 건축 노동으로 겨우 연명하는 등 그때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동료들과 힘을 합쳐 택시회사를 설립, 한동안 택시업계에 몸담아 왔다.

이씨는 앞서 55년 동진회를 조직, 동료의 어려움을 서로 돕고 명예 회복을 위해 지금까지 투쟁해 오고 있다.

김씨의 경우 포로 감시원 복무와 형무소 복역 등의 후유증이 극심하다.

온 몸이 아프고 기억력이 흐릿한 김씨는 당시 매분 매초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 나머지 불과 2~3년 전까지만해도 눈을 뜨고 잠을 잤다고 가족들이 전했다.

김씨는 지금도 그때의 억울한 시절만 생각하면 응어리가 진 듯 눈물만 줄줄 흘리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산 진동에서 태어난 김씨는 농사일을 하다 19살때 징용돼 부산에서 3개월 가까이 훈련을 받은 뒤 인도네시아 자바섬으로 투입됐다.

그는 그 곳에서 이씨와 마찬가지로 포로 감시원으로 일했는데, 야자나무 잎 등으로 만든 커다란 집 8~9곳에 영국인 등 많은 외국 군인들이 수용돼 있었다고 기억했다.

밥이 없어 죽으로 배를 채우는 등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유리 조각과 돌 조각 등으로 머리를 깎는 등 처참한 생활의 연속이었다고 진저리를 쳤다.

김씨는 15년이 선고돼 인도네시아 형무소와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50년 풀려났다.

이후 일본에서 막노동 등 어려운 생활에서 벗어 나지 못하다 62년 입국해 고향과 울산을 거쳐 지금 창원에 살고 있다.

그는 `일본 앞잡이란 차가운 시선을 못 견뎌 한동안 술에 빠져 사는 등 가슴 속 한이 돼 외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려왔다.

일제 패망 후 전범 재판에서 포로 감시원 등으로 복무했던 한반도 출신 148명이 B.C급 전범으로 기소돼 이 중 23명이 사형 선고로 집행되었으며, 나머지 125명은 징역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중 대부분은 고령으로 숨지고 지금은 일본에 이씨 등 9명이 생존하고 우리나라에는 김씨만 살아 있다.

1946년 포로 감시원이었던 아버지 강태협씨가 25살때 전범으로 몰려 사형이 선고돼 교수형을 받았던 동진회 한국유족회 회장 강도원(71)씨는 이날 이씨와 함께 김씨를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를 비롯한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시키는 심부름 정도만 했을 뿐인데 무시무시한 전범으로 내몰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2005년 이들이 `전쟁 피해자로 인정돼 관련 법률과 시행령이 며칠 전 발효된데 대해 뒤늦게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이제 아버지와 같은 왜곡된 역사의 피해자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하고 간절한 바람을 나타냈다.
ymkim@yna.co.kr

촬영:이정현 VJ(경남취재본부), 편집:심지미 VJ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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