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년, 60일 연속 강연 (31)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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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소통은 역사와의 소통과 화해"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진정한 소통은 역사와 소통하고 역사와 화해하는 것입니다. 소통이 없는 사회는 몰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 여러 권의 역사서를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역사 저술 작업을 해 오고 있는 이덕일(46)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종일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3일 세종문화회관 예술의공원에서 이어진 건국 60년 60일 연속강연의 31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 소장은 한국사 속의 소통과 화해를 주제로 다양한 역사 속 시대를 넘나들며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상하(上下)의 소통과 다른 사상, 세계와의 소통,서로 다른 정치세력과의 소통 등 세 가지 주제로 나눠 소통을 설명했다.

어명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이뤄졌을 것 같은 왕조국가 조선에서도 민심을 천심으로 여기는 소통이 이뤄졌다. 나라에 천재지변이나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임금이 자신의 허물을 지적해 달라고 상소를 요구하는 구언(求言)과 이에 응하는 백성들의 응지상소가 상하 소통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구언은 국왕 입장에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 텐데 나는 잘 모르겠으니 지적해 달라는 것"이라며 "이에 응해 올리는 상소가 바로 응지상소였고 응지상소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더라도 처벌하지 않는 것이 확고한 관례였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역대 여러 대통령이 있었지만 구언하는 대통령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왕의 어명 하나로 움직이는 사회였을 것 같지만 사실은 국왕이란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언을 하고 여기에 신분의 상하와 귀천에 상관없이 상소를 올릴 수 있는 사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금은 상소를 통해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며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그냥 나오는 수사적 용어가 아니라 백성의 말을 통해 하늘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하고자 한 것으로 상하 소통에 제도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언과 상소가 상하의 소통이었다면 조선 후기 양명학자들은 다른 사상.세계와 소통한 지식인들이었다.

당시에는 사회의 주류였던 주자학에 눌려 외주내양(外朱內陽.겉으로는 주자학자를 자처하지만 속으로는 양명학자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초로 양명학자로 커밍아웃했던 하곡(霞谷) 정제두의 제자들로 구성된 강화학파의 후계자들은 은거하다시피 양명학을 했지만 결국 나라가 망할 때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다.

이 소장은 이들을 두고 "조선이라는 사회에서 주류 세력과의 소통에는 실패했지만 역사와의 소통에서는 성공한 참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말하는 세 번째 소통은 서로 다른 정치세력 간의 소통이다.

이 소장은 최근 상반기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촛불시위 정국에 대해 "서로 다른 정치세력간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서로가 같은 말을 하는데 대화하면 같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아니고 외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몇 달 간이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사 속 서로 다른 정치세력 간의 소통은 놀랍게도 붕당정치에서 발견된다. 흔히 붕당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지만 동인을 이끌었던 유성용과 서인을 이끈 율곡 이이는 당파를 떠나 소통의 정치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동인의 영수인 유성룡이 당시 이조판서였던 율곡에게 이순신을 천거하자 반대 당파의 영수가 천거한 인물이지만 율곡은 선뜻 이순신을 만나보겠다고 응했다.

이 소장은 이들에 대해 "요즘같이 작은 정치인들이 아니었다. 인재라면 반대당파에서 천거해도 받아들이는 소통의 정치를 했던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소통에 우선하는 진정한 소통은 역사와의 소통과 화해라고 이 소장은 강조했다. 서인과 소론, 남인이 서로 소통한다고 해도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살자고 합의하는 것은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이런 점에서 역사와 소통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창한 정도전을 들었다.

권문세가들의 토지 독점에 괴로워하던 백성들의 마음을 읽은 정도전은 1392년 조선 건국이 이뤄지기 2년 전 전국의 공사전적을 모아 불태우고 그 토대 위에서 1391년 과전법이라는 토지제도를 공표한다.

백성들은 혁명에 가까운 과전법에 환호했고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의 개창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대세로 자리 잡게 됐다. 이 소장은 이를 두고 "봉기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의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를 진정한 역사와의 소통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바라봤다.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도 역사와의 소통에 성공한 인물이었다. 영의정 유성룡은 노비들에게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노비 신분을 면제해주는 면천법을 도입하고 또 양반과 노비로 구성된 속오군이라는 군대를 만든다.

노비들은 유성룡의 이런 조치에 호응해 의병을 일으켰고 민심을 읽고 노비들과의 소통에 성공한 유성룡 덕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이 소장은 "결국 소통하지 않는 사회는 몰락하게 돼 있고 여러 가지 소통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와 소통하고 역사와 화해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했을 때 당장은 실패하더라도 나중에 역사 속에서 그것이 소통에 성공한 사례로 남아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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