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지2010 바이로이트 무대에 우뚝 선 연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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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로이트=연합뉴스) 강일중 기자 = 이제 그는 거인이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뉴욕의 오페라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광철 얘기다. 베이스 가수로서다.

지난 25일 저녁(현지시간) 인구 7만4천명인 독일 남부 소도시 바이로이트의 바이로이트축제극장. 세계의 바그너오페라 팬들에게는 성소(聖所)라고 하는 곳이다. 오후 4시 정각에 시작된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Parsifal)이 밤 10시45분쯤 막이 내리면서 들린 소리는 오직 세가지였다. 99%가 검은색 위주의 정장 또는 파티복 차림의 관객들로 가득찬 객석의 이곳저곳에서 너무 오래 참고 있었다는 듯 브라보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거의 동시에 나온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그것도 모자라 극장 바닥을 온 힘을 다해 발로 구르며 내는 소리. 이 뜨거운 환호는 커튼콜을 위해 홀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구르네만츠 역의 연광철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구르네만츠는 사실상 파르지팔의 주역이다.

이날의 파르지팔(스테판 헤르하임 연출.다니엘레 가티 지휘)은 바이로이트축제 개막일에 맞춰 관객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신작 초연 작품. 바그너 오페라의 신작 초연 때면 으레 있었던 불만스러운 관객들의 야유는 이날 전혀 없었다. 오로지 환호만이 그렇지 않아도 더운 극장 안 온도를 더욱 높였다.

독일의 바그너팬을 포함한 바이로이트극장 관객들이 왜 연광철에 환호할까. 지난 20년간 거의 매년 바이로이트축제극장을 찾아 바그너오페라를 봐왔다는 독일인 군터 슈베르트(전직 교사)의 말은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축제극장에서 마주친 그는 "연광철이 목소리에 강력한 파워를 실은 채 어떻게 그렇게 부드럽게 노래할 수 있는 지 정말 놀랍습니다. 또 독일인이 아닌 그가 어떻게 독일어 발음을 그렇게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지 너무 궁금합니다. 노래를 할 때 그의 대사는 너무 뚜렷이 전달됩니다."고 얘기한다. 그는 연광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파르지팔 공연 전날과 공연이 끝난 직후 바이로이트에서 두 번 만난 연광철 역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런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얘기한다. "독일어에서는 자음 발음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그 거에 대한 특별한 공부가 필요하죠.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독일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어요. 자음에 얼마나 호흡을 실어야 할까를 연구를 많이 했죠."

동양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바그너 작품에 대한 해석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그가 역시 주변으로부터 받고 있는 평가다. 연광철은 2002년 바이로이트축제 때 탄호이저의 헤르만 영주 역을 맡은 후 급부상했다. 당시 평론가들은 그를 바그너가 원했던 대로 해석해 역을 제대로 소화해 낸 가수라고 평가했었다.

"라인골트에 나오는 파졸트는 동생에게 죽임을 당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거인이죠. 또 발퀴레에 나오는 훈딩은 보통 악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악역이 아니죠." 그가 자신이 맡은 역에 대해 불쑥불쑥 꺼내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극중 역할에 대한 해석에 골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베이스 음역의 가수로서는 바그너 오페라의 으뜸가는 역이라고 할 수 있는 구르네만츠를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가수를 제치고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맡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달리 보이고 있는 그런 능력과 노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구르네만츠는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의 한스 작스 처럼 이야기를 다 이끌어가는 사람이죠. 오페라 제목이 파르지팔이지만 극 전체로는 구르네만츠가 부르는 노래의 양이 파르지팔의 서너배는 되요. 성악적인 면에서 볼 때는 많은 베이스들이 한 번 쯤 꿈꿔보는 그런 중요한 역이예요. 그러나 누구나 다 부를 수는 없죠. 성악적인 역량이라든지 테크닉 등 많은 부분들이 요구되는 그런 역할이니까요."

연광철은 그러나 이번 파르지팔에 대한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전체적으로 작품의 높은 완성도와 가수들 각자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한 연출가의 능력과 지휘자의 덕으로 돌린다.

"2004년부터 여기 무대에 올랐던 직전 신작 파르지팔은 영화감독인 슐링엔지프가 연출을 했었는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었어요. 야유도 많았었구요. 보통은 신작을 5년 정도 끌어가는데 초창기에 반응이 안 좋아서 4년만에 끝이 났어요. 이번에는 지휘자도 전혀 새로운 인물이고 연출가도 오페라 연출 역량을 많이 쌓고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가 매우 높아요."

이번 작품에 대한 호응은 사실 예견됐었다. 보통 리허설 공연 때는 관객들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는데 지난 일요일 이 작품의 최종 연습공연 때 관객들이 환호를 하며 기립박수를 치는 바람에 그것이 화제가 돼 현지신문에 보도가 될 정도였다.

파르지팔은 바그너가 남긴 마지막 오페라로 가장 종교적이고 경건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1882년 바이로이트축제극장에서 초연됐던 이 작품이 기독교적인 신앙을 배경으로 하면서 급진적 반유대주의나 순혈주의를 드러낸 작품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었다. 이 작품은 원래 중세 스페인의 몬살바트사원을 중심으로 성배를 지키는 기사들과 이들을 유혹하는 마법사의 얘기, 순진한 바보라는 뜻의 파르지팔이 사악한 마법사로부터 성창(聖槍)을 찾아오는 얘기 등을 담고 있다. 이번 파르지팔에서는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가 살았던 반프리트하우스가 무대배경으로 나오고 철십자, 나치의 상징인 독수리상, 독일의회의 모습 등 1차, 2차 대전 전후의 독일이미지가 배경화면으로 등장한다.

"이번에 구르네만츠를 부르고 나면 바그너 작품 중에서는 더 이상 부를 것이 없을 것이라는 마음자세로 임했어요. 그동안 바그너 오페라에서의 크고 작은 역할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구르네만츠 역은 그 모든 것을 응축한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죠."

연광철의 말은 이제 그가 수성(守成)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 들린다. 그는 바이로이트 외 지역에서의 영역 확대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제가 바이로이트에서 그간 한 해만 빼고 올해로 13년째 활동을 해 왔어요. 오페라 가수로서의 활동이 너무 바이로이트에 집중돼 있는 것 같아 잘츠부르크페스티벌 같은 곳과 관계를 맺어 보려고 해요. 구르네만츠 역을 하고 난 다음에는 바이로이트에서 더 큰 역할은 없을 것 같아요." 연광철 말이다.

그는 이번 축제 때 구르네만츠와 라인골트의 파졸트 역, 발퀴레의 훈딩 역을 마친 후에는 빈에서 파우스트, 뉴욕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및 돈죠반니, 이어서 내년 3월까지 일트로바토레를 하게 된다. 다음에는 런던에 가서 로엔그린. 빈에서 다시 파우스트을 하고 바이로이트축제극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것이 끝나면 다니엘 바렌보임과 하는 시몬 보카네그라로 이어지고, 또 아틸라를 하고...

거인 연광철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사진=강일중)

◇바이로이트축제는 =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가 자신의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스스로 만든 오페라축제다. 오로지 바그너 오페라만 무대 위에 올리는 특별한 축제다. 1876년 바그너 필생의 대작인 4부작 니벨룽의 반지를 자신이 주도해 건립한 바이로이트축제극장에서 공연하면서 시작됐다. 첫 번 축제 후 자금조달의 어려움 등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1882년 파르지팔을 초연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1, 2차 대전 기간 중 바그너가 사람들과 히틀러와의 유착관계로 인해 전후 수년간 축제가 중단된 사례가 있긴 했지만 올해로 97번째 축제가 이어지고 있다. 매년 7개 안팎의 바그너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매년 7월25일부터 8월28일까지 이어진다. 올해의 경우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인, 라인골트,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등 4편과 파르지팔,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가 무대에 올려진다. 보통 사람이 티켓을 신청하면 8-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축제 관람이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연광철은 = 1965년 생. 충주의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청주대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이어 불가리아 소피아 음대, 베를린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1993년 파리 국제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 우승과 동시에 도밍고로부터 세계 오페라계의 떠오르는 보석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10년간 베를린 국립오페라의 전속 주역 가수로 활동하다 세계 주요 오페라하우스로부터 초청이 많아지면서 2004년 독립했다. 1996년부터 매해 바이로이트축제 무대에 서고 있으며 다니엘 바렌보임, 피에르 불레즈, 주빈 메타, 제임스 레바인,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 최정상의 무대에 서고 있다.


영상취재: 강일중 기자(바이로이트) , 편집: 김지민VJ

kangfa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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