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등단 50주년 맞은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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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화염 아우르는 여생 살 것"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우리 시단의 거목 고은(75) 시인이 올해로 등단 50년을 맞았다. 현대시 100년의 역사 절반을 함께 한 셈이다.
이에 맞춰 신작시집 허공(창비 펴냄)을 묶어내고 처음으로 그림전도 여는 시인은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시집 나온 것을 보니까 가슴이 벌렁벌렁 하더라"며 "50년이 돼도 시집을 낼 때마다 방금 시인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1958년 현대시와 현대문학에 잇따라 추천돼 등단한 후 피안감성, 백두산, 순간의 꽃 등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을 비롯해 소설, 산문, 평론 등 수많은 작품을 썼다. 1986년 첫 출간한 한국문학 사상 최대의 연작시집 만인보도 곧 탈고를 앞두고 있다.
시인은 "지난 50년간 나는 근대시 100년이라는 고향의 시간에 의존해서 살아왔다"며 "나 자신에게 근대시 100년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하나의 자유"라고 표현했다.
지난 100년간 우리 시에 나타난 여러 경향들에 속박되지 않아왔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반세기 동안 변한 문단 풍토와 시의 위기론에 대한 그의 소회는 자못 담담하다.
"1980년 말에 시는 시대의 맨 앞에서 깃발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그것에 보복이라도 하는 것처럼 맨 뒤로 가게 됐습니다. 경제지향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것이 문단에도 스며들어 예전에는 김동리와 김내성을 비교할 수 없었던 반면 지금은 많이 팔리는 소설이 자연스럽게 화제작이 됩니다"
그는 "경제를 지향할 때 시의 마음, 시 정신이 퇴행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시인들이 절망하고 우울해할 이유가 없다"며 "시의 죽음은 새로운 시 시대에 대한 약속이며 지구가 소멸될 때까지도 시는 마지막으로 지구의 끝을 장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집 허공에는 시인이 최근에 쓴 시 107편이 묶였다.
"고르지 않고 낟알 줍듯 쓴 시를 다 수록했다"는 이 시집에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힘찬 시인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로부터 내 어이없는 백지들 훨훨 날려보낸다 / 맨몸 / 맨넋으로 쓴다 / 허공에 쓴다 // 이로부터 내 문자들 버리고 / 허공에 소리친다 / 허공에 대고 / 설미쳐 날궂이한다"(허공에 쓴다 중)
넘치는 창작 에너지는 시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4일부터 12일까지 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여는 그림전 동사를 그리다에서는 화가 고은으로 변신한다. 시인은 이번 전시회에 직접 그린 그림 35점과 글씨 19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여름 폭염 속에서는 꼬박 17일간 평택의 한 작업장에 출퇴근하며 그린 그림들이다.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기 전까지 화가를 꿈꿨다는 시인은 "그림 좀 그려볼까" 지나가며 한 말이 이렇게 전시회로 이어졌다며 예전에는 자다가 시 구절이 떠올랐다면 지금은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내년쯤에 다시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시인은 "앞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면 1년쯤 가서야 건조되는, 기름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림을 그려 물질적인 충일감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왕성한 창작의 에너지를 시인은 신명에서 찾는다.
시인은 "한국의 근본감정을 얘기할 때 주로 한(恨)을 이야기하는데 한과 맞닿은 게 흥(興)이고 그 흥의 원소가 신명"이라며 "아버지로부터 그런 신명의 피를 이어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생을 시시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시인은 삶에서나 작품에서나 앞으로도 지난 50년 못지 않은 젊음을 유지할 것임을 내비쳤다.
"미래에 대해 굳이 예측할 까닭은 없겠지만 분명히 전제하고 싶은 것은 후기의 삶이 그동안 살아온 것에 대한 결산이나 해답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원만해진 인간의 금도(襟度) 같은 것을 유지하면서 내 삶이 잠들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내 광기와 화염을 아우르는 그런 여생을 살아볼까 합니다"
mihye@yna.co.kr

영상취재.편집: 김해연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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