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입양인 "생모를 바라볼 수만 있어도.."

2008-09-04 アップロード · 208 視聴

무술연마로 편견 극복..태권도 챔프 등극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양부모님이 그토록 만류했는데 어머니를 찾으러 왔어요. 피가 물보다 진한가 봅니다."
1일 연합뉴스 한민족센터를 찾아온 한 30대 청년의 모습은 여러 모로 주목을 끌었다.
4살 때 벨기에로 입양된 뒤 30여년 만에 친부모를 찾아 나선 마크 스타(36.한국이름 백천동) 씨.
짧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와 구릿빛 피부에 태권도, 가라테, 쿵후로 단련된 다부진 체격 등 벨기에 출신의 액션스타 장 끌로드 밴덤을 연상시키는데 거의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키만 좀 더 컸으면 영락없는 밴덤이다"는 말에 "밴덤도 사실은 큰 키가 아니에요. 크게 보이려고 구두 뒷창에 무언가 넣고 다닌다"고 응답해 주위 사람들의 파안대소를 이끌어냈다.
3살 때 서울 노량진경찰서 부근에서 경찰관에게 처음 발견돼 고아시설인 성로원과 해외입양 전문기관인 홀트를 거쳐 입양된 그는 서울 대현동의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에 한 달간 묵으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아원 등지를 찾아 수소문해봤으나 입양서류 등 아무런 단서도 구하지 못한 채 1일 오후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특히 "서울 말씨에 백천동이라고 이름을 밝힌 것으로 보아 경찰서 부근에서 어머니와 헤어졌을 수 있다"는 성로원 관계자의 말에 이 일대와 노량진역에 연계된 완행열차역 주변의 고아원을 샅샅이 뒤졌다. 당시 실종됐다면 부모가 일대 고아원을 찾아다녔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이번 방한으로 대가도 치렀다. 장기 휴가로 인해 교통관리원 일자리도 잃었지만, 무엇보다 "한국행을 한사코 말린" 양부모와의 관계가 냉랭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는 10대 후반 이후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과거 찾기에 나섰지만 양부모가 입양서류나 사진 등을 감춰뒀다가 수 년 전에야 돌려줬으며 이후에도 "한국에 갈 꿈은 아예 꾸지도 말라"고 권면했다. 그는 이를 "애지중지 키워온 막내가 엄마 찾아 삼만리 고된 길을 떠나 좌절하거나 운이 좋아 부모를 찾게되면 안 돌아올 수도 있다고 걱정하기 때문"으로 이해했다.
브뤼셀 근교의 소도시인 세인트 피터스 레우에서 인쇄공과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양부모와 형, 두 누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는 그는 "마음속에 공백으로 남아 있던 그리움이 30대에 접어들면서 혈육에 대한 미련의 화석으로 굳어진 것 같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부모를 찾아도 왜 버렸는지 묻지 않고 원망도 않겠다고 말했다. 당시 궁핍한 생활로 인해 자식들을 키우지 못하고 고아원에 맡기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에서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것만도 큰 은혜다. 부모님을 찾으면 내 인생에 활짝 꽃이 피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어린 시절 피부가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자 이를 극복하려고 태권도와 가라테, 또 쿵후의 일종인 잉춘취앤(詠春拳)을 배워 1994년에는 벨기에의 태권도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스타 씨는 자신의 신체적인 특징으로 오른쪽 귀가 왼쪽보다 약간 처져 있고 왼쪽 눈썹 바로 아래에 파란 작은 점과 웃을 때 드러나는 양쪽 볼의 보조개 등을 들었다.
벨기에로 떠난 지 32년만에 한국 땅을 밟으면서 "웬지 마음이 편해지고, 모든 풍경이 눈에 익은 듯했다"고 말한 그는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와 전화를 통해 "혈육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어머니의 나라로 달려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스타 씨에 대한 문의는 서울 대현동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 02-3148-0258,0286)로 하면 된다.
duckhw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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