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외공리서 유해 227구..집단학살 참상

2008-08-25 アップロード · 248 視聴


(산청=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모두 5곳의 매장 예상지점을 발굴한 결과 수백여구의 유해와 각종 유품 등이 나왔어요..집단학살의 참상이 드러난 셈이죠".

한국전쟁때 민간인 집단희생 유해발굴 지역인 경남 산청군 외공리서 유해발굴작업을 벌인 경남대학교 박물관 이상길 교수는 25일 발굴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이 교수는 이날 현장에서 가진 현장설명회에서 "지난달 19일 개토제에 이어 지금까지 벌인 발굴작업에서 227구의 유해와 다수의 탄피 그리고 희생자들의 유품 등이 발굴됐으며 이 중에는 여성으로 추정되는 유해도 나왔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5곳의 발굴현장에서 흙을 걷어낸 상태로 노출된 유골들을 공개하고 유골의 모습에 따른 사망 당시 정황을 설명했으며 집단학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카빈용 탄피와 탄두, 단추, 고무줄, 비녀, 숟가락, 구두주걱, 빗, 동전, 유리조각 등을 전시했다.

이 교수는 "5곳의 발굴현장내 유골들은 노출상태로 봤을때 당시 모두 손이 뒤로 묶인채 구덩이에 꿇어 앉은 상태에서 총을 맞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러나 손을 묶은 끈은 발견되지 않아 칡넝굴 등이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부분 두개골이 깨진 점으로 미뤄 머리에 총을 맞아 숨졌다"며 "이는 집단학살이 은밀하고 계획없이 이뤄졌으며 이 같은 사실을 숨기려 한사람도 살려보내지 않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인근 주민들은 당시 여자와 어린아이도 있었다고 증언했는데 발굴된 비녀가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어린이의 유해는 더 발굴하고 조사해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살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탄피 전부가 카빈소총용이어서 사살한 사람은 정규군인일 가능성이 높고 유품 등으로 볼때 사살당한 사람은 민간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발굴된 단추에는 인상(仁商), 경농(京農), 금중(金中)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인상은 현 인천고등학교의 전신인 인천상업고등학교, 경농은 서울시립대학교의 전신인 경성농업고등학교로 알려 있고 금중은 확실하지 않아 이들 민간인들이 어디서 무슨 이유로 끌려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물관측은 외공리의 발굴이 마무리 되는 대로 산청군 원리에 대한 발굴을 시작한다.

유해발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가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조사와 실체를 규명하려 지난해부터 전국 4개 지점에서 실시해 오고 있으며 산청군 외공리에 대한 조사 용역은 경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외공리에서 발굴된 유해를 지정된 감식센터로 옮겨 정밀감식을 한 뒤 조사 용역이 마무리되는 내년 3월께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산청군 외공리사건은 1951년 2~3월 장갑차를 앞세우고 트럭 3대에 나눠탄 군인들이 11대의 버스를 타고 온 민간인들을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소정골에서 총살하고 5곳의 구덩이에 매장한 사건이며 2000년시민사회단체에 의해 150여구가 발굴된 바 있다.

`산청군 원리사건은 1949년 7월18일 빨치산 토벌과 관련, 당시 산청군에 주둔 중이던 국군 3연대 소속 37명이 반군들에게 몰살당하자 국군 3연대가 1950년 2월말까지 시천.삼장면 일대 지역 주민을 통비분자로 몰아 집단학살한 사건으로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산청 시천.삼장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실을 밝혔다.

촬영: 이정현VJ (경남취재본부) , 편집: 김지민VJ

shch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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