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 대목장 전흥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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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기둥 하나, 보 하나에도 선조들의 민족정신과 손길이 서려 있습니다"

국가지정 대목장(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인 전흥수(田興秀.68)씨를 새해 벽두 그가 사재를 털어 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대동리에 세운 한국고건축박물관(http://www.ktam.or.kr)에서 만났다.

목수일을 시작한 지 45년만인 2000년 8월 대목장에 지정된 전씨는 50년 동안 자신이 보수하거나 새로 만든 전통양식 건축물의 면적만 해도 130만㎡를 넘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건축 분야 목수로 평가받고 있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씨에게선 50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장인다운 당당함과 꼬장꼬장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요즘도 박물관 한쪽에 위치한 작업장에서는 하루 몇차례씩 전씨의 날카로운 호통 소리가 울려퍼진다.

"야! 이리와 봐, 이거 누가 깎았어" "좌우대칭이 되지 않으면 건물이 금세 뒤틀리는 거 몰라. 당장 다시 해" 노기 띤 꾸지람을 들은 목수들은 연장을 부지런히 놀려야 한다.

현재는 20여명의 목수를 거느리고 작업을 지휘하는 유명한 장인이 됐지만 전씨는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망치와 끌을 잡게 됐다고 한다.

3남6녀 가운데 둘째아들로 태어난 전씨는 12살때 가난 때문에 수덕사에 딸린 한 절에 행자로 맡겨졌다.

그러나 불경을 외우는 일과 스님들의 꾸지람을 듣는 것이 싫어 절에서 도망쳤다가 다시 아버지에게 붙잡혀 절로 보내지기를 10여 차례 거듭한 끝에 그는 4년만에 서울로 달아났다.

전씨는 당시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포목공장과 피혁공장 등을 전전하다 18살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내려온 전씨는 수덕사에서 목수일을 하던 아버지 아래서 잔심부름을 했다.

그러다 친구의 아버지이자 당시 충청도 지방의 유명한 대목장이었던 고(故) 김중희(金重熙)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체계적으로 고건축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전씨는 "소명의식 때문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일을 배웠다"면서 "천대받은 일이었지만 하다보니 재미도 느끼게 됐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눈썰미 탓인지 일을 배우는 속도도 빨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전씨는 일을 배운지 몇년 만에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독립한 전씨는 1965년 전남 순천에 있는 한산사 대웅전을 보수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전씨는 1970년대 말까지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의 동문과 남문 및 수어장대를 비롯해 흥인지문(동대문.보물 제1호), 창덕궁(사적 제122호) 가정당 등을 보수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수덕사와 홍주사, 봉국사, 금천선원, 용주사, 홍룡사, 장경사, 대광사, 삼천사, 망월사, 칠봉사, 용담사, 보덕사, 기원정사, 마곡사, 월정사, 화엄사, 법주사, 봉덕사, 부석사 등 수십개 사찰의 대웅전과 종각, 누각, 일주문, 요사채가 전씨의 손을 거쳐 고쳐지거나 새로 만들어졌다.

대순진리회 중곡.여주.포천.금강산 도장과 대전엑스포 종각 등도 그의 작품이다.

현재 전씨는 경북 청도의 운문사 대웅전 보수작업과 부산의 금천선원 일주문 신축공사 등을 맡고 있다.

50년 동안 전통양식 건축물을 보수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전씨는 우리나라 산에 재목으로 쓸만한 나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씨는 "법주사 공사를 할 때 헬기를 타고 전국의 산을 누볐지만 마음에 드는 나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쓸만한 목재가 되려면 150년 이상 자라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전씨는 1990년대 들어서는 목공과 석공, 화공, 드잡이공, 번와와공, 제작와공, 미장공, 철물공, 조각공, 칠공, 도금공, 표구공, 조경공, 세척공, 보존과학공, 식물보호공, 실측설계사보, 박제 및 표본제작공 등 18개 문화재 관련 분야 기능인들의 모임인 (사)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회장을 9년간 맡았으며 현재는 이 협회의 명예회장으로 있다.

또 조계종 총무원장, 대전엑스포 조직위원장, 문화체육부장관, 대통령 등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고 제1회 허균문화상(1998년), MBC 99 좋은 한국인 대상(1999년), 제1회 대한민국문화유산상(2004년)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전씨는 1998년 10월에는 100억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고건축박물관을 고향에 세웠다.

자신이 살다간 흔적을 남기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우리나라 건축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한자리에서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박물관에는 고건축물의 축소모형과 목수들이 쓰던 갖가지 연장, 고건축물 자재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고건축물의 축소모형은 단순히 겉모습만 축소해 놓은 것이 아니라 축소한 자재조각들을 건축기법 그대로 짜맞춰 놓은 것이어서 방문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통 건축을 공부하려는 학생들과 가족단위 관람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전시된 작품에는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급 건축물들의 축소모형이 망라돼 있다.

강릉 객사문(국보 제51호), 개목사 원통전(보물 제242호), 개심사 대웅전(보물 제143호), 개암사 대웅전(보물 제292호), 관룡사 약사전(보물 제146호),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대비사 대웅전(보물 제834호), 덕수궁 중화전(보물 제819호),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무위사 극락전(국보 제13호), 법주사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및 팔상전(국보 제55호), 봉정사 고금당(보물 제449호)과 극락전(국보 제15호) 및 대웅전(보물 제55호),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조사당(국보 제19호), 숭례문(국보 제1호), 성혈사 나한전(보물 제832호),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56호),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용문사 대장전(보물 제145호), 율곡사 대웅전(보물 제374호),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국보 제14호), 정수사 법당(보물 제161호), 종묘정전(국보 제227호), 청평사 회전문(보물 제164호), 고산사 대웅전(보물 제399호), 화암사 극락전(보물 제663호),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모형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 중국 산시성(山西省)의 남선사 대전과 불광사 대전, 북한에 있는 정양사 약사전의 축소모형도 전시돼 있다.

축소모형 하나를 만드는 데 3개월 가량의 기간과 1억5천만원 안팎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전씨는 앞으로 덕수궁과 창덕궁 안에 있는 건물 7-8개에 대한 모형을 더 만들 생각이다.

전씨는 "50년간 고건축물을 다루다 보니 그 속에 살아 숨쉬는 민족정신을 깨닫게 됐다"며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아 고건축물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들을 보고 느끼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cobr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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