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 박사 59주기 추모식 열려

2008-08-05 アップロード · 334 視聴


기고문 한국어 원문 공개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외교 자문관으로 고종 황제를 보좌하며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했던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의 59주기 추모식이 5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지 내 한국 기독교 선교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열렸다.

헐버트 박사 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가 주관한 이날 행사는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종정 국가보훈처 차장, 차창규 광복회 사무총장, 태미 오버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대표, 광복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식사, 추모사, 서울경찰악대의 아리랑 연주,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추모사를 통해 "헐버트 박사님은 1886년 이 땅에 발을 디디신 이래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일평생을 바쳐 노력하셨고 1949년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 땅에서 영면에 드셨다"면서 "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박사님은 진정한 독립투쟁의 원훈이자 건국의 아버지"라고 추모했다.

김 의장은 이어 "지금 대한민국은 안팎의 거센 시련과 도전에 직면해 있고 우리 앞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며 "박사님의 크고 높은 뜻을 가슴 깊이 새겨 제2의 독립운동, 제2의 건국을 준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추모식장에는 헐버트 박사의 한글 사랑을 보여주는 기고문 한국어(The Korean Language)가 실린 1903년 스미스소니언협회 연례보고서가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기념사업회는 헐버트 박사가 한글의 독창성, 과학성, 간편성 등을 소개하며 한글을 가장 과학적이고 완벽한 음성 문자라고 극찬한 이 기고문의 원문 전체를 실은 14페이지 분량의 유인물을 나눠줬다.

미국 버몬트주 태생인 헐버트 박사는 대한제국의 초청을 받아 1886년 23세의 나이로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뒤 교육분야 총책임자 및 외교 자문관으로 고종황제를 보좌했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1906년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을 통해 일본의 야심과 야만적 탄압행위를 폭로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907년에는 이준 열사 등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로 참석할 수 있도록 면밀히 지원하는 등 항일운동을 벌이던 헐버트 박사는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추방됐다.

이후 40년 만인 1949년 7월 29일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그는 일주일 만인 같은 해 8월 5일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정부는 이듬해인 1950년 종교, 교육, 언론, 문화 등의 개화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한 헐버트 박사의 공로를 인정해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hyunmin623@yna.co.kr

촬영, 편집 : 장대연 VJ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tag·59주기,박사,열려

非会員の場合は、名前/パスワードを入力してください。

書き込む
今日のアクセス
302
全体アクセス
15,988,786
チャンネル会員数
1,895

사회

リスト形式で表示 碁盤形式で表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