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기행 화학무기 비극의 현장 이라크 할아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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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브자이라크 술라이마니야州=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조심하세요. 희생자를 더 원치 않습니다"

일행중 한 명이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려고 하자 누군가가 던진 농담이다.

`희생자라는 단어는 그만큼 할아브자에선 특별한 의미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87년 4월16일. 이라크 술라이마니야의 서쪽 국경 마을인 할아브자 상공에 이라크 공군의 비행기가 떴다.

비행기에서 무엇인가 쏟아지는가 했더니 하늘을 날던 새가 갑자기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가 고사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자행된 할아브자 민간인 학살사건의 서막이었다. 후세인 정권은 이 화학무기 공격을 `안팔(전리품) 작전이라고 불렀다.

1년 뒤인 1988년 3월 다시 한 번 이 비행기가 할아브자에 나타났고 쿠르드족 사망자는 10만명으로 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의 막바지에 몰린 후세인 정권은 이란과 국경지대인 할아브자 주민들이 이란의 간첩 노릇을 한다며 무차별 화학무기 공격을 가한 것이다.

2006년 12월 할아브자 학살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한 쿠르드족 의사는 "꽃향기가 나는 가스를 맡은 소년이 피를 토했고 짐승이 죽는가 하면 사람들은 피부에 발진이 나고 가렵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이 의사는 이 재판에서 "1987년 4월16일 내 병원 앞에 서 있는데 공중에 많은 비행기가 떠 있는 것을 봤다"며 "그러고 나서 이상한 냄새가 났는데 어떤 사람들은 마늘이나 사과 향기 같다고도 했다. 이후 여성과 아이들의 눈이 충혈됐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할아브자 주민들은 피부가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기침을 할 때마다 각혈을 했다. 어린이와 여성은 특히 화학무기에 약했다. 여성 사망자는 남성의 배에 달했다. 아직도 정확한 피해자 수가 집계되지 않는다.

후세인은 사형이 집행되는 날까지 입을 다물었고 안팔 작전을 진두 지휘해 `케미컬 알리라는 별칭이 붙은 후세인의 이복동생 알리 하산 알-마지드는 사형이 확정됐지만 여전히 학살사건을 부인하고 있다.

26일 기자는 할아브자 사건 기념관을 찾았다. 술라이마니야시에서 서쪽으로 70㎞ 떨어진 할아브자시 기념관을 찾았다.

할아브자시가 가까워오자 도로 주변에 하얗게 말라 비틀어진 나무가 보였다. 21년 전 화학무기 공격으로 죽은 나무라고 했다. 술라이마니야 주정부는 학살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이 나무를 베지 않았다.

나무 뿐 아니라 화학무기 공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주민들은 수년간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했고 유독 기형아 출생이 잦았다.

기념관에 도착하자 입구의 동상에 한참 동안 눈이 갔다.

쿠르드족 전통복장을 한 어머니는 아이가 화학무기에 뒤덮이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방패막이 삼아 꼭 껴안고 엎드렸지만 이미 아이는 괴로운 표정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기념관에서 조금 떨어진 희생자 묘소에 들어서자 오래 된 간판이 눈에 띄었다.

`바트당(후세인 시절 독재 정당)은 출입금지

묘소 한 가운데에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었는데 이 여인은 하늘을 향해 소리없이 울부짖고 있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할아브자 학살사건 유족회 부대표인 아라스 씨는 "할아브자 학살사건 당시 심지어 유엔도 우리를 외면했다"며 "화학무기의 비극은 할아브자가 마지막이 되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 = 강훈상 특파원 (이라크) , 편집 = 김지민VJ

hskang@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khsyn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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